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진 문외한의 사진전 방문기 [미술/전시]

<이경준 사진전: 원 스텝 어웨이>를 방문하고
글 입력 2024.03.0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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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문외한의 고민


 

나는 사진이라는 예술 분야를 잘 모른다. 일상에서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 들어 찰칵 담아내는 사진 찍기에도 익숙하지 않은 데다, 전문 포토그래퍼가 공을 들여 찍은 사진이라면 더더욱 문외한이다. 사진에 비해 긴 호흡으로 전개되는 책이나 영화, 뮤지컬이 친근하기 때문에, 사진 앞을 지나는 짧은 순간에 만나는 단편적인 이미지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곤 했다.

 

동시에 전시회를 개최할 정도의 가치를 지니는 사진의 조건이란 무엇이냐는 의문을 품곤 다. 특히 스튜디오에서 배경과 피사체, 조명까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찍은 사진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풍경을 그대로 담아낸 사진에 대해서는 크게 의구심이 들었다.

 

이미 사진의 배경과 피사체, 조명까지 모두 마련되어있고, 그 포토그래퍼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만 할 뿐이라면 포토그래퍼의 사진은 공간에 끌려갈 뿐이 아닌가? 그렇다면 결국 사진이란 발품의 가치를 극도로 칭송하는 예술인 것인가? 일반인이 아름다운 장소에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과, 전시회가 열릴 정도의 명성과 가치를 지니는 사진은 어떻게 다른가? 포토그래퍼가 사진 찍기를 통해 만들어내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포토그래퍼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스스로가 압도되어 사진전에 방문하기를 꺼리기도 했다.

 

더불어 시각적 매체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을 선호하는 현대인의 습성을 공략하여, 화려한 이미지와 영상 등 시각적 자극을 주제로 삼아 그 이상의 의미 전달에는 소홀한 전시회에 속은 경험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사진전 또한 ‘감성[갬성]’ 있는 사진을 보여주는 데에만 의미를 두진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서 내가 친구와 함께 사진전을 방문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꽤나 큰 도전이었다. 사진을 이해하는 식견이 없을뿐더러 제대로 된 사진전을 방문하는 것이 거의 처음인 만큼, 이 경험이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실망하게 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진전을 방문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친구가 사진전의 포스터를 보여주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푸른 잔디밭 위로 사람들이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띄엄띄엄 앉아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저 사람들은 저기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올랐고, 이내 ‘이 작가의 사진에는 사람들이 담겨있고,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소개글을 살펴보니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포토그래퍼 이경준의 사진을 주제로 마련된 사진전으로, 그의 시선으로 담아낸 뉴욕 도심의 모습을 조명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점에 한층 더 흥미를 느껴 티켓을 예매하였고, 그렇게 내 인생 처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진전 관람이 시작되었다.

 

  

  

뉴욕의 황금빛 순간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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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챕터 ‘PAUSED MOMENTS’에는 일출과 일몰 특유의 ‘황금빛 순간’을 담은 건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입구를 꺾어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사진 속 대칭 모양의 건물은 신비로운 시간대의 힘을 받아 황금빛을 머금고 반짝거렸다. 사진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화려한 색감에 압도되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사진을 살펴보았다. 황금빛을 머금고 반짝거리는 뉴욕의 건물 사진이 즐비했다. 반듯하게 줄을 서듯 배치된 무수한 창문이 빛을 받아 번쩍거려 눈이 부시면서도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인상을 주는 건물에 시선이 쏠렸다.

 

건물의 전체적인 모양새부터 줄지어 걸린 창문의 모양까지, 우리의 것과 완전히 상이한 요소들이 결합하여 풍기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건물의 아랫부분부터 위로 올리기까지 섬세하게 공을 들여 설계한 느낌으로, 우아하고 고전적인 품격을 지닌 데다 시간의 흔적이 새겨져 한층 깊은 느낌을 주었다.

 

진중한 건물의 풍경이 단단하게 도시의 기반을 잡고 있기 때문일까? 세계의 유행을 주도하고 혁신의 첨단을 달리는 뉴욕이 지닌 번잡함과 혼란함, 그리고 신선함과 조화로이 어울리면서 처음 만나는 도시임에도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건물 사진에 감동하며 관람을 이어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잔잔한 피아노의 선율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며 아름다운 사진이 이어지자, 마치 ‘감성 플레이리스트 속을 걷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유튜브 등에 흔하게 보이는 감성 플레이리스트를 경험할 수 있는 형태로 재구성한 느낌이었다. 다른 점이라곤 단지 사람이 직접 걸음을 옮김으로써 플레이리스트가 앞으로 나아갈 뿐인, 음악의 전개를 위해서 인간의 걷기 경험이 반영될 뿐인 플레이리스트. ‘사진전은 요즘 사람들이 추구하는 특유의 감성을 정직하게 충족해주는 문화예술이구나’라는 감상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도심 속 사람들의 삶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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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멈추지 않고 관람을 이어나가 다음으로는 두 번째 챕터, ‘MIND REWIND’에 도달했다. 이곳은 건물의 창문이나 발코니의 반복적인 배치가 만들어내는 기하학적 패턴에 주목하는 구역과, 건물 속 휴식 공간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내가 특히 재밌게 보았던 사진은 포토그래퍼가 도시 전망대에 올라 다른 건물들의 루프탑을 촬영한 사진이었다. 초록색 페인트로 칠해져 온갖 잡동사니와 태양광 발전기 등이 놓이는 우리나라의 옥상과는 달리, 사람들이 드나들며 쉴 수 있도록 가림막과 의자, 탁자 등이 놓인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사진 속 루프탑에 오른 사람들은 저마다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앞의 챕터와는 달리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어 신이 난 나는 조금 더 가까이서 사진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뉴욕 사람들은 늘 바쁘게 살 것만 같았는데, 우리와 같이 일상에서 휴식을 찾는 것도 중요시하는구나!'

‘루프탑이라기엔 화분이나 소파가 멋지게 전시되어 있어서 마치 근사한 레스토랑 같기도 하네.’

‘뉴욕은 공원이나 루프탑에서 노출이 심한 옷을 입어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구나!’

 

마치 해외살이하는 사람들의 ‘집 투어 영상’을 한 장의 사진으로 압축하여 구경하는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직접 나서 이야기를 해주지도 않고, 카메라를 이리저리 움직여 구석구석 보여주지는 않을지언정 그들의 생활상이 한눈에 보이는 흥미로운 사진들이었다.

 

 

 

편견으로부터 ‘원 스텝 어웨이’



세 번째와 네 번째 챕터까지 감상하고 나오면서 아름다운 것을 망막에 가득 담아 만족스러웠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이 있었다. 바로 전시를 보고 난 뒤 무엇을 느끼고 배워야 하냐는 문제였다.

 

책이나 영화 등을 보고 나면 그들의 서사가 내 몸을 관통해 흘러가며 내 안에 남는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사진으로는 전달받는 서사가 한정되니 그만큼 내 안에 남아있는 것도 적었기 때문에, 전시회를 관람하고 나오고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어색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전시를 관람하는 중간에 적어둔 메모를 돌이켜 살펴보았다.

 

‘첨탑처럼 생긴 구조물을 설치하거나 조각을 새기는 등, 섬세한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 이렇게 건축가가 자신의 창의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서 섬세하게 건물을 설계해야만 했던, 혹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배경이 궁금하다.’

‘어쩜 창문이 이렇게 선명한 붉은 빛으로 반짝거리지? 반대편에 어떤 풍경이 있었을까?’

‘내가 실제로 저 장소에 방문한 것도 아닌데 왠지 상쾌해지는 기분이 든다.’

 

위와 같이 내가 남긴 메모를 찬찬히 되새겨보던 중, 무언가 내 머릿속을 꿰뚫고 떠올랐다. <원 스텝 어웨이>가 단순히 감성만을 쫓는다고 단언했던 나의 생각을 뒤바꾸어 주었다.

 

하나는, 모두가 카메라를 소유한 세상에서 사진전이 지닌 가치에 관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타인이 찍은 사진을 접하는 창구는 SNS가 대부분인데, 그곳에 게시되는 사진은 촬영자 또는 피사체인 인물의 경험이 가득 담겨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사진 속 세상을 살피기보다는 ‘부럽다’, ‘대단하다’는 주관적인 감정에 휩싸이고 만다. 결국 그런 사진은 개인의 경험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기 때문에 깨달음의 순간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 속 사진에서는 포토그래퍼의 경험과 설명이 극도로 배제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개인의 경험으로 얼룩지지 않은, 온전하게 객관적인 뉴욕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사진 속 풍경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진 속 인물들의 모습에 주목하다가 그들의 생활상을 상상하며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뉴욕의 풍경을 바로 마주한 것처럼 나의 내면까지 환기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여기서 나는 사진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우리가 게시하는 SNS 속 사진이 지닌 ‘개인의 경험’과 ‘주관성’을 배제하고, 대신 온전한 뉴욕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삶에 대한 이해를 쌓을 수 있게끔 하는 것. 동시에 우리가 매일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지겨운 일상에서 벗어나 신선한 활력의 순간이 가능하도록 그 세계의 일부를 우리의 공간으로 끌고 들어와주는 것. 그것을 통해 나와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는 것. 바로 그것이 SNS 속의 사진과 달리, 포토그래퍼의 사진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의 계기를 포토그래퍼가 만들어준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만약 내가 사진전에 대한 편견을 이기지 못하고 오늘의 경험도 피하고자 했다면 이러한 깨달음도, 사진이라는 분야를 이해할 계기도 없었을 것이다. 문화예술의 분야는 무척이나 다양하고 성격과 모양새도 상이하지만, 결국 나와 세상의 연결을 통한 내면세계 확장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지니고 있음을 다시 배우며 이번 글을 마무리한다.

 

 

[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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