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상상력을 자극하는 자연의 서사 - 북극을 꿈꾸다

텍스트로 펼쳐지는 광활한 북극 이야기
글 입력 2024.03.23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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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자연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집 앞 모래 놀이터에서 개미가 기어다니는 모습을 흥미롭게 관찰하던, 토마토 묘종을 키우며 생명력의 힘을 느꼈던, 누에 애벌레가 뽕잎 먹는 순간을 우두커니 지켜보던 내가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행복하고 즐겁다. 지금은 동물, 특히나 새를 좋아한다. 새들을 바라보며 하늘을 나는 건 어떤 느낌일지 종종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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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부제인 '우리의 삶에서 상상력이 사라졌을 때'를 읽고 생각이 여기까지 흘러왔나 보다. 사실 제목(북극을 꿈꾸다)을 처음 봤을 때 인간이 행하고 있는 일련의 행위들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룰 줄 알았다. 태초의 북극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는 내용이 아닐까 짐작하기도 했다. 아마도 '지구 온난화'라는 환경적 쟁점 때문이리라. 물론 이전에 시청한 다큐멘터리의 영향도 있을 테다.

 

도서 <북극을 꿈꾸다>는 저자가 있는 그대로의 북극을 담아내려 애쓴 흔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북극'이라는 대지의 아름다움, 하늘에 펼쳐지는 황홀한 오로라.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카리부, 사향소, 북극곰, 일각고래의 이야기까지. 북극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보다는 북극의 경이로움과 아직 풀리지 않은 미지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다.

 

북극을 아름답지만 척박한 땅이라고 이야기하는 여느 입장과는 다르게 배리 로페즈는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며 편견 없이 이 땅을 바라보고자 했다. 때로는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특정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는 친절한 모습도 보였다. 책을 읽는 내내 자연의 말을 오역 없이 그대로 해석한 느낌이라 흥미로웠다. 특정 동물의 이야기로 시작해 땅과 하늘, 더 나아가 자연-인간의 역사까지 폭넓고도 깊게 파헤치는 그의 문장과 묘사는 담담하지만 생동감이 넘쳤다.

   

"나는 쌍안경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시간을 느낄 수 없는 오후다. 티끌 하나 없는 대기 속을 똑바로 통과하는 햇빛 때문에 왼쪽의 구불구불한 강과 수십 제곱킬로미터에 걸친 갈색 툰드라과 녹색 사초 평원이 고요하고 드넓은 수반에 담긴 것처럼 눈앞의 공책을 보듯 가깝고 선명하게 보인다. 땅은 순수해 보인다. 저 아래 생물들은 몇 걸음씩 서성이며 풀을 뜯는다. 캐나다두루미 두 마리가 강가에 가만히 서 있다. 달빛 같은 가냘픈 은색 피어리카리부 세 마리가 특유의 긴장된 모습으로 가파른 강변에서 풀을 먹고 있다. 툰드라가 녹아서 곳곳에 못이 생겼다. 비스듬히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감청색 못들이 평원 여기저기에서 눈에 띈다. 커다란 못 한가운데에는 연한 초록색 얼음 핵이 응축된 겨울의 정기처럼 물 밑에서 반짝인다." 

   

이 단락을 보고 떠오른 장면이 있다. 2014년 겨울, 핀란드 수오멘린나 섬으로 가는 길에서 얼음으로 뒤덮인 바다를 깨부수며 항해하는 배를 탔던 기억이 선명하다. 겨울이 너무 추운 탓에 파도가 치는 바다인데도 두꺼운 얼음층이 넘실거렸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눈으로 보고도 잘 믿기지 않았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광활한 대자연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가 달달 떨려오도록 추웠지만 커다란 배가 얼음덩어리를 헤치고 나아가는 소리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얼음의 파열음을 들으며 한참을 바라보다가 귓바퀴에 감각이 없어질 때쯤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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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강렬하며 가끔은 영원을 꿈꾸게 만든다.

   

"오로라는 쉽사리 경외감과 유순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오로라의 가장 놀라운 효과는 보는 사람을 감정적으로 고양시켜 스스로를 초월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오로라는 미처 자기 연민을 느낄 새도 없이 하늘 전체를 삼차원으로, 그처럼 광대한 크기를 그처럼 아름다운 방식으로 던져준다." 

 

내 버킷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 바로 오로라 직접 보기. 몇 년 전을 떠올리면 북유럽 여행을 갔을 때 '조금 더 고위도로 올라가 봤어야 했다'싶지만 기회는 또 만들면 되는 거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위 단락을 읽으며 조금 더 상상력의 포문을 열어둔다.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할 오로라는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것이 자명하므로. 쏟아지는 별빛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황홀경이 펼쳐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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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모순의 한가운데를 살아가야 한다. 모든 모순이 일거에 제거되는 순간, 삶도 붕괴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짓누르는 중요한 질문 중 몇 가지는 그냥 답이 없는 질문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야 한다. 우리의 삶이 빛에 다가가려 한 하나의 고귀한 표현이 되도록 애쓰면서." 

 

저자가 이 책을 마치며 쓴 구절 중 하나인데, 어쩐지 이 문장이 배리 로페즈가 독자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생각되는 문구였다. 자연주의자의 책이라고는 하나 지금 이 작품 또한 '나무'를 베어낸 '종이'로 만들어진 산물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이 책을 읽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는가? 결단코 아닐 테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수많은 모순을 마주하고 그것들에 둘러싸여 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시끄러운 모순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결코 살아가지 못하리라. 다만 잊지 말길 바란다. 그 속에서도 '빛'에 다다르려는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걸. 많은 이들이 북극을 그렇게 바라봐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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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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