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덜 무해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길 - 소설 <내게 무해한 사람> [도서]

글 입력 2024.04.2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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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 있을까. 난 자신 있게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너무 불행하고 무력한 사람이라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고 믿는 건 자기기만이자 오만함이다. ‘상처받은 나’에 취해 타인에게 준 상처를 보지 못하는 자기연민에 빠지는 건, 너무 끔찍하다.


모두에게 무해한 사람은 없다. 그 누구도 공격할 수 없는 둥그런 것들만 지닌 채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간의 손과 발, 눈과 입은 가끔 놀랍도록 날카롭고 뾰족해져서, 끝내 누군가를 할퀴고 만다. 끔찍한 사실은, 우리가 상대를 아프게 했다는 사실조차 제때 깨닫지 못할 만큼 어리석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끔찍한 것은, 내가 가장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나에게 너무 소중한 그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사람이 다름 아닌 나라는 사실. 또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입힌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건, 서로가 그만큼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상처 주고 싶지 않은 사람과 너무 큰 상처를 주고받는다. 우리의 말과 행동, 눈빛은 의도치 않게 소중한 사람들을 아프게 한다. 


서로 사랑함에도, 혹은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는 그 관계는 때때로 어떤 예고도 없이 단절돼 버린다. 최은영 작가는 관계가 단절되는 그 ‘아무것도 아닌’ 순간을 포착하며 우리 삶의 쓰라린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결코 무해할 수 없는 내가, 가장 소중한 사람을, 가장 크게 다치게 한다. 결코 무해할 수 없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가장 크게 다치게 한다.


어쩔 수 없이, 의도치 않게, 끝없이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에서 우리는 무력하다. 그저 괴로워하고, 아파하며 단절된 그 관계를 그리워할 뿐이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그 관계로부터 어떻게 우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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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에게 상처 준 이들은 그걸 외면하고 부정하려 한다.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되뇌면서. 혹은 공허한 눈물을 흘리고, 자기 잘못의 무게를 헤아리지도 못한 채 미안하다는 말을 상대에게 뱉어낸다. 자신을 면책하며 자기 과오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시도다. 대개 그러한 시도는 상대에게 더 큰 상처를 줄 뿐이다.


<고백> 속 미주 역시 자신의 소중한 친구 진희에게 상처입힌 사실을 내내 외면해 왔다. 주나와 진희, 미주는 고교 시절 단짝 친구였다. 셋이라는 숫자에 모두가 소외감을 느꼈고, 어린 시절의 사려깊지 못함은 서로를 서운하게 하기도 했으나, 그럼에도 세 사람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하는 단짝 친구들이었다.


고교 시절 일상을 함께하는 친구들만큼 가깝게 느껴지는 존재가 또 있을까. 어른들은 이해해 주지 못할 서로의 모습에 공감하고, 마음 속 깊숙한 비밀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친밀한 관계. 진희는 그 관계를 굳건히 믿고 자신의 가장 큰 비밀을 친구들에게 말한다.


진희의 커밍아웃에 주나는 10대 특유의 거친 표현으로 진희에게 ‘더럽다’고 말한 후 자리를 뜬다. 미주 역시 진희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진희를 바라보지만, 겉으로는 주나로부터 폭언을 들은 진희를 위로한다. ‘그 말 진짜야?’라고 되묻는 미주에게 진희는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진희는 유서도 남기지 않은 채 자살했다. 미주는 그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만, 진희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건 주나일 거라 확신하며 주나에게 시선만으로 상처를 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주나는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 준 자신을 외면하고, 자기를 면책하는 데만 급급한 위선적인 미주의 모습을 일깨운다.


“어. 알아. 너 나 탓했지. 나 땜에 걔 죽은 거라고. 응? 그럼 차라리 시원하게 얘길 하지 그렇게 쳐다보니? 네 눈.. 네 눈빛에 내 기분이 얼마나 개같았는지 알아?”


“네가 그때 걜 어떤 표정으로 봤는지 알아? 걔가 사람도 아닌 것처럼, 그렇게 경멸하듯 봤어, 넌.”


“인정하면 뭐가 달라져? 걔가 살아 돌아와? 너한텐 이 모든 게 쉽겠지. 진희야 미안해, 흑흑. 그러면서 널 용서하겠지. 그게 쉬울 테니까.”

 

 

그날, 진희에게 지었던 표정을 미주 자신은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 어떤 마음으로 그 애를 바라봤었는지 잊은 건 아니었다. 주나의 말이 맞았다. 미주는 눈빛으로 주나가 진희에게 했던 말보다 더 가혹한 말을 했다. 그 사실을 미주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고백>, p.206-207


 

상처받은 사람들은 어떤가. 대개 그들은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을 이해하며 자신을 보호한다. 상대가 나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던’ 모종의 이유를 끝까지 알아내려 애쓰며, 결국 그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는다.

 

 

엄마는 왜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지하철역 개찰구 앞에서 나를 계속 밀쳐 쓰러뜨렸을까. 일어서면 다시 때려 쓰러뜨리고, 일어서면 다시 때려 쓰러뜨리기를 반복했을까. 빨리 쫓아오라고 말했는데도 내가 걸음이 느려 엄마를 따라가지 못했으니까. 내가 꾸물거렸으니까 그랬겠지. 그때마다 이유는 나에게 있었다.


술에 취해 들어온 아빠는 왜 자는 나를 깨워 내가 태어나서는 안 되는 애였다고 말했을까. 내가 미숙아로 태어난 까닭으로 처음부터 돈이 많이 깨졌다면서 나를 새는 바가지라고 불렀지. 화를 냈지만 슬퍼보였어. 사는 게 고되어서 그랬겠지. 돈도 없는데, 아이를 원하지도 않았는데 가지게 되었으니 힘들었겠지. 


<모래로 지은 집>, p.120-121

 

 

아이는 자신에게 상처 준 부모를 이해하려 애쓴다. 그건 아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내린 힘겨운 결정이다. 그러나 작품은 묻는다. 왜 이해해야 하는 쪽은 언제나 정해져 있는가. 아이는 성인보다 느린 발걸음을, 자신이 기댈 수밖에 없었던 부모에게서 그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전혀 이해받지 못했음에도.

 

 

어린 나는 부모를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더 착한 아이가 되면, 훌륭한 아이가 되어 민폐 그 자체인 내 존재에 대한 빚을 갚을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부모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부모가 나를 제대로 사랑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나를 그저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다고 인정하는 것보다는 쉬운 일이었다. 어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금이라도 알아낼 수 있다면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가짜 이유라도 만들어서 믿고 싶었다.


<모래로 지은 집>,  p.121

 

 

성인이 된 아이는 그때의 자신이, 자기를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기를 강요받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는 더 상처받지 않도록,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자신에게 상처 준 부모를 이해했다. 부모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보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부모가 나에게 벌을 주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지켜주고 사랑해 주어야 하는 사람이 나를 ‘합당한 이유 없이’ 미워한다는 사실을 어린아이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차라리 자신에게서 그 이유를 찾음으로써, 자신이 부모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고 싶을 것이다.


외면과 부정, 공허한 반성과 사과는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 준 나를 면책할 수도, 그 사실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상대의 행동을 이해하려 하고, 하지도 않은 잘못을 반성하며 상대의 행동에 책임을 묻지 않는 일, 그 ‘일방적 이해’는 나를 더 괴롭게만 할 뿐이다. 그러나 끝없이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멀어지려는 시도 역시 우릴 더 공허하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이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서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쉬이 미워할 수도 없다.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고백>, p. 209

 

 

사람은 사람을 찾는다.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나를 아프게 하더라도 우리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정을 나누고 싶어 한다. 상처받는 일에, 또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상처 주게 되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계속해서 관계를 맺고, 종국에는 서로 상처를 줄 만큼 가까워지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무해한 사람이 없으니, 무해한 관계도 없다.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사람과의 관계. 우리는 그 관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지만, 끝없이 그 관계를 갈망하며 살아간다. 


무해한 사람일 순 없지만, ‘덜 무해한 사람’이 될 수는 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그 때 그 사람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줬음을 인정하고, 기억한다.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굴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직시한다. 눈물을 흘릴 때도, 그 눈물이 나를 위한 것이었는지 성찰한다. 내가 상처 주었던 사람과, 그 기억을 자기 연민을 위해 이용하며 ‘불쌍하고 어리석은 자신’에 심취하지도 않는다. 그저 덤덤하게 성찰하고, 인정하고, 반성하고, 기억할 뿐이다. 그것이 그 사람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는 것처럼.


 

손을 잡고,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어 자고 있는 줄만 알았던 미주의 몸이 조금씩 흔들렸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었다. 미주의 몸에 갇혀 있던 이야기를, 그곳에 그렇게 갇혀 미주를 떨게 하고 울게 했던 이야기를 나는 이제야 듣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 <고백>, p.208


배려라니. 지금의 이경은 생각한다. 배려라니. 그 거짓말은 수이를 위한 것도,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심이고 위선일 뿐이었다는 것을 그때의 이경은 몰랐다. 수이는 그런 식의 싸구려 거짓을 받아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사실도. - <그 여름>, p.52


나는 언제나 사람들이 내게 실망을 줬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보다 고통스러운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준 나 자신이었다.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조차 등을 돌리게 한 나의 메마름이었다. 사랑해. 나는 속삭였다. 사랑해, 모래야. - <모래로 지은 집>, p.180-181

 

 

우리 모두는 무해한 사람일 수 없다. 그저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이미 많은 이들에게 상처 주고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수밖에. 나를 사랑해 주고 아껴주던 이들에게 상처 주었던 일들을 나만을 위한 감상에 허투루 이용하지 않으면서, 나의 과오와 미성숙함을 기억하고, 그것을 끝없이 부끄러워할 수밖에. 그것이, 앞으로 맺게 될 관계에서 ‘덜 무해한 사람’으로 남는 유일한 길이 아닐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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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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