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 – 연극 ‘비Bea’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공감의 가능성에 관한 고찰
글 입력 2024.03.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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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다. 우리는 타인을 가해하지 않는 선에서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고,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수 있고,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일 수 있다. 더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행위할 수 있고 만약 부당한 억압이 있다면 그를 막아낼 자격을 가진다. 이 모든 건 당연한 권리다.

 

연극 <비Bea>는 자유를 잃어버린 한 소녀 비어트리스, 비에 대한 이야기다. 정확한 병명은 모르지만 만성 체력 저하증으로 8년째 침대에서 생활해야 하는 비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 평범한 일상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빼앗긴 그녀가 인간으로서 행복해질 마땅한 권리를 찾아 나가는 여정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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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연극 ‘비Bea’의

내용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비가 잃어버린 자유는 무대 위 그녀가 지내는 방의 모습에서부터 묘사된다. 크지 않은 방을 둘러싸고 있는 어두운 회색 벽에는 조그만 균열이 나 있다. 방 한가운데 기껏해야 두 사람이 나란히 누울 수 있는 작은 침대가 그녀에게 허락된 행동반경이다. 비가 볼 수 있는 빛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것이 전부이고, 하나뿐인 방문으로 드나드는 사람은 그녀의 엄마인 캐서린과 간병인 레이뿐이다.

 

마치 감옥처럼 보이기도 하는 방 한편에는 수많은 귀걸이들이 늘어져 있다. 귀걸이 만들기는 맛, 냄새, 촉감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비가 잠시 상태가 괜찮아질 때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다. 벽에서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리는 귀걸이들은 답답한 공간의 분위기와 대조되며 그녀가 느끼고 있을 절망감을 배가시킨다.

 

표현과 감정이 풍부하고 춤추는 것을 사랑하는 비는 항상 자유를 갈망하지만 8년이 지나도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병의 뚜렷한 원인도 알 수 없는 상태다. 그렇게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닌 비는 결론을 내린다. 행복해지기 위해 죽음으로 자유를 찾겠다는 것. 레이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이 죽도록 도와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인 캐서린에게 그 부탁을 전하기로 한다.

 

극은 위와 같은 굵은 골자를 바탕으로 죽음을 결심한 비와, 그 곁을 지키게 되는 레이 그리고 딸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캐서린 사이의 감정과 관계를 그린다. 비의 죽음과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타인 간 공감의 가능성에 관한 고찰을 녹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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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마음 맹인이야.” 극 전체를 관통하는 레이의 대사는 타인에게 온전히 공감하는 일의 한계에 대한 메시지를 나타낸다. 우리는 남들이 나와 전혀 다른 것을 보고 듣고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종종 놓칠 때가 있다. 모두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설사 완벽하게 같은 상황에 놓인다고 해도 느끼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아닌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할 수도 있다.

 

레이는 공감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직접 상대의 처지에 처해보지 않으면 분명히 알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공감의 불완전성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그녀의 상황과 감정에 관해 함부로 넘겨짚거나 충고하지 않는 것.

 

그래서 그가 행한 공감의 방식은 철저한 존중을 전제로 한 채 비의 내면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말, 반드시 나을 수 있을 거라는 말보다는 그저 일상적인 대화를 하려 노력한다. 비가 궁금해할 세상에 대해 쉴 틈 없이 떠들며 웃음을 주고, 도움을 요청할 때면 귀를 기울인다. 비를 향한 진심 어린 응원을 담아 사소하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해볼 수 있도록 그녀를 위한다.

 

캐서린 역시 딸의 감정에 온전히 공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면서 비를 위한 선택을 내리는 인물이다. 물론 그녀는 엄마이기 때문에 비의 부탁을 듣고 난 직후에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충격을 받게 된다. 남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씻고, 먹고, 움직이고, 때때로 웃을 수도 있으니 같이 견디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며 울부짖는 비의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는 마음을 바꾼다. 마음껏 세상을 누비고 느낄 수 없는 것, 그러니까 자유를 영원히 잃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결심할 만큼 비에게 끔찍했다는 현실을 직면한다. 그렇게 캐서린은 딸을 고통스러운 삶에서 해방시켜 주기로 한다.

 

캐서린이 어린 시절 비와의 일화를 회상하는 장면이 있다. 그녀는 집 마당에 있던 사과나무에 올라타 내려오지 않는 비를 혼냈던 과거를 떠올린다. 말을 듣지 않아서 계속 혼을 냈는데 이상하게도 화를 내면 낼수록 비는 더 크게 웃었더랬다. 그 작은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뭐가 그렇게 즐거웠던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캐서린은 말갛게 웃는 그 얼굴을 보고는 결국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캐서린은 여전히 비의 마음을 읽기 어렵다. 딸이지만 타인이니까. 비가 얼마나 즐거운지, 괴로운지, 또 고통스러운지 오롯이는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캐서린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비를 마주하고 그녀의 선택을 따르는 것이었던 듯하다. 딸이 행복할 수 있도록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엄마의 결심은 사랑하는 딸을 위한 공감이자 마지막 보살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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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마지막은 비가 마침내 육체에서 해방되어 완전한 자유를 찾은 모습을 그린다. 자신이 내내 누워있던 침대를 벗어나 땅바닥에 발을 디딘다. 그 순간 비를 가두고 있던 사방의 벽은 사라지고 푸른 정원과 단단히 뿌리내린 사과나무가 그녀를 반긴다. 비는 마치 신난 어린아이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그토록 추고 싶었던 춤을 춘다.

 

캐서린이 포근히 불러주던 붕붕이라는 애칭처럼, 레이가 다정히 말해준 산들바람의 의미처럼. 자유를 찾은 비가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존재하길 원하는 모든 곳에서 하늘하늘 날아다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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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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