[Opinion]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을 안다면 [문화 전반]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질 것들
글 입력 2024.05.1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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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에 눈에 띌 정도로 큰 사마귀가 난 적이 있다.

 

작년 초에 생긴 사마귀인데,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걱정이 되어 피부과를 찾아갔다. 레이저로는 치료가 위험한 부위라고 해서, 처방받은 약을 매일 같이 발라주었다. 그런데 떼어 내도 다시 생기고, 또다시 생기고.

 

정말 끈질기게 붙어있었다. 없애려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포기하고 살기를 몇 달째, 어느 순간 내 손목을 보니 그간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피부가 매끈해져 있었다. 약을 꾸준히 바른 지도 꽤나 시간이 지나서 어떻게 사라진 건지 아직도 의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골칫덩어리이던 손목 위 사마귀가 더 이상 나에게 자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피부과에 들렀을 때 의사 선생님께 여쭤본 적이 있다.

 

"레이저 치료가 힘들면, 얘는 평생 안 사라지는 건가요?"


선생님이 대답하셨다.

 

"아니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언젠간 사람 몸이 이깁니다. 없어지긴 할 거예요."

 

이 말을 들은 당시 나는 선생님의 대답이 참 애매하다 생각했다. 이거 뭐, 없어진다는 거야 아닌 거야. 약을 바르면 효과가 있긴 한 걸까? 당장 언제쯤 치료가 될지를 모르니 참 답답하였다.


그런데 언제 그랬냐는 듯,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왼쪽 팔목에는 희미한 자국만 남아있을 뿐이다. 웃기지 않은가? 1년 가까이 나의 신경을 거슬렀던 그 조그만 사마귀가, 내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시점에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져 버린 것이 말이다.

 

 

[크기변환]터널.jpg

 

 

생각해 보니, 사람의 인생사도 비슷한 것 같다.


지금 당장은 너무너무 힘들 수 있다. 이 길고 긴 고통이 언제 끝날지, 누구 하나 장담하며 알려주지도 않는다.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어느 때쯤은 괜찮아질 것이라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그렇게 인간은 긴 긴 터널을 지난다. 터널의 한가운데에서는 맞은 편의 희미한 빛이 너무나 멀게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걷고 걷다 보면, 이내 터널의 끝에서 맑은 바깥공기를 마실 수 있게 된다.


잠깐. 근데 그렇다고, 그다음은 영영 터널 따위 없는 고속도로일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다음 터널, 또 그다음 터널. 계속해서 이어질 것임은 틀림없다. 지금 이 말이 저주처럼 들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왜 그렇게 초를 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의 삶은 생각만큼, 확 트인 일직선 도로처럼 이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때로는 길고 어두운 터널임을 알면서도 그곳을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중요한 사실은 이거다. 지금이 그 터널 한가운데라는 것을 아는 것.

 

내가 지금 지나고 있는 이 시간이, 이전에도 한번 지났고, 앞으로도 종종 마주할. 그런 힘든 시기임을 '알고 있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행복한 일만 내내 나타날 수 없듯이, 힘든 시기만 계속될 수도 없다.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웃고 있을 그날의 시점에서 지금을 바라보면, 현재의 버거움이 조금이나마 덜어진다.

 

그리고 바라는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가 딱히 해야 할 일도 없다. 그냥 걸으면 되는 거다. 차를 타고 터널을 통과했던 우리가 어떤 깊은 뜻을 가지고 있지 않았듯이, 별생각 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새 손목 위 사마귀가 사라져 있었듯이. 그렇게 때로는 '그냥' 시간을 지나 보내는 것이 더 도움이 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분명 그럴 날이 올 거다. 언제 그랬냐는 듯 터널 밖에서 세상의 이곳저곳에 숨겨진 행복을 발견할 날이. 나를 일 년 내내 괴롭히던 그 작은 사마귀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사라져 버린 것처럼 말이다.

 

 

 

아트인사이트명함.jpg

 

 

[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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