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넘어지고 휩쓸리더라도 괜찮은 이유 -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 [도서]

글 입력 2024.01.20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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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서핑에 대한 영상을 시청하며 삶에 대해 떠올린 적이 있다.

 

서핑을 갓 입문한 초심자의 얼굴엔 불안이 잔존해 있다. 균형을 잃고 넘어질까봐, 매운 바닷물에 얼굴을 처박게 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중심을 잡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겪고 난 뒤, 코어가 얼추 형성되면 안정감이 생기고, 두려움은 줄어든다. 이후 보드를 장악할 수준이 되면 바다 위를 자유자재로 이동하며 자유와 환희를 만끽하게 된다.

 

어쩌면 삶도 서핑과 같다. 출생을 통해 사회라는 바다에 내던져진 채, 살아남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나 자신과의 실체 없는 싸움을 지속하며 내적인 근력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삶과 서핑에 다른 점이 있다면, 서핑은 일회적이지만, 삶은 평생에 걸쳐 진행되는 스포츠라는 것이다. 때문에 그러한 장기전을 견뎌내고, 숱한 곡절을 수월히 이겨내기 위해선 멘토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서핑의 멘토가 바다 위를 수없이 길항해 온 서퍼들이라면, 삶의 멘토는 그에 대해 평생을 바쳐 치열하게 탐구하고 사유했던 철학자들일 것이다.

 

 

[표1]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jpg

 

 

신간 도서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Philosophy In 40 Ideas)»은 그러한 탐구와 사유의 집약서다. 본 도서는 크게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법’, ‘2장 불안에 흔들리지 않는 법’, ‘3장 관계에서 중심을 잡는 법’, ‘4장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 법’이 그것이다. 흥미로운 건, (의도한 건 아닐 테지만) 그러한 제목에서부터 삶과 서핑의 연관성이 새삼 보인다는 것이다.

 

책은 소크라테스, 칸트, 하이데거, 키르케고르 등 서양 철학사의 기라성 같은 학자들 그리고 동양 유불도 사상을 대표하는 공자, 일본의 선불교, 노자 등의 아포리즘을 통해 현대인의 실존적 불안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공유한다. 명언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좋은 어구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지만, 필자의 마음을 오랫동안 붙들었던 대목을 각 장 별로 하나씩만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칸트는 인간이 이성과 고귀한 지성만큼이나 정념과 그릇된 본능 또한 지닌 생물이기 때문에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어딘가 허술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26쪽)

 

“우리가 울고 화내는 이유는 단순히 계획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간절한 기대가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72쪽)

 

“살면서 우리가 작아짐을 느끼는 경우는 대부분 굴욕을 경험할 때다 (...). 그러나 숭고한 대상 앞에서 작아지는 느낌은 정신적 고양과 심오한 구원의 효과를 갖는다. 웅대한 전체 배열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 완전히 무화되고 하찮아지는 느낌을 받으며, 그리하여 야망과 욕망의 무게로 인한 압박감을 덜게 된다. 숭고한 것은 우리 각자의 걱정이 다행히도 무의미해 보이는 시각을 선사해 준다.” (119쪽)

 

“아우구스티누스는 인류에게 지나친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고 넌지시 말한다. 우리는 태초부터 다소간 불행해질 운명이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마음에 새겨야 할 구원관일지도 모른다.” (153쪽)

 

나열된 인용구를 쭉 읽어보면 와닿겠지만, 이 학자 혹은 저자들은 결코 인류나 인생에 대해 찬미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것이 때로 얼마나 하찮고 불완전하며 무의미한지에 대해 역설하는 쪽에 가깝다.

 

그러나 그들의 논지가 결코 허무주의나 염세주의로 기우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실패와 불행을 두려워하기보다 당연한 순리로 수용할 줄 아는 자세의 필요에 대해 피력하는 것일 테다.

 

마치 한 번의 테이크 오프를 위해 수십, 수백, 수천 번씩 파도 위로 넘어지고 휩쓸리는 서퍼들처럼. 삶이라는 망망대해가 아직 아득하고 두려운 모든 현대인들에게 이 책을 적극 권한다.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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