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알지 못하는 곳을 꿈꾸기란 - 북극을 꿈꾸다

글 입력 2024.03.19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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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 경험.

 

어린 시절, 국어 선생님은 독서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간접 경험’이라고 하셨다. 직접 겪을 수 없는 일, 겪어보지 못한 일을 간접적으로나마 겪게 함으로써 풍부한 경험을 ‘겪어본 것과 같이’ 된다고. 그리고 <북극을 꿈꾸다>는 내가 모르는 세계를 마치 내가 경험해 본 것과 같이 만들어준다. 북극의 동물들부터 인간에 대한 이야기까지, 놀라우리만치 세세한 묘사와 박식한 내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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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읽어볼 수 있었다. 발도 디뎌보지 못한 세계, 살면서 디딜 일이 있을까 싶은 땅. 배리 로페즈의 빈틈없는 묘사와 주관적인 감각들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담백한 문장들로 이루어진 책이다.


‘낮’이 아침과 오전, 오후, 저녁으로 구성된다는 사고는 우리 머릿속이나 우리의 문학, 예술에 뿌리박힌 말이 필요 없는 관습적 사고다. 그런데 북극은 다르다. (S.57)


그러나 적도에서 북방으로 온 우리 눈에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큰 변화는, 이 땅이 개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전문가의 눈에도 이 땅은 생명의 요소들, 즉 흐르는 물이나 빛, 온기 같은 것들이 결여된 절대적인 한계 지역으로 보인다. 인간이라는 동물의 관점에서 보면 이곳은 절대 자식을 낳아 기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S.63)


저자는 자연 속에 숨어들어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아닌 그저 자연의 일부로 그 시공간에 존재하며 세계를 관찰한다. 예시로, 그는 자고 일어났을 때 절대 급하게 움직이지 않으며, 주변에 어떤 동물이 있고 어떤 상황인지 파악부터 한 뒤 몸을 움직인다. 그러다 어느 하루 앞에 놓인 바위에서 땅다람쥐의 움직임을 발견하면, 그로써 또 그만의 새로운 경험을 가져가는 것이다. 최근에 읽은 책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이 떠올랐다. 물성만을 지닌 존재인 것처럼 행동하며 원하던 내용을 알아내고 목적을 달성한다. 하나의 물체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며, 동물의 습성을 알아내고 사냥을 한다.

 

개인적으로, 6장 <얼음과 빛>에서 저자의 의지와 용기, 연륜이 활자만으로도 와닿아 흥미로웠다.


우리 중 몇 명을 뜬눈으로 밤을 새우게 만든 얼음산들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차가운 대기 중에 막 생성되기 시작한 회색 안개의 침묵에 둘러싸인 채, 얼음산들은 가차 없이 남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젯밤에 살짝 스치기라도 했다면, 배 안은 찢어지는 경보음과 경적으로 가득하고, 우리는 폭풍 대비용 복장으로 작은 구명보트를 향해 갑판 승강구를 뛰어올랐을 것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걸치다 만 옷자락 때문에 비틀거리면서. 들개처럼 날뛰는 공포를 안고 6미터 아래의 바다와 얼음과 어둠 속으로 내려가는 기분은 어땠을까. (S.333)


오늘날 대양을 가로지르는 대항해를 하는 선박들에도 구명보트를 타고 수면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경험은 결코 흔하지 않다. 특수선의 경우 특이한 사건과 사고가 더 잦을 수는 있겠지만... 여하간 구조선을 타고 배에서 탈출하는 일이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 일을 매번 각오하고 빙산 사이를 지나다니며 바다를 가로질러 북극으로 향하는 날이란, 애초에 어지간한 각오가 아니면 불가하다. 저자는 어떠한 삶을 산 것인가. <물고기는 죽지 않는다>가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장이기도 하다. 목표를 향해 고민할 틈도 없이 걸음을 내딛는 삶. 발견하고, 분류하고, 연구하고. 인간의 삶이 이러한 수많은 연구를 토대로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 와닿지 않기도 한다. 지금도 이런 일이 극지방과 우주 어딘가에선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지구의 다양한 대지를 개인적으로 알기는 힘들다. 땅들은 야생동물들만큼이나 대화하기 힘든 존재들이다. 사람이 자신이 나고 자란 곳에서 느끼는 친근감과 안정감은 다른 어떤 땅에서도 다시 생겨나기 힘들다. (S.405)

 

어떤 문화든 탐험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믿는 것이 서구 사상의 관행이다. 경제가 등을 떠밀기 때문에 인간은 새로운 땅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유효하지만 비인간적인 이 주장은 순수한 동경과 덜 복잡한 삶이나 땅과의 유대감 회복 같은 유의 인간 욕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 욕망 또한 우리를 새로운 땅으로 이끌었다. (S.405)

 

요즈음 제기되는 북아메리카 정치 문제 중에서도 가장 곤란하고도 가장 역설적인 문제가 워싱턴과 오타와에서 공표하는 법과 규제가 대체로 땅의 실정에 무지하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나 기껏 그 속을 돌아다니는 수고를 하는 때에조차, 우리는 다들 땅을 불완전하게 이해한다. 우리 지각은 선입견과 욕망으로 채색돼 있다. 물리적인 땅은 체계적으로 조직되지 않은 시간과 공간의 거처이며, 완벽하게 측정되지 않는다. (S.407)

 

저자의 자연에 대한 인식과 의식이 드러나는 문장들이 군데군데 녹아있다. 관찰 방식뿐만 아니라 가치관, 삶에서의 행동 방식 등 모든 것이 지속 가능성이 높은 방향을 추구하는 듯한 저자의 말은 편안하게 와닿는다. 미래를 살아갈 인간이 지녀야 할 태도와 가까워 보인다고나 할까. 단순히 생태계를 해치고 망가뜨리는 것이 아닌, 지키고 보존하며 ‘자연스럽게’ 두는 것. 자연은 일방적인 폭력이 아니라 상호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연대의 대상으로 둬야 한다.

 

스테파운손의 쌍안경을 처음 본 에스키모가 이렇게 물었다. “이것으로 내일도 볼 수 있소?” 스테파운손은 그 질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재미있어했다. 그 ‘이누크’가 의미한 건 아마, ‘내일이 돼도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서 이동하는 카리부나 내일이 돼도 도착하지 못할 먼 야영지 같은 것을 보여줄 만큼 이 물건이 강력한가?’였을 것이다. (S.413)

 

현지인들과의 대화, 현지인들에게서 배운 사실들과 함께 한 경험이 내용의 태반을 구성하는데,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을 법한 시공간적 감각을 잠시나마 벗어나 볼 수 있다. 시제가 다른 문법, 스스로를 입히고 먹일 줄 아는 자들의 삶의 방식과 언어는 콘크리트에 갇혀 사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과거라는 개념이 없다니. 얼마나 놀라운가.

 

에스키모들의 이야기들이 정중하게 폄하되는 이유는 에스키모인들이 좋은 관찰자가 아니라거나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가 다루기 쉽고 요약할 수 있는 형태로 축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언어는 숫자로 바꾸기가 몹시 어렵다. (S.427)

 

북극의 땅, 동물, 나무, 사람 모든 것을 세세히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도록 하는 묘사 덕분에 우리는 충분히 북극을 꿈꿀 수 있다. 상상력도 능력이라는데, 밑그림도 그릴 줄 모르는 꿈을 꿀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땅에 대해 배우려면 비행기를 타고 둘러볼 것이 아니라 ‘땅 위에서 잠을 자거나 덤불을 가르며 오후를 보내(S.449)보라는 저자의 조언과, 궁금한 대상이 있으면 직접 탐구해 보는 자세를 몸소 보여주는 저자는 단순히 ‘북극’에 대해 꿈꿔보라고 하는 것만이 아닌 듯하다. 탐험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두께가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읽을 것이라 장담한다.

 

 

[이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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