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관점 수집의 쓸모 -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 [도서]

글 입력 2024.01.2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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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과의 수다


 

내가 만약 책 <아무튼 시리즈>를 쓴다면 소재로 ‘수다’를 고를 것이다. 삶을 관통하며 다듬어진 화자의 고유한 관점을 공유하는 ‘수다’가 가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다의 유용성을 믿는 내가 철학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결국 철학이란 나보다 먼저 살아본 자의 삶의 기준을 정리한 학문이니까.

 

자주 불안한 개복치인 나는 타인과의 수다를 통해 틈틈이 다양한 관점을 수집해 두는 편이다. 고작 내 삶만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난관을 마주했을 때, 언제든 꺼내 스스로를 다독일 이야기를 다양하게 구비할 수 있다는 건 ‘관점 수집’의 든든한 이점이다.

 

책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은 우리 모두 한 번쯤 품어본 ‘생의 근본적 질문’에 ‘철학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답변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철학자와 독자의 캐주얼한 수다의 장을 마련한다.

 

정답이나 진리는 없으니 독자는 책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그저 자기 생각과 감정을 찬찬히 알아차리면 된다. 철학은 다면적인 관점을 우리의 신체로 들여 고착화된 개인의 알고리즘을 확장하는 것으로 존재의 소명을 다한다.

 

 

 

내가 수집한 관점


 

[1]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그는 자신의 일이 무의미하다는 느낌을 극복하기 위해 스토리텔링 기술을 익힐 것을 제안했다. 전문적인 일에 종사하는 개별 노동자가 거대한 서사에 기여하는 부분은 미미해 보인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을 통해 숨겨진 장엄함을 밝혀낼 수 있다고 보았다.

 

4장 -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할까? 中

 


요즘의 가장 큰 고민은 회사다. 의견 개진과 그에 따른 변화에 보수적인 집단에서 말단 사원으로 살아남으려면 주도성이나 창조성 따위는 개나 줘야 하는데, 이게 너무 내 성향에 맞지 않는 거다. 게다가 원하는 방향이 있어도 말도 못 꺼내게 하는 상사와 일하다 보니 자존감이 팍팍 깎인다.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멍청이가 된 것 같은 기분에 근 일주일을 출퇴근하며 매일 울었다.

 

이런 상황에서 애덤 스미스는 개인의 노력이 전체에 기여한다는 ‘스토리텔링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말한다. 내 업무의 중요성을 존중하는 동료들이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가능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스스로라도 내 업무의 필요를 되새기는 것만이 무력함으로 인한 현타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인 듯 보인다. (다시 생각하니, 최선은 이직인 것 같다.)

 

 

[2] 선불교의 와비사비, 불완전한 것에 대한 사랑


 

우리는 덧없고 불완전하며 영웅적이지 못한 본성과 상징적으로 화해한다. 결함을 인위적으로 숨겨서는 안 되고, 손상의 흔적은 눈에 보이게 그대로 놓아두어야 한다. 요컨대 와비사비는 있는 그대로의 진정한 우리, 즉 지극히 인간적인 우리의 본모습과 화해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1장 - 결점은 꼭 숨겨야 할까? 中

 

 

이 글은 마감일을 겨우 하루 남긴 채 헐레벌떡 쓰여지고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집중이 그렇게 안 되더니 오늘은 집중이 참 잘 된다. 역시 벼락치기는 언제나 최상의 몰입으로 시간적 한계를 뛰어넘게 한다.

 

평일 퇴근 이후, 글을 쓰지 않고 논 건 결코 아니다. 후에 부족한 글을 회수하고 싶은 부끄러움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기에 글 방향을 고민하다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한 것뿐.

 

그런데 사실 오랜 시간을 쏟아붓는다고 해도 나는 딱 나만큼의 글밖에 쓰지 못할 것이다. 내 안에 없는 무언가를 글에 담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완벽하게 하고 싶은 욕심에 시작조차 쉽지 않다면 선불교의 ‘와비사비’를 떠올려야겠다. 그래, 내 글과 같이 지극히 불완전하고 인간적인 이야기도 세상에는 필요할 것이다. (앞선 애덤 스미스의 ‘스토리텔링 기술’을 함께 활용해 보았다!)

 

 

[3] 장 폴 사르트르의 ‘나쁜 믿음’

 

 

변화는 어렵기에 우리는 무엇이 어떠해야 한다고 스스로 되뇌는 경향이 있다. 가령 특정한 일을 하고, 특정한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며, 특정한 장소에 보금자리를 꾸려야 한다고 말이다. (…) 사르트르는 기혼자와 회사원이 특히 이 ‘나쁜 믿음’을 가지고 살기 쉽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하지만 사실은 언제든지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다.

 

4장 - 성공하는 방법은 한가지 뿐일까? 中

 

 

상담학의 교류 분석은 우리가 저마다의 ‘인생 각본’에 입각하여 산다고 주장한다. '인생 각본'은 어릴 적 부모의 양육 태도, 축적된 한정적인 경험, 타인의 암묵적인 요구 등을 기반으로 형성된 개인의 생활 양식을 뜻한다.

 

사르트르는 나쁜 믿음이란 개념을 통해 인생 각본에 충실하느라 자신의 고유성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억누르는 삶을 꼬집는다. 그리고 그 믿음을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깰 수 없다고 여기는 나의 ‘나쁜 믿음’은 무엇이 있을까. 나다운 삶을 바라면서도 스스로의 범주를 제한한다는 건 모순일지도 모르겠다.

 

 

[4] 헤겔의 ‘변증법’

 

 

헤겔은 역사는 변증법적으로 나아간다고 말했다. 변증법이란 정립, 반정립, 종합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논증을 가리키는 철학 용어다. (…) 헤겔에 따르면 세상은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휘청거리며 나아감으로써 비로소 진보한다. (…) 그러니 우리는 헤겔을 기억하며 세상만사의 비틀거리는 흐름을 인내하려 노력해야 한다.

 

4장 - 사회는 계속 발전할까? 中

 


헤겔에 따르면 세상은 정반합을 통해 중용을 찾는 방식으로 진보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 어떤 경험도 쓸모없는 게 없을 것이다. 극단적인 경험들 사이를 오가며 궁극적으로 적절한 균형을 찾은 요소들만 남을 테니.

 

지금의 시간이 내 삶에 ‘흡수할 것’과 ‘뱉어낼 것’이 무엇인지 분류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니 불안이 사그라든다. 나아질 것을 의심치 않는다면, 일희일비에서 벗어나 정반합의 필연적인 비틀거림을 조금은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마무리하며


 

고등학생 때, 철학과에 지원한다고 하니 뜯어말렸던 어른들이 떠오른다. 철학이 사각지대 취급을 받은 지는 꽤 되었다. 철학은 실용적이지 않고 사변적이라는 이유로 현대인에게 유익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장의 성과나 능률에 크게 도움 되지 않는 듯 보이는 ‘인생 사는 이야기’를 논해서 무엇하냐는 논리일 테다.

 

하지만 수행할 과제가 많아 휩쓸리듯 사는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자신만의 기준을 끊임없이 질문하도록 이끄는 학문, 즉 철학일지도 모르겠다.

 

간단히 이 책을 P에게 소개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철학을 ‘찍먹’하듯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단다. 적절한 표현이다. 이 책은 다양한 사상가를 다루면서도 그들의 관점을 두 페이지 내로 간략히 풀어, 독자로 하여금 쉽고 편한 마음으로 철학과 조우하게 한다.

 

책을 읽으며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덮어두었던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을 오랜만에 꺼내 마주할 수 있기를, 다양한 관점을 경청하며 본인이 쥐고 있는 삶을 요리조리 다각도로 살펴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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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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