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알을 깨고 나와야 했던 이유 [도서]

헤르만 헤세 <데미안>에 대한 물음
글 입력 2024.03.2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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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속은 따뜻하고 편안하기 그지없다. 누구도 건들 수 없는 안전하고 완전한 공간이다. 굳이 이 세계에 균열을 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지금 당장 하늘을 올려다보면 보이는 저 새들도 알 속에 숨어 있던 작은 생명이었듯이, 높이 날기 위해서는 알이 감싸고 있는 경계에 금을 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새롭게 맞이하는 세계가 지금보다 더 달콤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아니,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모른다. 그 세상이 나에게 좋을지 나쁠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처음으로 시도한 날갯짓이 바람에 흔들릴지, 정성스레 지어 놓은 둥지가 한순간에 무너질지 누구도 앞서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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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여기 이 알 너머에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도 새는 얇고 여린 부리로 단단한 벽을 쪼아 대기 시작한다.


인간은 어떻게든,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꾀하려는 존재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앞으로 나아가려는 욕구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완전함이라는 감정이 들 때 줄곧 불안감도 함께 느낀다. 그것은 미완의 불안감을 넘어서는 어떤 미묘한 감정이다. 누군가는 안정적으로 다니던 직장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도, 누군가는 단란한 가족 안에서 그런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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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은 읽어 보았을 도서 <데미안> 속 주인공 싱클레어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따뜻한 집에서 자라며 행복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어딘가 채워지지 않은 기분을 느낀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는 스스로 알을 깨고 밖으로 나간 적도, 그리고 그를 둘러싼 일부의 세상 그 너머를 경험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을 깨고 나온 싱클레어가 맞닥뜨린 세상은 어떠했는가? 기대만큼 대단하고 아름답고 웅장했나?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가 새롭게 맞이한 세상은 초라하고 어두웠다. 심지어 그 누구도 그의 결말만은 완벽한 해피 엔딩일 것이라고 장담하지도 못한다.

 

이렇듯 난생처음 알을 깨고 맞이한 세계가 나에게 좋은 것만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그곳에는 안락한 집도, 고요한 적막도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유약한 새가 온 힘을 다해 자신을 감싼 단단한 벽을 스스로 깨는 이유는, 앞으로 맞이할 세상에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을 감내하는 방법을 배운다. 왜 모두들 그런 번거로운 길을 택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의문이 드는 당신도, 여태껏 그렇게 살아왔음을, 그래서 이제껏 성장해왔음을 이내 깨닫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알 속에 머무르는 선택지는 애초에 우리에게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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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클레어가 위태로운 시도를 이어갔던 이유는 단 하나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보게 될 세상이 어떻든 간에 말이다.

 

우리 모두는 거기 그 자리에 계속 머무를 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결과가 어떻든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그 과정 안에서만큼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보통 둥지에는 여러 알들이 한데 모여 있다. 혼자서 벽을 깨어 서늘한 공기가 알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더라도, 그래서 엄청난 위압감이 당신을 덮치더라도 그 밖에 같은 공기를 공유할 새들이 있음은 틀림없다. 그리고 그들 역시 두려움을 깨고 하늘로 비상하려는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를 기억한다면, 어쩌면 싱클레어가 그의 알을 깨고 나온 쓰디쓴 도약보다는 우리의 도전이 더 달콤 씁쓸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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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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