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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넓은 콘서트홀에 청중들이 차 있다. 기대에 찬 표정, 어쩌면 지루한 표정이었을 수도 있겠다. 곧이어 연주자가 등장하고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연주자는 피아노 앞에 앉고, 연주할 준비를 마친다. 관객은 늘 그렇듯 숨죽여 연주자를 바라본다. 그런데 기대하던 선율은 흘러나오지 않는다. 연주자는 건반 뚜껑을 닫고서 악보를 넘긴다. 악보는 이상하리만치 깨끗하다. 관객은 불평하고, 황당해하고, 기침을 하며, 웅성거린다. 악보가 세 번 넘겨질 동안 콘서트홀은 온갖 소리로 가득 찬다. 그렇게 연주자가 퇴장할 때까지 지난 시간은 총 4분 33초다.

 

아방가르드 작곡가 존 케이지는 <4분 33초>라는 제목의 피아노 곡을 작곡했다. 사실 작곡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의 곡에는 음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주가 없으니 음악도 없다는 말을 붙이기에는 다소 애매모호한 면이 있다. 연주자가 등장해서 자리에 앉을 때 나는 옷자락 소리, 의자를 끄는 소리, 건반 뚜껑을 닫는 소리부터 관객이 내는 다양하고 불만스럽고 놀란 각종 소리까지. 우리가 흔히 빗소리를 자연이 내는 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처럼 존 케이지는 그 모든 것을 음악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수많은 반향을 일으켰던 이러한 창작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1951년, 존 케이지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장소라는 하버드 대학의 무향실에 방문한다. 그러나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피가 도는 소리 등 몸에서 나는 소리가 귀를 울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세상에 완전한 침묵이란 존재하지 않는단 생각이 그가 이 곡을 만드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분명 우리의 상식으로는 ‘소리’와 ‘음악’은 별개의 영역이다. 우리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나 카페에서 사람들이 대화하는 소리를 음악이라고 하지 않는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그 영역의 선은 누가 그어놓았냐, 그것을 넘어갈 수는 없냐는 것이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세계란 불안정하게 펼쳐진 순수한 다수이며, 진리란 세계의 이 같은 참모습을 그 모습 그대로 드러내는 다수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우연한 벗어남이 바디우가 말하는 부정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았을 때, 존 케이지의 <4분 33초>는 완벽하게 진리로 향하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연주자 혹은 작곡가가 있어야 하고 그가 내는 소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4분 33초> 또한 연주자도 있고 작곡가도 있고, 심지어 소리도 있다. 악보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다고 해서 소리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음악이 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4분 33초>는 기존의 음악 예술이 가지고 있던 소리와 음률에 대한 기준을 부정하며 가변성 있는 음악,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시연될 때마다 바뀌는 우연적인 음악을 창조했다. 이러한 창조적 부정은 음악의 정의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음악이라는 것이 굳이 악기 혹은 사물과 사람, 음률을 가진 무언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어도 된다는 창조적 확장을 야기했다. 다시 말해 일상의 소리를 녹여 음악의 경계를 확장했다는 것이다.

 

특히 존 케이지는 비디오아트 연출가 백남준의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자연적이고 일상적인 소리도 음악이 될 수 있으며 의외로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기도 한다는 케이지의 생각은 삶과 예술의 경계를 부정하고 있다. 백남준은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피아노를 연주하다 갑자기 피아노의 줄을 끊고 피아노를 부수는 퍼포먼스가 바로 그것이다. 케이지의 시선에 따르면 백남준의 발소리, 도끼가 피아노의 나무를 찍는 소리, 줄이 끊어지며 아무렇게나 퉁기는 소리 등이 모두 음악이 될 수 있다.

 

 

 

 

ASMR은 유튜브 컨텐츠 시장 중에서도 인기 있는 소재이다. 본래 단어의 뜻은 자율 감각 쾌락 반응이지만 대개 청각적 자극을 통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영상을 뜻한다. 풍경 소리와 빗소리가 섞인 ASMR, 바다의 파도 소리가 담긴 ASMR, 카페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ASMR 등 자연의 소리를 담은 것도 있지만 귀를 파주는 ASMR이나 치석을 제거하는 ASMR까지 그 폭이 다양하고 넓은 것이 특징이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가 단순 행위예술이 아닌 음악으로 분류된다면 아마 이러한 ASMR도 음악 카테고리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의견으로 이러한 분류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 음계가 존재하고 세상의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일견 낭만적 이상주의로 들린다. 그러나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음악의 기준은 누군가가 정해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악은 예술이므로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귀를 괴롭히는 소음이 아닌 이상,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모든 소리, 우리 몸의 내부와 외부로 만들어가는 모든 소리 또한 세상을 가득 채우는 음악에 기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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