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리되, 그리지 않은 것 같은, - 작가와 관객이 좀더 가까워지는 시간

글 입력 2024.03.2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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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화가 이상남 님의 작품에 대해 하나의 거대한 도슨트를 생생하게 듣고 있는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요즘 통 미술관에 갈 시간을 내기 어려워 마음이 적적하던 찰나, 우리집에 작은 미술관이 펼쳐진 것 같아 기분이 환기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미술관에서 전시를 고르는 것에 대해 뚜렷한 주관이 없고 배경지식도 거의 없는 편인데, 오히려 그 덕분에 매번 새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음에 행복합니다. 이번에도 화가 이상남의 작품이 실려있는 표지를 보며 어떤 작품을 만드는 화가이실지 궁금증과 동시에 묘하게 기하학적인 느낌과 사찰에 가면 느끼는 마음이 차분해지는 그 느낌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미술관에서도 배경지식 유무와 도슨트 유무에 따라 같은 전시더라도 흡수되는 내용은 천지 차이이기에 시인 채호기 님의 이야기가 담긴 1부와 화가 이상남 님과의 인터뷰가 담긴 2부로 구성된 이 책을 통해서라면 첫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후 사정을 및 그의 작품세계를 맛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읽기 전에 드는 궁금증이라면, 시인 채호기에 화가 이상남은 어떤 존재이기에 이렇게까지 책으로 엮어가며 세상에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가 도상을 컴퓨터를 이용하여 복제하지 않고 직접 그린다는 것은 그린다는 행위 자체가 그의 그림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책에 수록된 작품들을 쭉 보다 보면 자유분방하기보다는 굉장히 곧은 직선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것 같은 원들이 손 그림인 것과는 이질적으로 느껴집니다. 왜 이렇게 반듯한 도형을 그리는 데에 집중했을까 하고 보다보면 화가의 의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과 그려진 결과를 두고 볼 때 둘 중에서 ‘과정’ 부분을 주목했습니다.

 

 
화가는 “직선은 죽음이다. 원은 삶이다.” 라는 말을 여러 번의 인터뷰에서 반복해서 하고 있는데, 이때 죽음은 삶의 결과나 완성으로서의 죽음이 아니다.
 

 

삶과 죽음, 그 사이의 질서와 흐름, 어떤 움직임, 힘, 세계, 운동 같은 용어로 표현합니다. 이로 인해 점차 가만히 멈춰있는 도형과 선, 점 정도로 느껴졌던 그림들이 하나하나 조금씩 꿈틀거리는 기분이 듭니다. 설명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해당 작품에 더 빠져들어 형상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되고,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감상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색상과 문자, 도형의 흐름과 느낌이 살아가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인생에 대한 고민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귀 기울여 들어보기도 합니다. 혹은 끝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도태되거나 고립된 세계에 갇히지 않기 위해 작가가 취한 방식을 보며 배울 점을 찾고 어떤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사물을 바라보는가에 대해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화가의 노동의 효과는 자기 만족의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그 노동의 감응이 그대로 그림을 보는 관람객에게도 전이되어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또 책을 읽다보면 그의 작품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해서 작품을 그리는 방식의 변화나 해석, 그에 대한 여러 기존의 자료 같은 것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도 조금식 알 수 있었습니다. 그가 처한 상황이나 어려움, 혹은 그가 빠져 있던 대상과 작품에서 담아낸 이야기의 연관성 같이.

 

이 대목에서는 완전 똑같은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님이 한 티비 프로그램에 나와서 얘기하신 것이 떠올랐습니다. 대학생 시절 뛰어난 실력에 자만하며 수업 시간에도 그렇게 대강 연습하고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이에 대해 선생님께서 관객이 아무것도 못 느낄 것 같으냐는 따끔한 조언을 해주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악보대로 잘 부른다고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진 연습과, 이 행위를 대하는 자의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면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느끼는 것이 충분히 다를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실력이 뛰어난 이 두 분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열심히 노동하고 최선을 다하는데, 내가 언젠가 이 노력을 하지 않으려 할 때 다시금 꺼내보고 싶습니다. 한마디의 조언보다 존경할 만한 누군가의 가치관과 노력을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하는 게 마음속에 훨씬 더 큰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그의 작품을 실제로도 보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경기도 미술관과 주일 한국대사관에 영구설치 작업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니 기회가 된다면 방문하여 직접 두 눈으로 감상해보고 싶어집니다.

 

 

[김성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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