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리를 찾는 과정, 바닷마을 다이어리 [영화]

내가 머물 자리는 어디일까
글 입력 2024.03.1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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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건 다 손길이 필요해"

 

첫째 '사치'가 막내 '스즈'에게 하는 말입니다. 마치 너에겐 우리가 필요하다며, 세 자매에게 '스즈'가 소중한 존재임을 알려주는 듯한 대사죠.

 

4평 남짓 좁은 집, 아니 방이라 불러야 맞을 것 같은 곳에서 끙끙 앓던 날 사치의 말은 제게도 위로가 되었어요. 첫 독립, 아픈 몸, 막연한 미래 나의 자리가 위태롭다 느껴질 때 봤던 영화 < 바닷마을 다이어리 >는 살포시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동명의 만화가 원작인 영화 < 바닷마을 다이어리 >는 우연히 세 자매(사치, 요시노, 치카)가 외도로 집을 나간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배다른 동생 스즈를 만나 가족으로 맞이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담히 그린 영화입니다.

 

스즈는 마음 한편에 자신 때문에 언니들의 가정이 망가졌다는 죄책감을 가졌죠. 너무 어린 나이에 어른이 되어버린 스즈에게 언니들은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주지만, 스즈는 존재만으로 상처가 되는 자신이 싫기만 합니다.

 

자신의 선택으로 상처를 주고 있는 사람은 스즈만이 아닙니다. 사치도 자신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이 있는 걸 알면서도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으니까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몽땅 빼앗아 가버린 아버지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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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와 스즈, 이 둘의 관계성에 이끌려 영화를 봤어요. 필자도 첫째라 그들이 짊어진 짐을 그리고 잃어버린 유년을 생각하며 둘의 그림자를 좇았습니다. 사치가 스즈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고 있다는 걸, 이미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같이 살래?"란 사치의 말에 스즈가 그러겠다고 손 흔들며 뛰어올 때부터 이미 눈물샘이 터져버렸죠. 어린 시절을 잃어버린 두 아이가, 자신의 자리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끝내 결정하는 순간까지 순탄한 건 없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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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모르게 인간은 상처를 주고 또 나아집니다. 사치는 스즈의 유년 시절을 채워주기 위해 노력하죠. 동생의 그림자를 밟으며 계속 말을 걸죠. 영화의 마지막, 사치는 아버지와 자주 오던 카마쿠라의 언덕에 스즈를 데려가요. 그곳은 스즈가 떠나온 언덕과 닮았죠. 둘은 사랑하고 증오했던 당신의 어머니, 아버지의 그늘에서 심적으로 아주 힘들었음을, 그리고 영원히 네 자매로 살고 싶은 마음을 공유하죠.

 

살아있는 것들에게 손길이 필요하다는 대사가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 이유입니다. 그들의 자리는 카마쿠라의 오래된 집입니다. 사치가 이 집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고 하자 둘째 요시노는 '언니의 오기'라며 속을 헤집어 놓지만, 그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봅니다. 여기에는 미워했던 아버지와 원망스러운 어머니가 함께 있던 곳이고, 무엇보다 네 자매의 추억이 켜켜이 쌓인 곳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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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의 책임감은 추억 아닐까요. 추억하기에 잊고 싶지 않았던 그날의 기억을 스즈에게 무해하게 전달해 주고 싶으니까요.

 

세 언니는 마트료시카처럼 텅 빈 스즈의 마음을 각자의 방식으로 채워주고 서로 닮아갑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잘 들어줄 사치 언니, 아버지가 궁금한 치카 언니, 그리고 이 모두의 행복을 바라는 요시노 언니. 어려서 가혹했던 시간은 점차 이들의 관계를 끈끈하게 만들어줄 겁니다.

 

꾹꾹 눌러 터질 것 같던 스즈는 평온할 겁니다. 그리고 자매들은 투닥거리고 위로하며 더욱 성장하겠죠. 그리고 우리를 아프게 한 어른들을 이해하고 답습하지 않으려 나아갑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앞으로, 내 자지로 만들어 갈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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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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