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 목소리 속에서 다른 목소리로 - 도서 '진실과 회복'

글 입력 2024.03.3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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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반적인 정신적 스탠스를 고려해보았을 때, '진실과 회복'은 썩 유쾌하게 읽히는 책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나는 정신적 상흔을 남기는 과정에서 표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명확한 구분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구분하고, 가해가 일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상황에 대해 초점을 맞춰 사회적 변혁을 강조한다.

 

나는 외부세계의 영향력을 인정하지만, 인간의 내적 세계에서 외부와 내부, 자기와 타인, 가해자와 피해자가 복잡하게 얽혀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의 내적인 세계에서 치유는 존재하지 않고, 하나의 사건에 뭉친 수많은 양면을 하나하나 구분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알아내는 것만이 사건 이전과 이후를 이해하는 -일종의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진리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은 치유와 다르지 않다. 이 부분에서는 저자와 같은 의견이다.

 

결과적으로 외부세계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것과 외부세계를 바꾸는 것만이 궁극적인 치료에 이르는 길이라는 문장은 분명히 다르다. 책의 저자가 이 주장을 확연하게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책의 제목과 '권력', '정의의 비전', '치유'에 이르는 책의 배열과 행간 사이에서 사회적 변화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뉘앙스가 있다.

 

둘째, 이 책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변화를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통해 강조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 책은 트라우마 연구의 저명한 학자로서의 지식과 광범위한 조사활동과 사회적 의제를 연결하고 있는 책이다. 챕터의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책은 학술적 목적이라기보다 언론적 목적으로써 발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범위가 넓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설득 적이고 매력적인 연결로 가득하다.

 

이러한 접근 방식이 개인적으로 선호되지 않았다. 일례로 1부 권력의 '독재의 규칙'과 '평등의 규칙'은 대조되고 있지만, 명확히 정의되지는 않는다. 책은 역사, 정치, 인권, 심리학, 실제 사례가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삽입되는 식으로 전개되는데, 근거들이 모이는 주장이 명확해서 읽기는 명료했지만 '정말로 그런가?'에 대한 질문이 계속해서 흩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스탠스 속에서 읽는 내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강렬한 포인트들도 있었다. 결론만 두고 말하자면, 이 책은 정말 우리 시대에 필요한 책이다. 몇몇 부분에서 저자의 주장이 구체화하지 않아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고, 정교화되었으면 하지만 이 책이 궁극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방향만큼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여성으로서 자신의 학문을 이어갈 수 없었던 시대, 유대인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이었을까? 저자가 인용한 프로이트에서 그녀가 마주한 현실과 그녀가 만났던 환자들이 얼마나 큰 고통과 오해 속에서 살아갔는지 책을 읽는 내내 절절하게 느껴졌다. 그런 시대에서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부지런히 활동을 멈추지 않는 그녀의 목소리는 정말로 소중하다. 그녀가 겪었던 문제는 오늘날에도 산재해 있다. 그것을 보호하기 위한 열망을, 내가 위에 열거한 이유로 빛바래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독재의 규칙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틀어막지 않고 "말하게 하고 싶다"라는 의지로 가득 차 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복잡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명료해 보이는 문장에서 발생하는 강박적인 의문의 연쇄를 해결해주길 원하는 마음이,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의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고양감이 든다는 마음이 동시에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막으려는 목소리와 소리치게 하려는 목소리가 내 안에도 동시에 존재했던 셈이다. 물론 전자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봉했던 가해자나 방관자와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저자와 같은 수많은 이전 시대 사람들의 끝없는 고민과 실제적인 실천 속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세대의 사람 중 하나다.

 

나 역시 사고의 기반을 만들어준 그들과 마찬가지로 치열하게 고민하여 다음 세대에 더 큰 사고의 자유로움을 줄 수 있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가장 오래 걸리는 혁명''은 저자가 이야기하는 방향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양한 개인적 주제, 삶의 경험, 지적 선호에 의해 나는 아마 그녀와 다른 방향을 갈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원했던 어떤 조용한 진보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가 마주한 것들을 명확하게 보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래서, 오랜 시간 자신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이 여자의 용기가 감사하다.

 

 

[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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