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까진 바라지 않아도 [사람]

글 입력 2024.04.15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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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개했던 벚꽃이 지고 어느덧 슬슬 더워지는 계절감이 느껴진다. 나는 올해 3월에 복학했고, 일주일에 3일은 꼬박꼬박 등교를 위해 새벽 5시에 기상하곤 한다.


학교, 집, 아르바이트, 학교, 집,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매일 똑같은 일상 속에서 내 마음 한켠에 꾸준히 자리 잡은 게 있다면, 그것은 나를 대하는 나의 태도라고 해야 할까.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하지 않는다.

 

시작은 2018년,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다. 생각보다 사소한 일로 시작됐다. 점심시간의 교실 컴퓨터는 항상 유튜브 시청용으로 사용되었고, 활달하기로는 반에서 제일가는 친구 한 명이 마우스를 차지했다. 그러고는 한 남자 유튜버를 보더니,


 “야, 이 사람 김지현 닮았어!”


그 뒤로 나는 반에서 그 유튜버의 ‘잃어버린 여동생’ 포지션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정말 묘하게 그 사람과 내가 닮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나오는 모든 사진 속 내 얼굴이 그 얼굴을 연상케 했고, 친구들 역시 부정하지 않았으며(오히려 긍정했다. 이 녀석들.) 그렇게 알게 모르게 내 자존감은 낮아지기 시작했다. 웃으면서 듣다 보니 웃을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그 유튜버의 그늘에 살고 있다. (…) 참, ‘웃픈 일’은 이런 게 아닐까.

 

 

[크기변환]girl-5831239_1280.jpg

 

 

작게 시작된 일은 생각보다 심각해졌다. 친구와 함께 예쁜 곳을 놀러 가도 얼굴이 나오는 사진은 잘 찍지 못했다. 뒷모습만 주야장천 찍다가 일부러 엽기적인 앞모습을 찍곤 했다. 어쩌다 친구가 갑작스럽게 찍어준 내 얼굴을 보면 ‘진짜 이게 내 얼굴인가?’ 싶은 생각까지 들어 침울해졌다.


또 다른 문제는 찍히는 사진마다 다 다른 사람같이 나온다는 점이다. 그래서 내 별명은 현재 ‘천의 얼굴’을 훌쩍 뛰어넘은 ‘억의 얼굴’이다.


‘셀카나 거울로 볼 땐 이 정돈 아니었는데…’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남이 찍어준 사진만 보면 자존감은 다시 바닥을 쳤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게 나온 사진은 곧장 친구들에게 보내 “나 진짜 이렇게 생겼냐”고 물어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돌아오는 답변은 다음과 같다.

 

 

1. 사진발(?)이 잘 안 받는 타입인 것 같다.

 2. 저렇게까진 안 생겼다.

 3. (여러 사진을 보낸 경우) 이것보단 저게 더 네 얼굴 같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유순해진 답변들이다. 새로 생긴 문제가 또 있다면, 내가 그것마저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눈으로 보는 내 모습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

 

나를 사랑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사랑하는 것까진 바라지 않아도 나를 싫어하진 말아야 했는데, 그것조차 지키지 못했다. 내 행동, 성격 때문도 아니고 외모라는 요인에 휘둘린다는 게 어딘지 모르게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내면이 단단하지 못해서 이러나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가 매번 나를 싫어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것저것 다양한 시도는 많이 해봤다. 거울을 보고 나를 사랑하는 연습(?)도 해봤고, 하루에 한 번씩 나를 칭찬하면서 달력에 칭찬 스티커를 붙이는 것도 해봤다. 자존감 높은 내용의 가사가 담긴 팝송도 들어봤고, 관련된 쇼츠, 영화 클립 등 영상 콘텐츠도 봤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나는 남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에만 매달렸을 뿐 아니라, 나를 보듬어주는 방법까지도 남이 한 방법에 의존하려 했던 것 같다.


자존감이 높은 건 좋지만, 지금 내 상황에서 자존감이 높기까지 바라는 건 너무 욕심인 것 같다. “’자존감’은 높지 않더라도 나를 ‘자조(自嘲)’하진 말아야지.” 이게 지금의 내 마음가짐이다.

 

 

 

김지현.jpg

 

 

[김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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