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감정의 감정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3.13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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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인간의 감정을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면, 과연 당신의 감정에는 얼마의 가격을 매기겠는가? 그리고 만약 누군가 그 값을 지불한다면, 당신은 기꺼이 그 감정을 팔아넘길 수 있는가?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감정들을 느낀다. ‘희로애락’으로 대표되는 네 가지 감정은 물론이고, 때로는 갖가지 감정들이 온통 뒤섞인,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랑탱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고지순한 여자를 만나 결혼에 성공했을 때는 하늘을 나는 듯 기뻤고,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더없이 행복했으며, 연극과 가짜 보석에 열광하는 그녀의 작은 흠은 그의 사랑에 흠집을 낼 수 없었다.


그토록 완벽해 보였던 랑탱의 일상은 아내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게 되는데, 절망에 빠진 그는 밤낮으로 울며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떨치지 못한다. 살림을 담당하던 아내가 없어진 후 생활고에 빠진 랑탱은 아내의 애장품이던 진주 목걸이를 내다 팔기로 결정하는데, 바로 여기서부터 충격적인 사실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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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인 줄 알았던 그녀의 보석들은 모두 값비싼 진품이었고, 항상 순수하게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생전의 아내는 사실 돈 많은 남자와 외도를 일삼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알게 된 랑탱은 큰 충격을 받고 쓰러지는데, 정신을 차린 뒤 그를 지배했던 가장 큰 감정은 바로 ‘수치심’이었다.

 

그렇게 사랑했던 착한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 매일 새로운 보석들을 선물받고, 심지어 자신의 앞에서 그 보석들을 뽐내며 기만했다니. 아마 그가 느낀 수치심에는 아내에 대한 배신감, 허망함,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까지 모두 뒤엉켜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내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이미 죽은 아내로 괴로워하는 것 대신 그녀가 남기고 떠난 보석들을 모두 팔아치우기로 작정한다. 보석상이 제시한 진주 목걸이 1만 8천 프랑. 그 지폐 18장에 랑탱은 자신의 그 모든 수치심을 감정한다. 이제 수치심에 보석 가게 앞을 서성이던 ‘랑탱’은 온데간데없고, ‘어느 죽은 여자’가 남긴 보석의 감정가를 높이기 위해 소리치는 ‘19만 6천 프랑의 남자’만 남았을 뿐이다.


과연 우리는 랑탱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최근 유행하는 신조어 중 ‘금융 치료’라는 단어가 있다. 말 그대로, 돈으로 마음이나 감정을 치료한다는 뜻이다. 혹자는 랑탱이 아내에 대한 분노와 상처를 ‘금융 치료’했을 뿐이며, 이것이 현대 사회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에 대해 마르크스의 견해를 인용하고 싶다. 화폐는 ‘사랑을 미움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전환시키는 만물의 보편적 혼동이며 전도’라고 말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한, 사랑은 사랑으로만 치유될 수 있으며 인간의 관계는 인간적 관계로만 회복될 수 있다. 사람의 감정을 돈으로 치료하고자 하는 시도는 '모순되는 것들을 입맞추게' 하며, 이러한 결합은 결국 인간의 내면을 더욱 공허하게 만들 뿐이다.


이 소설의 결말은 꽤나 단출하게 마무리된다. 랑탱은 졸부가 된 뒤 직장을 때려치우고, 자신이 그렇게도 경멸하던 공연을 즐기며, 새로운 아내를 만나 다시 결혼한다. ‘두 번째 아내는 배우자로선 행실이 매우 올곧은 사람이었지만, 성깔이 지독했다.

 

그녀는 그의 인생을 매우 불행하게 만들었다.’라는 대목에서 그의 말년이 어떠했을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마도 그는 평생 텅 빈 욕망만을 가슴에 채워 넣으며 살았을 테니.

 

 

[김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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