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시간이 흐른다

나의 시간 또한 흐르고 있다
글 입력 2024.01.2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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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조금은 더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던 게 무색하게도, 여전히 같은 하루들이 반복되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훨씬 조급해지고 훨씬 바빠졌다는 것. 난생 처음 경험하는 일들도 많아졌다. 그래서 나는 이 새로운 노력에 적응하고 있다. 남들과 비슷한 삶을 살기 위해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정말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 사회와 오늘의 하루를 보내기 위해 나는 하나의 나사로 조여지고 풀어지는 부품같다.

 

아무 감정도 들지 않는 일상이다. 다채로운 일들이 발생했던 과거의 하루들은 눈 녹듯 사라지고 지금의 난 밋밋한 회색 인간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로 기계 부품 같다. 왜, 대부분의 부품들은 회색빛을 띄지 않는가. 내가 떠올린 것들이지만 정말 이 상황에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표현이다. 개성도 없고 겨우 기름칠 해가며 움직이는 톱니바퀴.

 

오늘은 좀 더 힘든 날이다. 화가 많아지고 예민함이 증폭되다보니 소중한 관계에서 상처 주는 일도 잦아졌다. 나 스스로가 왜 이러나 싶다. '너, 뭐 돼?' 라는 생각을 자신에게 내뱉는다. 아무 것도 아니면서 이 상황과 나의 단점을 개선하지도 못하고 계속 반복하는 나 스스로가 밉다. 너무나도 밉다.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내가 싫다. 나만 점점 녹슬어가는 것 같다.

 

그래, 녹스는 것 말이다. 그 기름칠도 제대로 안 돼서 붉게 변색되어 버린 톱니바퀴처럼, 곧 교체 당해 버려질 그 톱니바퀴처럼, 나라는 인간도 점점 녹스는 것 같다. 그렇게 버려진 톱니바퀴의 시간은 멈춘 것과도 같겠지. 나라는 인간의 시간도 멈춘 것 같다.

 

모두 바쁘게 자신의 삶을 영위해간다. 주어진 일을 수행하고 하나의 자리를 각자 담당하고 있다. 어릴 땐 다들 똑같이 살아가는 게 영 재미없어 보였는데 지금은 존경스럽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들이 부럽고 그들의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 부럽다. 내 시간은 멈춘 것 같은데. 나만 빼고 모두의 시간은 정상적으로 흘러간다.

 

이럴 때 힘이 났던 경험이나 현실적인 조언을 들어서 다시 힘이 나면 좋겠건만,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사실 내 시간은 멈춘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 시간도 지금 똑같이 흘러가고 있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이 그저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어라, 나 지금 힘든 건가. 그래. 난 지금 힘들다. 나만 도태된 것처럼 느껴져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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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비슷한 생각이 들 때의 일이다.

 

동네에 커다란 사거리가 하나 있다. 그 사거리의 횡단보도에는 늘 사람이 붐빈다. 잠시 사거리에 들려야 할 일이 있어 갔다가 다른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을 유심히 바라본 적이 있다. 어딜 가길래 저렇게 바쁠까. 저 사람들은 나처럼 힘든 감정을 느끼긴 할까.

 

쉼없이 흘러가는 그들의 시간이 너무 부러웠다.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하는 내가 우습게 느껴져서 나도 걸었다. 정처없이 걷는 나 자신이 너무 서러웠다. 그래도 걸었다. 내 시간이 가벼운 게 아니라고 애써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내 시간도 흐른다는 것을 그렇게 보이고 싶었던 걸까.

 

걷다보니 적적해서 노래를 틀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내 귀에는 누군가가 목소리를 내는 것이 들린다. 그래도 들었다. 자꾸 나와 비교하면서, 그럼에도 들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노래를 들으며 걷다가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나서 집에 왔다. 여전히 힘들긴 했지만 지친 다리 탓에 부정적인 생각이 더 들지 않았었다.

 

아무래도, 다시 걸을 때가 온 게 아닐까. 춥다는 이유로 걷질 않았었는데 말이다. 내 시간도 똑같이 흐르고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보여줘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을까. 그나마 다행이다, 매서운 추위가 이제 막 지나갔기 때문이다. 봄이 올 때까지 쭉 걷고 싶다. 밖의 시간은 빠르게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지나고 내 시간은 여전히 봄이 오지 않은 겨울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 시간도 흐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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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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