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 삶의 두려움을 모아, 소설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글 입력 2024.03.1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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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_표지.jpg

 

 

2019년 셜리 잭슨상을, 2020년에는 월드 판타지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커커스 리뷰], [NPR] 등 각종 언론 및 문학잡지에서 주목한 천재 작가의 눈부신 단편집을 국내 최초로 선보인다.

 

‘환상 호러 소설집’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이야기다. 화려하고 환상적이면서도 공포를 감출 수 없는 이야기.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는 총 22편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스물두 편의 이야기는 분량도, 형식도 모두 제각각이다. 한 장짜리 단편이 있는가 하면, 2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도 있다. 일반적인 소설의 흐름으로 진행되는가 하면, 문단조차 나뉘지 않는 이야기도 있다. 독자는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여러 공포를 마주하게 된다. 한 단어에 담기 미묘한 공포와 환상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어디로 봐도」


 

소설집의 첫 장을 장식하는 이야기다. 단 두 쪽의 이야기가 전하는 공포는 가히 극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먼저, 묘사 자체가 상당히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얼굴 없는 소녀의 이야기는 두렵지 않을 수 없다. 정확히는 뒷모습만 있는 소녀, “무언가가 잘못되는 바람에 같은 쪽만 두 개가 모여 한 명이 되어 버린 소녀”라고 할 수 있었다. 존재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점차 번져갔다. 아이를 버리는 엄마, 소녀를 가두는 사람들을 보며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떠한 존재를 배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음 편히 지켜보기는 힘들다. 그리고 그 이유가 ‘다르다’라는 것뿐이라면 더욱이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존재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는 이유만으로 소녀에게 떳떳할 수 없다. 그렇게 나머지 반쪽으로만 된 얼굴을 본 ‘나’에게 드러낸 적의는 그대로 독자에게 쏟아졌다. 출구 없는 곳에서 도망쳐야 하는 기분을 느낀다.


이것이 그저 이야기일 뿐이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낄 만큼 강한 흡인력을 가진 이야기다. 가슴이 갑갑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고 찝찝함을 지울 수 없다. 작가가 전하는 공포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소설집의 첫 대목으로 아주 적합한 이야기다.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강렬한 이야기의 서막이 오른다.

 

 


「태어난 사산아」


 

피상담자인 ‘하우프트’가 중심이 되는 진행 속에서 그는 계속 의심하고 의아해한다. 상담사가 밤에도 찾아오고, 하우프트는 밤 상담사가 실재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진짜라고 느낀다. 그렇게 묘사된 장면을 통해 독자도 문제의 원인을 찾기 시작한다.


사과와 바나나처럼 익숙한 사물을 사용하여 인간을 비유한다. 사과와 바나나에 인간을 비유한다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다. 익숙한 것으로 그렇지 않은 것을 만들어내는 느낌은 오묘했다. 인간, 사과와 바나나, 껍질, 칼, 다시 인간. 이러한 순서로 흘러가는 사고의 흐름이 섬뜩하기 그지없다. 바나나보다는 사과와 비슷한 껍질의 인간인 낮 상담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우프트의 칼이 결국 그를 베었을지, 혹은 그것까지도 그의 망상일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칼을 빼 든 결말 자체가 잔인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보통이라고 말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그의 생각이 낯설고 이질적이다. 그 사고가 칼이라는 도구를 만나 순식간에 흉기를 만든 결말이 섬뜩함을 자아낸다.

 

 


「마지막 캡슐」


 

처음은 그저 흔한 SF 소설의 시작처럼 보였다. 그 어떤 두려움 없이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듯 ‘시그네’와의 대화가 이어진다. 여러 충격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분명 흥미로운 SF 소설에 불과했다.


첫 번째 충격은 ‘시그네’가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름을 묻는 빌라드의 말로 시작하는 이야기에서 빌라드보다는 그가 던진 질문과 그 응답자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 내용과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되리라 예측했던 것마저도 무색해졌다. 이 이야기의 전개는 시그네가 아닌 빌라드가 중점이 된다.


두 번째 충격은 곧장 밝혀지는 쌍둥이 형제의 정체였다. 그들도 그저 ‘의식’일 뿐이었다. 책장을 세 장이나 넘길 동안 등장한 생명체는 오직 빌라드뿐이었다.


이후 빌라드의 지난 일주일간의 행적을 나열한다. 쌍둥이 형제를 어떻게 불러왔는지, 시그네를 어떻게 발견하게 됐는지 그 과정이 묘사된다. 그리고 시그네의 관점으로 데이터 형태의 그녀가 보라그호 컴퓨터 안을 유영하듯 살피는 내용이 등장한다.


인간은 유한한 신체를 가진다. 무한할 수 없는 존재임에도 ‘영원’을 꿈꾸기도 한다. 데이터로 존재한다면 조금 더 오래 존재할 수 있고, 인체보다는 손쉽게 영원에 다가갈 수 있다. 일종의 존재로서의 ‘데이터’로 이루어진 데이터 세상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시그네의 목표는 완전한 데이터 세상의 지구를 만드는 것이었을까?


생체 신호인 척 유인하고 유일한 생명체인 빌라드를 고립시킨다. 그 고립은 결국 죽음을 불러올 것이고 그것은 인체의 멸망을 뜻한다. 유한한 신체를 가진 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그 끝을 마주하는 감정은 두려움 하나로 설명할 수 없다.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본 것만으로도 공포를 느낄 수 있다.


막연한 죽음의 공포를 전할 뿐 아니라 존재론적 논의에 도달하는 이야기에 책장을 다시금 앞으로 넘겨볼 수밖에 없었다.


 

 

「트리거 경고」


 

다섯 페이지를 채우는 경고문. ‘주의’라는 말로 시작하는 문장들. 나뉘지 않은 문단. 어느새 그것이 경고문인 것을 망각하고, ‘주의’를 지운 채 읽어 내려가게 된다.


말도 안 되는 조합이 또 그럴싸하게 보이는 듯한 경고문 앞에서 그 빠른 호흡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이야기는 마치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서술한 내용처럼 일관적이지 않고 때로는 논리성도 잃는다. 그리고 그 서술 자체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이 있다. 보통의 이야기에서 기대하고 추측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무언가를 마주했을 때의 낯섦이 뒤따른다.


특히나 마지막 문장은 찝찝하기까지 하다. 허구의 이야기인 것을 왜 주의하여야 할까? 어떠한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찝찝함이 손끝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


이처럼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는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호러의 이야기가 아니다. 귀신이 등장하고 범죄에 노출되는 것이 아닌, 한 차원 높은 호러를 담는다. 무서움, 두려움, 섬뜩함, 찝찝함.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 이야기가 모여 호러 픽션이 담아낼 수 있는 최대치의 ‘공포’를 선사한다. 두세 번 곱씹어야 하는 이야기가 진가를 발휘하며 현대의 호러를 재조명한다. 최고의 호러 픽션이라는 수식어에는 ‘이야기’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호러가 아닌 우리의 삶을 조명하는 이야기다.

 

 

[박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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