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스트릿 우먼 파이터2: 미성숙의 미학

그런 게 어른이라면, 나는 영원히 아이로 남겠습니다.
글 입력 2024.02.2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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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2'

 

 

그런 게 어른이라면,

나는 영원히 아이로 남겠습니다.

 

 

지난 연말에 종영한 〈스트릿 우먼 파이터2〉의 인기가 여전히 뜨겁다. 대한민국을 거의 반쯤 뒤집어 놨던 시즌 1의 화제성을 따라잡았는지는 솔직히 의문이지만, 출연진들이 종영 이후 여기저기 얼굴을 비추고 있는 것을 보면 프로그램의 파급력이 상당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 중에서도 최대 화젯거리는 뭐니뭐니해도 단연 리아킴미나명의 서사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2〉는 미나명의 초반 어그로가 살렸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 말 다 했다. 그만큼 두 댄서 사이의 신경전사실 미나명의 일방적인 부르짖음에 가깝긴 하다은 살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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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2'

 

 

〈스트릿 우먼 파이터2〉 첫 방송을 보자마자 나는 미나명이 조만간 자신의 모든 발언들을 절절히 후회하게 되겠구나 짐작했다. 안 그래도 시청자들이 많이 몰렸을 1화에서 저렇게 자극적인 말들을 내뱉다니.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저렇게 날것의 반응이라니. 곧 수많은 안티 군단이 달려들겠구나. 그리고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너무 적나라해서 보기 싫다”

“리더가 왜 저러나”

“어른스럽지 못하다”

  

그 중에서도 유독 내 눈에 띄었던 평가는 그녀가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어른스럽지 못하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차분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유를 꼽자면 첫째로는 생각이 깊어지기 때문일 것이며, 둘째로는 잃을 게 많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지켜야 할 식구와 지켜야 할 체면, 그리고 그것들을 아우르는 ‘내가 살아온 삶’ 전반을 떠올리기 시작하면 ― 하고 싶은 것을 당장 냅다 실행에 옮길 용기는 홀연히 사라진다.

 

그 대신 한 발자국 물러서서 생각을 시작하게 된다. 이게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일까?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나와 내가 속한 집단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렇게 한참을 재고 재본 뒤 어렵사리 내리는 결론은 8할의 확률로 아마도 ∙∙∙ “나중에”, 혹은 “다음에”.

 

‘어른스럽다’의 정의는 이런 것이다. 자신의 욕심때문에 구태여 내적∙외적 갈등을 만들지 않으며, 그로써 자신의 체면과 자신의 주변인들까지 전부 지켜내는 것. 쌓아온 세월의 빅데이터를 차분히 뒤적이면서 내가 가질 수 없는 것─혹은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을 미리 포기할 줄 아는 것. 내 감정에 솔직해져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원하는 것이 아닌 필요한 것을 추구하는 것.

 

그와 반대로 가질 수 없는 것, 해서는 안 될 것에 대한 갈망을 참지 못하고 그것을 끝내 표출해버리는 태도는 미숙하고 어리다.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책임감 있는 어른이라면 마땅히 지양해야 할 행동 양식이다.

 

하지만 〈스트릿 우먼 파이터2〉에서 미나명은 이 ‘모범적 어른상’과 정반대의 캐릭터였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냈다. 과거 자신을 서운하게 했던 리아킴에게 오만 가지 막말을 내뱉고선 그녀의 커리어를 깎아내리는 평가까지 서슴지 않았다. 흥분에 잠식된 듯한 1대1 배틀 퍼포먼스는 덤이었다.

 

 

 

미성숙의 미학



말마따나 입만 열면 표현이 아주 적나라했기에 객관적으로 썩 보기 좋은 캐릭터가 아니었음에도, 나는 1화부터 이상하게도 미나명에게 호감이 갔다. 물론 그녀의 생김새나 패션 스타일이 내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사실 줄줄 새어나오는 앙칼진 대사들의 향연이 더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나는 그녀에게서 미성숙의 미학을 보았다.

 

애저녁에 끝난 관계를 붙잡고 여전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성을 내고 있는 것. 자신의 이미지에 득이 될 일이 하등 없음에도 매 순간 자신의 감정을 카메라 앞에서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 그리고 그 결과로 뭇매를 맞는 것까지. 그간 미나명이 보인 모든 행보는 원하는 것을 참고 필요한 것을 하는 '성숙', 즉 어른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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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2'

 

 

하지만 그녀를 비난하기 이전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미숙한 사람이 자그마치 약 10년간 리아킴의 곁을 지켜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배곯으며 스트릿 댄스 씬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가 세워지고 유튜브 구독자 수가 백만을 넘기던 그 순간까지.


실제로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에서 활동하던 당시 계약서 조항을 읽지도 않고 두 차례나 재계약을 했다는 미나명의 진술동료 댄서 효진초이의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을 고려할 때, 그녀는 리아킴을 정말 믿고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미나명은 리아킴과의 관계에 아무 것도 재지 않는 ‘순수한 애정’을 쏟아 부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지점은, 그녀가 관계가 틀어진 이후에도 여전히 아무 것도 재지 않고 감정에 솔직하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사회 생활이 으레 그렇듯 껄끄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 그냥 거리를 두며 멀어질 수도 있는 것인데, 미나명은 리아킴의 각종 SNS를 언팔로우하고 〈스트릿 우먼 파이터2〉에 출연해서는 폭언을 일삼는 등 '순수한 증오'를 가감없이 내비쳤다.

 

좋은 상황일 때도, 나쁜 상황일 때도 그녀는 언제나 진심을 다해 가공되지 않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이것은 '해야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을 우선시하는, 그러니까 미숙한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꼭 '어른'이 되어야만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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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2'

 

 

물론 막말과 무례한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당연하다. 하고 싶은 말이라면 일단 전부 다 내뱉고 보는 것은 상대에게 상당히 무례한 행위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나명을 마냥 미워할 수가 없다. 적어도 그녀는 끝까지 솔직하기 때문이다. 욕을 먹을까봐 화를 꾹꾹 참고, 그동안 쌓아 올린 것들이 무너질까 변화를 주저하는 '어른'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나명은 자신과 리아킴 사이의 갈등을 시시각각 지켜봐온 모두의 앞에서, 사실은 당신을 계속 의식하고 있었노라고, 지난 10년 정말 감사했노라고 고개 숙일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그동안 방송에서 자신이 보여온 행보를 전부 뒤집는, 어찌보면 자존심 상하는 선언이었을텐데도 그녀는 속마음을 고백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바로 그렇기에 그녀의 미성숙은 아름답다.

 

나는 끝까지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아이처럼 구는 미나명의 모습을 보면서, 쌓아온 것들을 지키기 위하여 속내를 숨기는 데 도가 튼 세상의 어른들에게 그녀가 행동으로써 어떠한 일침을 가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이 든다. 

 

미운 걸 밉다고 하지 못하고,

고마운 걸 고맙다고 하지 못하는 것이 어른입니까?

그런 게 어른이라면, 나는 영원히 아이로 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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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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