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들은 말이 진짜 칭찬일까요? [사람]

칭찬도 독이 된다, 칭찬의 양면성
글 입력 2024.02.1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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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취미로는 운동과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내가 가르치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며 느낀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모든 일에 있어서 ‘칭찬’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있을 만큼, 이전부터 칭찬의 중요성은 누누이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 그 좋은 칭찬도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닫고 있다. 칭찬에도 좋은 칭찬과 나쁜 칭찬, 즉 양면성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칭찬의 내게 주는 도파민은 엄청났다. 끈기가 부족했던 나에게 성취욕을 알려준 것 또한 칭찬이었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준비하고 기꺼이 해내어 받는 칭찬 한마디의 힘은 엄청났다. 묘한 중독성과 함께 과정 속 고통의 보상이 되었고, 응원이 되었다.

 

선생님, 부모님 등 어른들의 칭찬 한마디에 신이 났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일상 속 선생님이 내주신 미션 한 가지를 이뤄낼 때마다 선생님은 꾸준히 ‘바쁘실 텐데도 열심히 해오시네요’, ‘전보다 이 부분이 정말 늘었어요!’ 등의 칭찬을 잊지 않으셨고, 이는 칭찬받을 기회가 확연히 줄어든 요즘 새로운 재미가 되었다. 게다가 칭찬을 기반으로 더욱 열심히 움직이며 나날이 성장해 가는 나를 보는 것은 내 자존감을 지켜주기도 했다.

 

칭찬 한마디에 움직이는 나를 보며, 칭찬의 효과를 다시 한번 실감했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통해 독이 되는 칭찬이 무엇인지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배움에 있어 의욕이 없거나 실패, 틀림을 유독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 아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칭찬의 독’에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우선 의욕이 없거나 수동적인 아이들을 보면 대체로 ‘넌 똑똑해’, ‘너 머리는 정말 좋은데..’라는 말에 갇힌 경우가 대다수다. 이들은 “전 똑똑해서 괜찮아요”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아마 노력을 얼마만큼 들였는지는 미뤄두고, 성취하지 못해 좌절할 아이의 기분만 걱정하다 보니 나오는 말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해하기에, 소중한 이의 기분을 달래기 위해서임은 이해한다. 이런 말들이 당장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다. 그러나 껍데기뿐인 칭찬에 붙어버린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앞으로의 성장에 독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잘못된 칭찬은 ‘100점이구나!’, ‘항상 완벽하구나!’ 같은 결과 중심적 칭찬이다. 자신의 실패나 틀렸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이야기해 보면 이런 유형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온 경우가 정말 많았다. 노력으로 탄생한 결과이지만, 결과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칭찬을 듣는 아이 역시 ‘결과중심적’이 되어 버린다.

 

이는 좋은 자극제의 역할이 될 수도 있겠으나 결과에 지나친 부담을 가지게 되면 부작용이 생긴다. 바로 컨닝 등의 부정적 방법도 가리지 않고 결과에만 매진하거나, 자신의 실수, 실패를 인정하지 못해 좌절하고 의욕을 잃어버린다. 게다가 이런 경우는 결과 하나에 극도로 일희일비하다 보니 뭘 해도 금방 지쳐버린다.

 

어느 영상에 ‘너 정말 효녀구나!’, ‘너는 착한 아이야’와 같은 말들은 칭찬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말은 상대보단 칭찬을 뱉는 사람을 위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를 특정한 대상이라고 정의해버리니 칭찬을 받는 사람은 그 안에 갇히게 한다. 결국 칭찬인 줄 알았던 말은 ‘효녀’, ‘착한 아이’라는 단어가 주인이 된다. 그리고 ‘너’는 그 틀 안에 갇혀 강박이 생긴다. “난 착한 아이니까...”

 

칭찬에 대해 꽤 시간을 들여 고민했고, 이로써 내린 결론은 칭찬과 위로, 바램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를 위해서라도 우린 과정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위로를 목적으로 하는 칭찬에 익숙해지면 우린 자만해지고, 합리화하게 된다. 과정에 집중된 칭찬의 주인은 상대방이 아니다. 결과가 칭찬을 독식한다. 칭찬의 목적이 무엇인지, 주체는 누구인지 충분한 고민 끝에 나온 진심 어린 칭찬만이 고래를 제대로 춤추게 한다.

 

칭찬에도 질이 존재한다. 잘못된 칭찬이 충분해지면 오히려 독이 된다. 나를 위한 칭찬이 아닌, 정말 상대를 위한 칭찬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칭찬하는 습관은 좋지만, 상대를 생각한 진짜 ‘칭찬’을 해보기로 다짐한다.

 


[김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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