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에게로 향하는 문 :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 [공연]

글 입력 2024.02.1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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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동화처럼 마냥 행복하지는 않은 주인공. 그리고 서먹한 사이로 지내던 아빠의 암 소식. 시놉시스만 보아도 ‘아, 이것은 관객을 울리려고 작정한 작품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가족과 인간관계를 다룬 뮤지컬들을 인상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이상한 나라의 아빠>에 대한 기대도 컸다.


하지만 막상 공연을 보고 나니 이성과 감성이 따로 노는 아쉬움이 맴돌았다. 어쨌든 가족을 주제로 한 감동 코드가 내내 깔리다 보니 눈물은 나지만, 막상 스토리를 생각해 보았을 때는 클리셰가 가득하다는 생각을 내내 떨칠 수 없었다. 요즘 통용되는 말로써, ‘신파극’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불가피할 정도였다.


리뷰로 이렇게까지 혹평을 표하는 것이 유감스러우나, 정확히 어느 부분에서 아쉬움이 생겨났는지 짚을 필요는 있는 듯하다. 거기에 더해 인상 깊게 본 연출에 관해서도 자세히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1. ‘병삼’은 과연 ‘좋은 아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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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것은 이미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통하는 이야기뿐만이 아니었다. 과연 이 감동 스토리가 그만한 설득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나 주인공 ‘주영’의 아빠 ‘병삼’이 그러했다.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암세포가 뇌까지 전이되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병삼’. 시를 쓰는 것을 좋아하는 청년이었으나, 집안의 장남이라는 이유로 꿈을 포기하고 공장으로 취직하였다. 이후 집안의 가장이 되며 무뚝뚝하고, 무능력하며, ‘주영’의 꿈을 반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작품의 핵심은 ‘병삼’이 19살의 기억으로 되돌아가며 ‘주영’이 ‘아빠도 어렸을 적 나처럼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나를 이해하지만 그걸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병삼’을 이해하고 서로 화해하는 것이다. 즉, ‘나쁜 아빠’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좋은 아빠’였다는 스토리로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영’이 ‘병삼’의 청춘 시절을 함께 체험하며 아빠도 나와 같은 사람이었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은 좋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과연 ‘병삼’의 ‘나쁜 아빠’ 시절이 미화될 수 있을까? 빚이 쌓여가는 와중에도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엄마와 수시로 싸우고, 자신의 꿈을 자꾸만 반대하던 아빠를 ‘주영’은 과연 용서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병삼’은 자신의 병원비 수납도 포기하며 모은 돈을 ‘주영’에게 넘긴다. ‘주영’이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남겨놓은 돈이었다. 이 반전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과연 자기 삶을 포기하고 아빠가 주는 돈을 딸은 아무렇지 않게 받을 수 있을까? 돈이라는 수단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삶이었다면 차라리 간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 주는 사랑이야말로 그 어떤 가치로도 환산할 수 없는 행복인데, 그것을 일찌감치 포기한 듯한 ‘병삼’의 모습이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빠’의 시선으로 이 작품을 보았다면 견해가 조금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딸’의 시선으로 이 작품을 볼 수밖에 없었기에, 어린 시절의 ‘주영’에게 상처를 주고 삶의 끝에 다다라서야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는 ‘병삼’을 마냥 감동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었다. 이러한 스토리라면 ‘병삼’의 죽음은 ‘주영’에게 죄책감이라는 또 다른 고통으로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병삼’은 과연 ‘좋은 아빠’인가?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2. 수많은 ‘문’이 상징하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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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상한 나라의 아빠>의 시각적 연출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은 2층 구조로 이루어진 하얀 세트 위로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을 이용한 연출을 보여준다. 공간이 작아 생길 수 있는 연출의 한계를 최소화하는 현명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프로젝션 매핑을 사용한 여러 전시회와 마찬가지로, 화려함과 신비함을 더하는 모습이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습과도 부합하였다.


2층 구조의 세트도 꽤 참신한 연출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벽으로만 보이던 곳이 쑥 들어가서 침대가 튀어나오거나, 혹은 툭 튀어나와서 책장과 의자가 되었다. 세트 곳곳에는 다양한 문들이 있어 작품 속 인물들이 이리저리 들어갔다가 나오며 1층과 2층을 오간다.


나는 이 ‘문’이 상징하는 의미에 주목해보고 싶다. 왜 <이상한 나라의 아빠>에는 여러 개의 문이 있을까? 이동 동선에 변주를 주고 동화 속 인물들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뿅 튀어나오는 효과를 주기 위한 실용적인 역할도 하겠지만, 이 작품은 끊임없이 ‘문’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문이란 무엇인가? 벽으로 분리된 각 공간을 이동할 수 있게 만든 수단이다.


문이 첫 번째로 의미하는 바는 ‘이동’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앨리스도 토끼굴로 들어가면서 환상적인 공간으로의 여정을 시작하지 않는가. 이처럼 <이상한 나라의 아빠>에서는 문을 통해 한 장소 안에서 이동하거나, 혹은 장소를 옮기기도 한다. 때로는 현실에서 환상으로, 현재에서 과거로 이동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문이 두 번째로 의미하는 바는 ‘연결’이다. 문은 단순히 이동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분리된 공간을 연결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이상한 나라의 아빠> 속 문은 과연 공간만 연결할까? 이 작품 속 문은 ‘주영’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동물들, 그리고 ‘주영’과 ‘병삼’을 연결하고 있다.


‘연결’은 곧 ‘소통’을 의미하기도 한다. ‘주영’과 ‘병삼’은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 서먹한 상태였지만, 본격적으로 대화를 하며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 이후로 ‘주영’은 ‘병삼’을 마냥 미워만 하기보다는 그와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 속 갈등들을 목격할 때 ‘대화를 좀 해!’라고 답답함을 품을 때가 있지 않은가? 생각보다 많은 갈등과 단절이 소통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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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는 좋은 점도, 아쉬운 점도 보인 작품이었다. 연출은 다른 소극장 작품들과 비교하였을 때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웠지만, 스토리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가족과 부모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뮤지컬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더해 인간관계로 주제를 확장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소중히 대하는 것의 중요성도 다시금 곱씹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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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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