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젊음과 실재를 향해 뛰쳐나오기 [도서/문학]

언제든 폭발할 위험이 있지만 시적이기에 아름다운, <비행선>
글 입력 2024.02.0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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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비행선> (아멜리 노통브, 열린책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초반에는 마치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집 안에서 두 인물의 대화가 이어지는 장면들, 각 인물들 사이의 긴장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갈등이 더 커져가는 장면들은 조용한 연극 무대 위 서로를 쳐다보는 사람들과 독립된 사물들을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다가 중반을 넘어서 주인공들의 일상이 더 혼란스러워지고, 그들이 점점 집 밖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면서 서서히 시야가 트이는 순간, 갑자기 연극이 현실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신기했던 건, 연극이 현실이 된 것 같았는데도 이상하게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마지막에 가서는 마치 그 비현실적인 상상에서 갑자기 정신을 차린 것처럼 다시 현실감이 너무나 강렬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내가 주인공들을 완벽히 다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머릿속에 나의 어느 시기가 분명히 떠오르긴 했다. 사춘기, 외로움, 방 안, 내 것 같지 않은 불편한 내면, 이런 것들에 갇혀있던 주인공처럼 나 또한 어딘가 비현실적인 시기를 살다가 점점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느끼는 자유로움, 그리고 그제야 갑자기 현실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이렇게는 설명할 수 있겠다. 지나고 나서야 그 시기의 내가 갇혀있었음을 깨달았다고.

 

이 소설은 그렇게 나의 경험에 아주 가까이 가다 다시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나의 그 시기, 스무 살로부터 몇 년 동안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꺼내어 생각해 보기를 꺼리게 되는 시기, 그러나 이제는 그저 내가 어딘가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이야기인 거라며 돌아볼 수 있는 시기. 이 소설에서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그런 것뿐이다.

 

하지만, 알 사람은 알겠지만, 그 부분이란 건 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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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학을 전공하는 열여덟 살 ‘앙주’는 자신보다 세 살 많은 ‘도나트’의 집에 세 들어 산다.

 

앙주는 어렸을 때부터 문학을 좋아했고, 니체를 따라 문헌학을 선택했으며, 자란 곳은 시골이지만 지금은 도시인 브뤼셀의 대학교를 다니며 외톨이로 지낸다. 왜인지 학교에서 항상 혼자에 친구도 없고, 그나마 하는 일상에서 하는 대화는 깐깐한 룸메이트의 잔소리에 대꾸하는 정도이지만, 그게 그를 엄청나게 괴롭게 하진 않는다. 그저 그를 계속 자기만의 방으로 피신하게 만들 뿐이다. 그는 사실 그 ‘모든 게 가능한 장소’인 자신의 방에 있는 것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그리 괴롭진 않아도, 자신의 삶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큰 외로움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열여섯 살 소년 ‘피’의 과외를 맡게 된다.


피는 반항적이지만 폭력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예민하고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하는데, 앙주는 피와 과외를 하며 대화하는 동안 그게 그냥 사춘기의 불안함 때문이 아니라 그걸 넘어서는 이유가 있다는 걸 서서히 알아챈다. 그가 사춘기라서 불행함을 느끼는 게 아니라, 그의 부모가 불행의 원인이라는 것을.

 

앙주는 피에게 고전 문학 읽기를 숙제로 내주고, 피는 <적과 흑>부터 <일리아스>, <카프카의 변신> 등을 읽으며 순식간에 문학에 눈을 뜬다. 피는 책을 읽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앙주와 책 내용에 관해 이야기하며 토론하기도 한다. 그렇게 문학은 그들에게서 쉴 틈 없는 대화를 이끌어내었고, 날이 거듭될수록 그 대화들 사이에 부모, 삶, 죽음, 사랑 등에 관한 이야기가 더해진다. 

 

피는 자신을 문학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준 앙주에게 애착을 느끼게 된다. 책을 읽는 능력이 빠르게 향상되고 나서도 앙주가 계속 자신과 대화하러 오기를 바라며, ‘당신은 문학에 내 흥미를 일깨웠고, 당신이 없으면 그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며 애정을 호소하기도 한다. 앙주는 당연히 이런 말들에 난감해하지만, 그도 피와 문학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점점 더 사적인 대화를 하면서 점점 우정을 느끼게 된다.

 

앙주는 처음에 피의 아버지 ‘그레구아르’와 피를 보며 ‘각자의 방식대로 절대적으로 낯선 세계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지나며 그레구아르는 정말 낯선 세계, 그러니까 실재하지 않는 것들로 이루어진 세계에 사는 사람이며, 피는 부모의 영향으로 낯선 세계에 속해있지만 자신은 그 세계에서 빠져나와 실재하는 이 세상에서 살고 싶어 하는, ‘아직은 실재하는’ 소년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 사실이, 앙주가 피에게 동질감과 동정심이 섞인 우정을 느끼는 지점이기도 하다. 

 

*

 

실재, 실재 세계라는 건 이 소설에서 중요하다.

 

실재 세계란 진짜가 있는 세계이다. 진짜 나로서 존재할 수 있고, 누군가와 진심을 공유하며 살고, 그런 진짜 관계라는 것이 실재하는 세계. 그건 곧 피가 간절히 갈망하는 곳이며, 그레구아르와는 대척점에 있는 존재이고, 앙주가 존재하는 곳이다. 그래서 피에게 앙주는 자신이 실재 세계로 나올 수 있게 도와줄 구원자이고, 앙주에게 피는 자신이 외롭고 혼란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실재 세계에 발을 딛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해주는 존재이다.


피는 실재 세계를 갈망한다. 외환 딜러로 일하는 아버지 그레구아르는 서재의 책들과 비싼 집 같은 물질적인 것들로 자신과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전시하는 껍데기밖에 없는 인물이며, 거기에 자신의 배우자를 깔보며 경멸하고, 피를 불신하고 감시하고 가둔다. 어머니 ‘카롤’은 값나가는 골동품을 수집해 인터넷에서 사고파는 일을 하는데, 그 또한 현실의 가치에는 관심이 없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가짜의 삶 속에서, 피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으며 산다. 피는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며 살았기 때문에, 자신과 잘 통하는 앙주가 더욱더 유일하게 크고 특별한 존재로 다가온다. 


피가 실재 세계를 갈망하며 자신의 집 안에 갇혀있다면, 앙주는 외롭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살고 있을 뿐 어쨌든 실재하는 세계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앙주가 자신을 낯선 세계와 낯설지 않은 세계 그 어딘가에 두고 방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래서 앙주가 피를 이해하며 동질감을 느끼다, 자신의 내면과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앙주는 어렸을 때는 마법사들 이야기에 빠졌고, 자라면서는 니체에게서 최고의 영감을 받았다. 그는 십 대 중반의 사춘기가 되었을 때 마치 ‘마법’ 같았던 어린 시절은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며, 자신이 겪고 있는 사춘기 시기를 비극이라고 생각해 오며 살았다. 그러니까, 자신이 꽤 우울한 사춘기 시절을 보내다, 그 비극에서 살아남았다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브뤼셀이라는 도시에서 외롭게 열아홉이라는 청소년기의 끝자락이자 성인의 시작점을 살던 중에 만난 피와 자라온 환경, 성별, 문학 취향 등 많은 게 다르지만 뭔가 통하는 게 있다는 걸 느낀다. 하지만 그 집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혼란스러움은 그를 50세 교수 ‘도미니크’와의 사랑 없는 연애로 이끌기도 한다. 마치 자신이 정말 실재하는지 시험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이 관계에 사랑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걸 증명해 내야 할 것 같음을 느낀다.

 

이 혼란 속에서 앙주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현실적이고 균형적인 도나트와의 대화를 찾게 되기도 한다. 마치 주변의 모든 걸 불편해하는듯한 깐깐한 하우스 메이트인 도나트는 피에 대한 앙주의 감정을 ‘우정, 호기심’으로 명명해 주기도 하고, 앙주의 이 관계들이 ‘균형적인’ 게 아니라는 걸 상기시키기도 한다.

 

그러다 앙주는 후반부에서 피의 불행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면서부터, 사실 자신은 좋은 부모님과 함께 잘 자라왔고, 별 극적인 일도 없었으며, 자신이 생각했던 비극이란 그저 ‘사춘기’라는 보통의 불행, 그러니까 누구나 겪는 비극이었을 뿐이라는 걸 인정하게 된다. 그러니까, 사랑을 받지도 주지도 못하며 살아온 피와, 피에 비하면 부족함 없이 사랑받으며 자란 자신의 공통점은 지금 이 순간 외롭고 사람의 관심에 취약하며 혼란스러운 시기를 사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앙주는 실재하는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으로서, 피와 그레구아르의 찜찜하게 낯선 세계를 경험하는 방문자이자 피의 구원자이다. 자신이 그걸 인지하지 못하는 중에도 말이다. 그런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피를 통해 실재라는 걸 찾는다. 교수와의 관계에 자신의 사랑이 전혀 없다는 걸 깨닫고, 오히려 피와의 관계에서 우정뿐만 아니라 갇혀 있던 내면에서 나오리라는 의지를 느낄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렇게 피가 앙주로 인해 부모가 만든 가짜의 세계에서 실재 세계로 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꿈꿨다면, 앙주는 피로 인해 자신이 지금 어떤 세계에 있는지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다른 느낌의 우정을 느끼며, 중요한 존재가 된다. 

 

*

 

이 이야기는 피가 실재하지 않는 것들을 죽여야만 이 세상에 자신이 존재함을 느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며 끝난다. 비극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희극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피는 그렇게 실재하고자 하는 욕구에 따라 행동했고, 마침내 갇혀있던 방에서 완전히 나와 자유로워졌으니까. 하지만 앙주가 마지막에 피에게 한 말이 자꾸만 걸린다. 자수하는 것이 현실 세계로 들어갈 유일한 기회가 될 것이라는 말.

 

피는 앙주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사라진다. 피는 이 세상에 실재하게 된 걸까, 여전히 그대로인 걸까. 자유로워진 걸까, 또 다른 것에 쫓기게 된 셈인 걸까. 실재하지 않는 것들, 그렇게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었던 것들을 죽였다고 그가 한순간에 실재의 존재가 될 수 있는 걸까?

 

이런 의문들에도, 강한 부력으로 나를 끌어당겨 몰입하게 한 이 짧은 소설이 마지막에 피를 바깥세상으로 내보내며 끝난 만큼, 피에게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원하지 않는 세상에 갇히는 것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세상에서 뭔가에 쫓기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앙주가 자신의 다음을 함께하지 않더라도 그는 생각보다 쉽게 그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건 이제 실재 세계로 나온 후의 피가 처음으로 겪는 현실인 셈이고, 어떻게 되든 그에겐 그 현실조차도 이전의 가짜보다는 나을 테니. 어쨌든 서로를 구원하는 건 끝났고, 그렇게 둘은 각자의 실재 세계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실재 세계에 살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지금 어떤 나이로 살고 있는가.

 

작가는 앙주의 입을 통해 ‘젊음은 하나의 재능이지만, 그것을 획득하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말한다. 피와 교수에게, 그리고 자신 스스로에게도 실제 나이보다 더 나이 많은 어른처럼 보이던 앙주는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마침내 젊은이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는 피와 진심을 나누고, 문학으로 피의 탈피와 성장을 도우면서 자신이 실재함을 인식했고, 그렇게 자신보다 늙은 내면에서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필요 이상으로 스스로를 외로움으로 몰아넣고 있던 걸 그만두게 되었다는 것이 그에게는 성장이었겠지만, 그는 그 성장을 ‘성숙함’이 아닌 ‘젊어짐’으로 표현한다.

 

아마도 앙주는 사춘기 때 자연스럽게 겪은 정신적인 방황이 외로움을 겪고 있는 지금까지 이어진 탓에 생긴 조숙함이 힘들었을 테고, 그 조숙함은 그에게 성장이 아니라 무거움이고 외로움일 뿐이었을 것이다. 현실감이 결핍된 소년이었던 피가 실재 세계로 나옴과 동시에 눈부신 청년이 되고 앙주가 피 덕분에 자신의 조숙한 내면에서 나와 ‘젊은이’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런 점에서 비슷하지만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도우며 각자 이룬 성장이다.

 

그 성장은, 수직으로 가볍게 떠올라 유유히 날아가는 비행선처럼 언제든 폭발할 위험이 있지만 ‘시적이기에 아름다운’, 젊음과 실재 세계를 찾은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잠깐 사이에 그는 눈부신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의 행동이 그에게서 서툰 사춘기의 찌꺼기들을 제거해 버린 것이었다. (140쪽)

 

 

[강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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