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끔은 오프라인이어도 괜찮다 -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

글 입력 2024.03.12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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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 인간성의 척도는 세상에 우리를 얼마나 드러내느냐가 아니라 우아하고 조화롭게 우리 자리를 찾는 것에서 비롯될지 모른다. (S.140, <03 - 여기 조약돌 식물이 있다> 中)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피곤하게 살 적에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법한 책이었다. 흩날리는 듯한 산뜻한 색감의 표지와 실제로 가벼운 무게 덕분인지, 꽤 빨리 완독했다.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 정녕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인지, ‘눈에 띄는’ 것이 이상적이고 추구해야 하는 것인지, 환경에 이질감 없이 녹아드는 것이 정말 몰개성한 것이며 지양해야 하는 것인지 담백하게 알려준다. 개성을 브랜드화해 ‘눈에 띄는’ 사람에게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높은 가치를 매기는 듯한 세상을 무시할 힘을 키워준다. 네가 저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란다. 영영 네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란다. 스쿠버다이버가 수면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서 없어진 것이 아닌 듯이.


사람들은 SNS에 넘치도록 일상을 공유하고, 여행이라도 가면 스토리 바가 점으로 보일 만큼 24시간 안에 수십 개의 스토리를 올린다. 보여주고 싶은 것이 내면이든 외양이든 양껏 내세운다. 마치 일주일간 아무것도 올리지 않으면 사람들이 본인을 잊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실 한 달간 휘발성 SNS에 진분홍색 표시를 띄우지 않고, 최근 게시물 업로드 일자에 2달 전이 찍혀있다고 해도 당신을 잊는 사람은 없다. 되려 개중 몇 명은 당신이 무엇을 하고 사는지 궁금해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나마저도 한때는 그랬으니까.


책은 11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의 제목을 주제로 짤막한 의견과 경험이 나열된다. 작가 개인의 경험이지만 결코 작가’만’의 경험은 아니다. 독자들도 기억하고 있을 어렴풋한 옛 시절, 숱하게 겪어본 이질감, 경험이다. 어린 시절 지어본 본인만의 시나리오가 문득 떠오르고(내용은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 영적인 존재와 관련 있는 장소를 지나가면 순간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친구를 놀려본 기억이라던가, 얼굴을 가린 상황에서 저질러 본 평소답지 못한 행동, 그런 것들. 특히 팬데믹을 거치며 우리는 얼굴의 절반을 가려야 했고,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잦았다. 그만큼 ‘보이지 않음’에 대한 경험이 없을 수는 없으리라.

 

익숙한 이야기들이라, 모든 내용이 술술 읽혔다.

 

  
하지만 혼란스럽다. 공개적으로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서 정체성을 찾는다면 뭔가 빠진 게 있는 것 같고 뭔가 정체성의 핵심이 약해지고, 뭔가 존엄성이나 내면성을 잃는 것 같다. 이제 ‘보이지 않기’와 ‘숨기’가 똑같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다. 그리고 눈에 띄지 않는 삶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끊임없는 노출에 대한 어떤 해독제를 찾아내고, 이 새로운 세상에서 보이지 않고, 들키지 않거나 눈에 띄지 않는 게 얼마나 값진지 다시 생각할 때다. 보이지 않게 되는 걸 그저 도피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와 힘이 있는 조건으로 여길 수 있을까? (S.23, <머리말 - 보이지 않는 것에 매혹되다>
 


SNS를 줄이고 홀로 즐기는 시간을 늘리자, 삶이 훨씬 여유롭고 풍부해진다는 점은 겪어서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SNS에 쓰는 시간을 줄인 초반에는 괜히 불안했다. 이렇게 사람들과 멀어지는 건 아닐까,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건 아닐까. 좋아하는 영화 장면, 잘 나왔다고 생각한 셀카, 멋들어지게 찍힌 풍경 사진 등 ‘자아’가 여기 업로드되어 있는 것 같은데, 이걸 지우면 사람들은 이 모습들을 잊는 게 아닐까. ‘얘가 이걸 왜 지웠지’ 하며 나를 변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건 아닐까. 난 전과 다를 것 없이 한결같은데, 오해하는 건 아닐까.


시간이 흐르고 보니 이 모든 걱정은 전부 쓸데없는 근심이었으며, 내 자아라고 생각하며 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취향도 꽤 바뀌었다. 당시에는 잘 찍었다고, 잘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보니 썩 이쁘지도 않은 것들이 늘었다. 내 취향과 성격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음을 그제야 깨달은 게다.

 

  
나는 언제나 자아에는 핵심적인 본질, 어마어마한 흔들림이나 극단적인 상황에서나 바뀔 수 있는 단단한 기반암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자갈, 돌 더미와 함께 모래, 진흙, 광물 등이 뒤섞여 쌓인 충적토로 이해한다. 이 모든 게 비와 눈, 얼음, 기온, 날씨, 시간과 그 자체의 온갖 고유한 특성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시시각각 끊임없이 변화한다. 뇌 손상이나 알츠하이머, 치매 등을 겪은 여성을 두고 “더 이상 그녀 자신이 아니다”라고 말할 근거가 없다면, 매일 아침 생생한 꿈에서 깨어난 후 혹은 흥미진진한 책을 읽거나 수영하러 가거나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은 후 “더 이상 그녀 자신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수도 있다. (S.280, <07 -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자아> 中)
 


책의 제목을 관통하는 경험들이 솔직하고 명료하게 쓰여 있다. 그래서 쉽게 읽힌다. 앞 문장으로 돌아가 다시 읽으며 내용을 되짚는 데에 쓰인 시간은 매우 적었다. 정말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을 알고 싶어서 읽는다면, 물속이든 숲속이든 도시 한가운데든 집이든 본인을 인식하고 의식할 수 있으리라. 호수나 바다에 뛰어들 수 없다면 화장실에서 찬물을 받아놓고 얼굴을 집어넣는 것도 방법이라 일러주는 책이니까.

 

 

그저 우리가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이지 않느냐 역시 우리의 정체성이다. 명료하지 않은 게 우리 자신의 이미지를 다시 만드는 정당한 방법일 수도 있다. 우리 존재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느냐뿐만 아니라 어떻게 숨기느냐와도 관련이 있다. (S.207, <06 - 내가 없는 자화상> 中)

 


훌쩍 다 던지고 떠나고 싶다가도, 입장해 있던 단체 대화방을 왜 갑자기 다 나가버렸는지 후회하기도 하고, 같이 사진 찍자고 할 때는 거부감이 들다가도 나중에 나만 없는 사진을 보니 괜히 서운하기도 하고. 가시성에 매달리는 삶은 변덕이 심하고 피로하다. 이 피로감을 내려놓을 수 있는 법을 공감과 경험으로 알려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책의 뒷부분에 나오는 아이슬란드의 훌드폴크 이야기도 꽤 흥미로웠다. 무교巫敎의 존재들과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훌드폴크의 여왕인 보르길두르의 집으로 알려진 곳은 이끼 낀 길을 따라 올라가면 다다를 수 있는 바위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남북으로는 설산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항구의 끝이 바다와 닿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나라였다면 암자나 누각이 있어도 무관할 듯한 장소로 묘사된다. 훈드폴크의 거주지를 침범했다가는 기계가 망가지고 건설 노동자가 다친다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믿음은, 터 잘못 건드렸다가는 일하는 사람들도 다친다는 우리의 믿음과 상통한다. 역시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나 보다.


그러니까, 보이는 데에 집착하는 것도 역시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 똑같이 걱정하고 불안해하니까, ‘나만 이렇게 보이지 않으면 어떡하지’ 등의 생각 따위 멀리 던져놔도 좋다.

 

  
인간 경험에서 보이고, 인정받고, 알려지는 건 정말 중요하다. 사회적으로 눈에 띄는 건 우리 행복에 꼭 필요하고, 그게 충족되지 않으면 우리는 힘들어한다. 우리 모두 인정받고 싶어 한다. (중략) 우리는 보고 보이기 위해 산다. 그러나 보이지 않아야 할 필요도 그만큼 정말 중요하다고 확신한다. (S.91, <02 - 마법 반지와 투명 망토> 中)
  


소속과 결속감에서 잠시 벗어나 혼자 오롯이 세계를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귀납적인 실험과 저자, 저자 주변의 경험, 생각을 읽다보면 책을 읽는 동안 핸드폰을 꺼두어도 무방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테다.

 

 

“키가 큰 사람이 작아지고 싶은 욕망과 같지요. (…) 아니에요. 그 표현은 너무 단순해요. 점점 나이가 많아지면서 존재감이 줄어듭니다. 세상은 나 없이도 너무 잘 돌아간다고 느끼죠. 그래도 나는 괜찮습니다.”

 

나 역시 괜찮다고 느낀다. 존재감이 줄어들면서 내 정신이 리듬을 맞춘다는 사실을 안다. 존재감이 줄어드는 건 개인과 집단 사이의 그저 작은 충돌일 수도 있다.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이 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쏟는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건 자기애의 욕구 때문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알고, 이해하고, 확실한 정체성을 가져야 충만하고 너그러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S.331, <11 -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경계에서> 中)

 

 

[이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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