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어, 나, 어서오고.

글 입력 2024.03.3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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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꽤 성실한 편이다. 내일 아침을 대비하여 오늘 밤부터 미리 피곤해한다. 더불어 자연과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머리 대신 머리카락을 기르는 화분을 이고 다니며 지구의 환경 보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노력한다. 자동차를 타는 것도 싫어해서 어지간하면 걸어 다닌다. 얼마나 성실하고 이타적인 삶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참으로 부끄러운 생을 살아왔으나 하루에 커피 한 잔 정도는 큰 걱정 없이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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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클레어, 다자이 오사무, 호타로, 나, 레쓰고.


 

월클 라인에는 못 끼지만 우중충 라인에는 한 자리 차지할 수 있는 게 나라는 사람이다. 이들을 특정 단어로 묘사하자면 부끄러움, 우울, 무기력함 정도로 충분하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등바등 하지도 않는다. 어떤 결과를 내기에 딱 충분한 정도의 열정을 쏟는다. 어떤 때에는 자기비판과 모멸에 함몰되어 끝도 없이 아래로 침잠한다. 또 어느 날에는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다 세상과 다른 사람들 때문이라며 남에게 화살을 돌린다. 이러지도 못하는 데 저러지도 못하는 삶을 산다. 트와이스가 혼성이라면 한 자리 내주면 좋겠다. 또한 나는 언제나 거울 너머에 서 있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마주한다.


예전에 우울증을 앓아 정신병원에 다녔다. 지금은 완치하고 굉장히 쾌활하게 살고 있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다시는 우울증에 걸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치료가 아프거나, 내가 너무 힘들었다는 것보다는 진료를 대기하느라 대기실에 앉아 있던 시간 때문이다. 정신병원이니 당연히 정서적으로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들뿐이다. 그들의 감정 표출이나 고성, 이상행동을 보고 있으면 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굴 속 호수 아래로 가라앉는 돌멩이처럼 무섭도록 조용히 바닥이 보이지 않는 아래로 가라앉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도 건강한 에너지를 받을 수는 없었다.


되돌아보면 내 우울의 원인은 사람보다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라는 내 현실에서 오는 좌절감이었다. 입대로 휴학했는데 훈련소 신체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아 다시 사회로 나왔다. 면제라도 뜨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해 언젠가는 다시 가야 했다. 병역의 의무를 해결하지 못해 별다른 일도 못 했고 언제 다시 갈지 모르니 복학도 못 한다. 전 여친과 현 여친 사이에 놓인 남자 친구처럼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로 활동을 시작한 게 계기가 되어 우울증을 극복했다. 뽑힐 거라는 생각은 못 하고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지원했더니 합격했다. 지금의 나라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사실에 의욕이 생겼고, 단기 아르바이트로 이것저것 일도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며 우중충하게 있을 시간에 뭐라도 하자는 태도를 견지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여기서 글을 쓰고 있고 이제는 이 분야의 전공으로 옮겨와 대학에서 수업받고 있다.

 

 

 

아, 그래서 초록 옷이 젤다죠?


 

나는 길게 말하는 걸 싫어한다. 길게 쓰는 것도 싫어한다. 내용이 많은 게 아니라 한 마디, 한 문장이 쓸데없이 장황해지는 걸 싫어한다. 한 호흡으로 너무 길게 말하려고 하면 끝에는 숨이 모자라 목소리가 안으로 기어들어 간다. 글도 비슷하다. 문장이 과도하게 길면 그 문장이 끝날 무렵에는 집중력이 저 하늘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다.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데 읽는 사람의 생각 속에는 이거 언제 끝나나 하는 것만 남는다. 눈도 피로해진다. 그런 이유로 나는 짧고 간결한, 즉 눈이 가벼운 문장을 좋아하고 이를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요즘 시대에는 이런 글쓰기가 맞는 것 같다. 신문 기사라든지, 블로그나 카페의 글이라든지, 하다못해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게시글도 한 페이지 아니 반 페이지만 넘어가도 ‘세 줄 요약 좀’이라는 댓글이 달린다. 우리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살고, 쏟아지는 콘텐츠에 휩쓸리며, 그 소용돌이는 꽤 속도가 빠르다. 순발력 있게 행동하지 못하면 나가떨어진다. 그렇게 살다 보니 빨리 읽고 요점만 파악할 수 있는 콘텐츠만 찾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꽤 성실한 사람이며, 능이버섯이 아닌 능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기 세뇌를 열심히 걸고 있다. 이런 나의 지향점은 누구라도 쉽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면서도 재미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샌님은 거부한다. 양아치도 싫다. 날라리. 나는 날라리 같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다. 말투는 조금 가볍고 경망스러워도 그 내용은 속이 꽉 차 있는 것. 지금 나라는 사람을 이야기하는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이 마지막 문장의 끝에서 어떤 피로감도 남아있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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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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