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과정에 살고 있는가 [영화]

글 입력 2024.02.1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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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글을 써 내리기 급급한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마감에 쫓기는 이들이라면 가끔 생각나는 대로 적은 글을 써내기도 할 테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과정이란 곳에 놓여 이 활자들이 가진 의미에 대해 사유해 본 적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유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글을 써야 하는가? 오래전 보았던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의 영화 <일 포스티노(1996)>를 보며 그 의미와 감동을 전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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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포스티노>는 어부의 아들이자 평범한 우체부이던 마리오와 유명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관계성을 담은 실화 기반의 영화이다. 파블로는 매일 우편을 가져다주는 마리오를 기피하지만, 이후 시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마리오를 보며 마음을 열고, 마리오의 멘토이자 친구가 된다.


파블로가 문학적으로 이끌면, 마리오는 그에 상응하여 발전한다. 서로가 낯선 존재였던 두 사람은 어느새 대문을 오가는 우정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 속 마리오의 모습은 지나치게 의존적이다. 마리오가 스스로를 위해서 움직였다고 볼 수 있을까? 마리오는 대부분 파블로를 기준으로 생각하며 파블로가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에 행동으로 옮기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물의 결여는 곧 결말에서 해소된다. 마리오는 자신의 시선으로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들여다보고 자신의 의지로 시를 쓰며 시위의 현장에서 시인으로서 죽음을 맞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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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났던 파블로가 칼라 디소토에 돌아왔을 땐 그의 친우 마리오는 이미 생을 마감한 상태였다. 파블로는 마리오와 함께했던 바다로 간 뒤 천천히 걷는다. 영화는 이러한 파블로의 모습과 당시 시위 상황을 번갈아 가며 보여준다. 이때의 파블로의 표정은 단언할 수 없는, 느껴야 알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하다. 이 감정은 영화의 과정을 거쳐온 이만 알 수 있을 테다. 그리고 이내 시위의 소음은 파도 소리로 변한 뒤 영화는 끝이 난다.


생전의 마리오는 자신은 시를 쓴 적이 없었고, 시인이 아니며, 훌륭한 사회주의자도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때 나는 하나의 질문을 던져 보고 싶다. 과연 마리오는 진정한 시인이 아니었을까.


마리오의 시는 시위에서 맞은 그의 죽음으로 인해 결국 영화에 드러나지 않게 된다. 이때 시위에서 연설이 아닌 시를 낭송하는 것과 결국 시를 낭송하지 못한 마리오라는 인물에 담긴 의미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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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절절 긴 글뿐만 아니라 감정과 사유의 응축물인 짧은 시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결국 마리오의 시는 낭송되지 못한 채 바닥에 떨어지게 되었으나, 비록 우리에게 시라는 결과물을 보여주지 않았으나, 우리는 마리오가 진정한 시인이란 생각을 품는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은 결과물이 아닌 과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앞서 말한 바다에서의 결말이 마리오와 파블로의 상호작용과 문학적인 교류, 바다에서 함께 한 사유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처럼, 여러 경험의 과정을 겪은 마리오는 진정한 시인이 된다.


함축과 집약이란 그 주제에 대해 많은 말을 쏟아놓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놓은 채 또다시 정리하는 사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는 쏟아놓는 것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경험이 우선되어야 한다. 직접 여행을 다녀온 이와 여행 브이로그를 본 이의 글 경험치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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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하려고 제자리에 가만히 있다는 말인가?

시인이 되고 싶으면 걸으면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일 포스티노>의 원작 소설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중 한 문장이다. 이처럼 시는 ‘사유’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유’가 ‘부동의 사유’여선 안 된다. 경험을 원칙으로 하는 사유, 파블로가 말하는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를 감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글을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 마리오가 파블로를 위해 섬의 소리를 녹음하는 과정에서 천천히 섬의 아름다움을 둘러본 뒤, 파블로에게 바치는 시를 작성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시란 설명하면 진부해지고 말아.” 

 

설명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던, 시 같은 우정과 삶을 살아간 마리오와 파블로. 이미 유명한 영화이나, 혹시 아직 <일 포스티노>를 본 적 없다면 오늘 한 번 그 과정을 천천히 느끼고 사유해봤으면 한다. 더 설명하면 진부해지고 말 테니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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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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