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족이라는 끈 – 검은 소년 [영화]

글 입력 2024.02.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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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7일,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2024년 첫 신작 <검은 소년>이 개봉한다. 이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 영화 과정 15기 출신의 서정원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고등학생 소년 ‘훈’의 불안정한 성장통을 그려낸 <검은 소년>은 안지호 배우와 안내상 배우, 윤유선 배우가 극 역할을 맡아 섬세한 심리표현을 담아낸다.


1997년 외환 위기의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검은 소년>은 알코올 중독인 아빠 무진(안내상)과 그를 피해 떠난 엄마 소연(윤유선)을 둔 아들 훈(안지호)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두 개의 세계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한다. 가족이라는 세계와 학교라는 세계. 이 두 세계는 청소년기에 있어 가장 예민하게 영향받는 것들로, 대개 우리가 거쳐왔던 세계들이기도 하다.

 

두 세계에서 훈은 버티기 바쁘다. 학교에서는 양아치와의 갈등으로 눈이 마주칠 때마다 부딪히고 참길 여러 번. 어느 날 부모의 일로 인해 날카로워진 훈은 결국 충동적인 일을 저지른다. 화불단행(禍不單行). 불행은 한 데 겹쳐 온다고 했던가. 그로 인해 글쓰기를 좋아하던 훈에게 그나마 숨구멍이 되어주었던 문학 동아리도 부원들이 그를 무서워한다는 이유로 내쫓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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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은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사람이었다. 모종의 사건을 기점으로 훈은 그런 무진을 신고했고, 소연은 무진을 피해 따로 살기 시작했다. 훈은 무진 몰래 소연에게 연락한 뒤 함께 밥을 먹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훈은 두 사람이 마주치게 될까 두려워 약속장소를 무진이 좋아하지 않는 떡볶이집으로 고른다. 떡볶이를 먹으며 추억을 되새기던 훈은 세 가족이 함께 먹던 돈가스집 이야기를 꺼낸다. 그에 소연은 다음에 둘이서 먹으러 가자고 하지만, 훈은 그때만큼 맛있을 것 같지 않다며 거절한다.


이처럼 훈은 무진과 소연이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면서 동시에 소연에게 ‘아빠가 많이 변했다’고  대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훈은 은연중 세 가족이 함께였던 시절을 갈망하고 있지만 그 입장을 강력하게 내비치지 못하고 그저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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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을 보살피기 위해 무진의 집 근처로 이사 온 소연의 집에서 훈은 따듯한 햇살과 함께 안락함을 느낀다. 소연 앞에서 훈은 그 나이대의 모습을 한다. 웃음이 많고 투정도 부리지만 듬직한 아들이다.

 

소연의 집과 대비되게 무진과 함께 하는 집은 전등도 켜지 않은 어두운 공간이다. 퇴근하고 돌아온 무진이 술을 마시면 훈은 항상 방에 틀어박혀 있는다. 술에 취한 무진이 식탁을 뒤엎고 자신을 부를 때면 훈은 치밀어 오르는 화에 방문을 내리치려 하지만, 참고 나가 깨진 술병을 치운다.

 

훈은 왜 무진과 함께 사는 것일까? 위만 본다면 소연과 함께 사는 것이 훈에게 있어 좋아 보인다. 하지만 무진은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훈의 점심 도시락을 싸주는 가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아마도 훈은 자신마저 아빠를 버린다면 가족이란 끈이 정말로 끊어질까 봐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무진도 자신의 부모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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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무도 내가 뭘 원하는지 묻지 않아요?”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자식의 의사는 묻지 않고 선택을 강요하는 부모와 어느 부모도 놓지 못하는 자식. 결국 어느 한쪽과도 함께 하지 못하게 된 훈은 어두운 터널에서 방황한다. 열여덟의 훈이 감당할 수 있는 불행일까. 아니, 애초에 감당할 수 있는 불행이 있을까.

 

이 영화는 훈의 성장보단 위태로운 미성년의 성장통을 담고 있는 듯하다. 그렇기에 결말에 있어 검은 터널에서 방황하던 훈이 그 이후 어떤 선택을 할지 가늠되지 않는다. 누구나 감추고 있는 검은 마음이 있고, 그 마음에 잠식당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저 훈이 검은 터널과 어둠에 너무 오래 머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그가 자주 갔던 먼지 쌓인 책방과 작은 수첩 속 빼곡한 글, 햇살 아래 머리를 어루만져주던 손길 같은 것을 떠올리며 걸어와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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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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