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실종법칙 - 편견과 애증 속에서 [공연]

글 입력 2024.04.2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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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앞, 판넬과 포스터

 

 

연극 <실종법칙>은 예술의전당과 극단 커브볼의 공동주최 작으로 2024년 4월 10일부터 5월 12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올라간다.
 
잘나가는 대기업 직장인 유진이 사라진 지 24시간, 언니 유영이 유진의 남자 친구 민우의 집으로 찾아가 유진의 행방에 대해 추궁을 하면서 극이 시작된다. 70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의 내용을 통해, 관객들은 실제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두 사람을 매개하는 유진에 대해 알게 된다. 동시에, 유영과 민우도 각자가 아는 유진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고 재구성하면서 서로가 몰랐던 새로운 유진에 대한 진실도 알게 된다.


 

 

법칙_ 법칙이라 말하지만 어쩌면 편견을 포장한


 

냅다 집으로 쳐들어와 새된 소리로 유진이에게 무슨 짓을 했냐고 민우에게 따지는 유영.

 

헤어지자 한 여자 친구를 살해한 사건들부터, 데이트 폭력 의심 및 온갖 인신공격까지 감행한다.


“유진이가 다른 사람 만나서 너, 유진이 죽인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유영의 논리는 유진이가 바람을 피운 귀책 사유가 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상당히 논리적이고 납득할 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는 가난한 작가 지망생인 민우에 대한 갖가지 편견들이 가득 들어있다. 으레 잘나가는 여자 친구에게 찌질한 남자 친구가 느끼는 열등감부터, 성별 및 직업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 등등이 이른바 실종의 ‘법칙’을 만들어 나간다.


이런 장면을 보는 관객인 나는 정작 실종된 유진에 대한 추리보다는 이런 공격적인 발언에 피로감을 느꼈다…. 정확한 물증이 없이 일어나는, 이른바 ‘법칙’에 의거한 추리는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발견되며 이는 편견에서 비롯한 감정 소모적인 노동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랄까.

 

 

 

애증_ 형제와 연인, 수평적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애정과 증오


 

극의 초반부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유진이의 행방을 찾는 유영의 편견 섞인 추리로 가득했다면, 중후반부를 지날수록 유진을 비롯해 유영과 민우를 둘러싼 진실들이 짜맞춰지기 시작한다.


유복한 집안 배경을 가진 아름다운 유진은 대기업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며 성공적인 삶을 누리고 있는 듯 보이며, 친언니 유영도 그런 면모만을 알고 있다. 하지만 민우는 다르게 말한다. 유진이 걔, 회사에서 왕따였어요.

 

모두가 반대하는 아이디어를 살려내 좋은 성과를 거둬냈지만, 그것으로 상사와 동료들의 눈 밖에 난 유진은 남자 친구에게 죽고 싶다는 카톡을 보낼 만큼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민우는 어떠한가. 가난한 작가 지망생으로, 힘들어하는 여자 친구에게 힘이 되어주지만 결국 능력 좋은 남자와 바람이 난 여자 친구에게 배신당하는 불쌍한 캐릭터인듯싶었다. 그러나 민우 역시 이성 관계에 있어 떳떳한 상황은 아니었다. 유진이 바람을 피워도 사랑하니까 계속 연인관계를 유지할 것이라 유영에게 말하던 민우는 사실 다른 여자와 100일째 연애 중이었고, 자신의 불행한 상황을 일정 부분 여자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데 쓰는 찌질한 면모도 지니고 있다. 이제는 스킨십도 거부하는 유진에게서 도저히 위로받을 수 없었다고 말하는 민우의 모습에서 안쓰러움과 찌질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렇다면 유영은? 한 살 어린 동생을 누구보다도 생각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유진에게 누구보다도 심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변변치 않은 직업을 가진 자신을 부모님 앞에서 괄시했다며 쌍욕을 퍼붓고, 자신에게는 살갑게 대하지 않으면서 유진에게만 애교를 부리는 강아지를 죽이기까지 했다. 심지어 유진에게 진정제랍시고 자신이 먹는 마약성 약을 먹인 전적도 있다.


민우와 유진의 대화가 점점 격해짐에 따라 서로의 추한 면모에 대한 진실까지 수면위로 드러나게 되고, 관객들은 사라진 유진의 행방보다도 이 세 간의 애증 어린 관계에 더 집중하게 된다. 연인과 형제. 둘 다 아주 가깝고 수평적인 관계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그 속에서 유대감과 사랑을 통해 더할 나위 없는 애정을 가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서로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격렬한 애증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세 사람의 관계를 통해 알게 된다.


 

 

결말_ 복수와 반전…. 그 이후는?


 

쉼 없이 대화가 이어지다 극의 마지막, 갑자기 상당한 반전이 찾아온다. 그 반전은 바로 유진의 복수와 관련된 것인 것만을 언급하려 한다. 복잡한 관계를 생각하면 사실 복수라는 설정이 큰 반전은 아닐지 모르지만 기괴하게 쓰러지는 인물의 연기가 워낙 실감이 나, 그 복수가 더욱 극대화되는 측면이 있다.

 

복수는 성공적이었고 관객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유진은 여전히 살아남았다. 하지만 살아남은 유진에게는 무엇이 남았나. 정리되었다고도, 혹은 완전히 와해하였다고도 볼 수 있는 관계와 후련함, 그리고 죄책감 아닐까. 실종이라는 쉽지 않은 속임수를 쓰고서라도 얻고자 했던 유진의 목표는 무엇인지 우리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서로가 연결된 듯하면서도 언제든지 끊어질 것만 같은 복잡한 관계들 속에서 사는 우리들에게서도 유진을 읽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는 점에서 연극 <실종법칙>의 결말은 찜찜하고도 어딘지 모르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김정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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