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잃어버린 마음을 구하는 일 [드라마/예능]

드라마 대장금을 보고
글 입력 2024.03.0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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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어느 저녁.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앉아 TV 리모컨을 이리저리 눌러보며 볼 거리를 찾고 있었다. 한 채널에서 드라마 <대장금>을 방영하고 있었다. <대장금>은 20년도 더 전에 크게 유행했던 드라마로, 지금도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어렵지 않게 등장할 만큼 그 인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왜 대장금은 그리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을까?

 

보다 보면 알게 될 것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대장금>을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장금, 처음으로 패배를 맛보다


 

드라마의 주인공 장금은 수라간 나인이다. 요리에 있어 재능을 타고났을 뿐더러 피나는 노력까지 하는 여성이다. 그렇기에 주변인의 촉망과 사랑, 질투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장금의 좌우명은 ‘먹는 사람에게 미소가 지어지는 음식을 만드는 것.’ 장금은 그 마음 하나로 늘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하고, 장금의 주변 사람들은 그 타고난 성품과 능력에 감화되고는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장금은 처음으로 자신의 라이벌인 금영에게 지게 된다.

 

이야기의 발단은 이렇다. 장금과 금영의 스승인 한상궁과 최상궁은 수라간 최고상궁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기로 한다. 경합은 여러 차례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우승하는 상궁이 수라간의 최고상궁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장금과 금영은 각각 두 상궁을 보조할 나인으로 발탁된다.

 

첫 번째 경합의 과제는 소박한 재료를 사용해 백성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새로 만드는 것. 장금과 금영이 만들기로 한 음식은 바로 가난한 백성들이 남은 뼈와 고기를 우려내어 먹는 설렁탕이다. 두 사람은 각자 재료를 구하기 위해 궁을 나간다. 장금은 늘 좋은 재료를 쓰는 금영을 이기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도 좋은 뼈와 고기를 구해야 한다. 결국 그녀는 재료를 구하다 수라간에 늦게 돌아온다. 

 

하지만 곰탕은 우리는 시간이 중요한 음식이고 평가 날은 코앞이다. 장금은 역시나 재기를 발휘한다. 한지를 이용해 곰탕의 기름을 흡수해 가며, 빠르게 곰탕을 끓여 내놓는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음식은 심사위원인 대비마마의 앞에 나란히 놓인다. 장금과 금영은 떨리는 마음으로 평가를 받는다. 결과는 최상궁과 금영의 승리였다. 장금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옆에서 그녀를 지켜봐 온 한상궁은 장금이 이기지 못한 이유를 알고 그녀를 호되게 꾸짖는다.

 

“백성들이 좋은 뼈와 고기로 탕을 끓여 먹느냐? 정성과 마음은 다 버리고 좋은 재료와 비법만 찾아 헤매고 다니는 아이였더냐?”

 

 

 

장금이 잃어버린 마음


 

한상궁은 장금에게 수라간을 떠나 절로 가서 편찮으신 중전마마의 보모상궁을 보살피라 명한다. 하지만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장금은 그 곳에서도 또 한 번의 시험을 겪게 된다.

 

그녀에게 주어진 과제는 어떤 종류의 쌀을 찾는 것이었다. 보모상궁은 자신의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깨닫고, 어릴 적 먹었던 쌀을 다시 먹어보고 싶어한다. 그 쌀은 어릴 적 죽은 그녀의 오라버니가 자신에게 주었던 것으로, 처음엔 딱딱하지만 씹을수록 고소하고 쫀득하다 했다. 

 

아무도 그 쌀이 대체 무슨 쌀인지 몰라 한탄하고 있을 때, 장금은 볕에서 쌀을 말리고 있는 처사를 발견한다. 장금은 보모상궁이 찾는 쌀이 바로 이것, 올게쌀(찐쌀)임을 알아낸다. 급히 쌀을 가져가려는 장금. 하지만 처사는 장금에게 쌀이 아직 마르지 않아 줄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보모상궁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장금은 보모상궁이 세상을 떠나기 전 어서 쌀을 맛보게 해드려야겠다고 다짐하고, 덜 마른 쌀을 가져간다.

 

올게쌀은 나흘 이상 햇볕에 천천히 말려야 하는 쌀이다. 마음이 급한 장금은 똑똑한 머리로 아궁이 불을 지펴 쌀을 빠르게 말린다. 하지만 급히 만든 쌀이 보모상궁의 마음을 사로잡을 리 없다. 며칠 후, 처사가 쌀이 완성됐다며 보모상궁에게 쌀이 든 바가지를 건넨다. 딱딱하니 꼭꼭 씹어 드십시오, 그녀를 위한 말도 함께 건넨다. 보모상궁은 쌀을 조심스레 맛보더니 이내 눈물을 흘린다. 이 쌀을 자신의 관에 꼭 넣어 달라는 말과 함께. 

 

 

 

장금의 깨달음


 

보모상궁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장금의 쌀이 아니라 처사가 천천히 햇볕에 말려 내온 쌀이었다. 그제야 장금은 깨닫는다. 상대를 이길 생각, 황급히 상황을 해치울 생각만 하다 보니 먹는 사람이 미소 짓게 하는 음식을 만들던 지난 날을 잊은 것이다. 두 번의 경험 끝에 그제야 장금은 정성과 시간이 음식의 비법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수라간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한상궁은 돌아온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변하는 것이란 대개의 경우가 자신도 모르게 변하는 것이다. 급박한 상황에 놓이다 보면 그것이 맞게 가는 것인지 아닌지는 따지지 않고 먼저 문제를 해결하고 보자고 덤비는 것이야. 그러다 보면 길이 들여지는 것이고. 또 그렇게 살다 보면 가려고 했던 길은 보이지 않고 눈앞에 놓인 과제만 보이는 것이다.”

 

 

 

잃어버린 마음을 구하다


 

‘구방심(求放心)’이라는 말이 있다. 구원할 구, 놓을 방, 마음 심. 잃어버린 마음을 구한다는 뜻이다.  맹자는 ‘사람은 닭이나 개가 도망가면 찾을 줄 알지만 마음을 잃고서는 그것을 찾을 줄 모르니 슬프구나!’하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학문은 오로지 잃어버린 마음을 구하는 과정, 구방심의 과정이라 하였다.

 

구방심은 수험생 시절 내 좌우명이기도 했던 단어다. 요령을 피우지 말고 매사에 차근차근 임할 것. 가장 순수하게 공부에 매진했을 때엔 잊히지 않던 마음가짐이 세상을 살다 보니 어느 새 내 몸을 떠나가고 말았다.

 

최근의 나를 돌아보았다. 살아갈수록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났다. 끝내고, 처리하고, 해치워야 할 일이 많아졌다. 그래야 다음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 어느 새 대학 고학년이 되어 있었고, 졸업과 취업을 준비하려면 더욱 나를 채찍질해야 했다. 마음을 급하게 먹고 살다 보니 결국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쓰고 있었는지 모른다.

 

구방심! 어느새 나는 마음을 잃지 말자는 다짐마저 잃어버린 채 살아왔던 것이다. 많은 에피소드 중에 하필 이 에피소드가 내 가슴에 박힌 이유는 마음을 잃어버린 내 모습이 장금의 모습 위로 겹쳐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마음을 다잡고 가꾸는 능력이 있지만 동시에 연약하게 휩쓸리는 존재다. 그렇게 휩쓸리다 보면 무얼 잃어버렸는지도 잊게 된다. 무얼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살다 보면, 또 그렇게 길이 들여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장금의 삶은 오늘날 우리의 삶과도 다르지 않다. 누구나 그녀의 삶에서 자기 인생을 발견했기에 <대장금>은 그렇게 인기를 끌었나 보다. 사는 동안 결심하고, 실수하고, 깨닫고, 나아가는 게 인생이라면 사람들은 <대장금>, 그 안의 삶에 공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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