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살이 죄가 되는 방식 [드라마/예능]

글 입력 2024.01.1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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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5일에 이어 1월 5일, TVING 오리지널 드라마 <이재, 곧 죽습니다>가 파트 2를 공개했다. 네이버 웹툰 <이제 곧 죽습니다>(이원식, 꿀찬, 2019)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는 스스로 죽음을 결심한 주인공이 12번의 새로운 삶과 죽음을 경험하는 판타지 장르다.

 

주인공 ‘최이재’는 거듭된 취업 실패와 생활고에 비관하며 자살한다. 다시 눈을 뜬 그의 앞에는 인간의 형체를 한 ‘죽음’이 서 있다. 자살이라는 죄로 지옥에 가게 된 이재에게 죽음은 벌을 내린다. 죽기 직전에 처한 12명의 몸에 들어가 예정된 죽음을 막도록 하는 일이다.

 

이재는 매번 새로운 몸에서 눈을 뜨지만 죽음을 막을 수 없다. 낙하산 없이 고공에서 추락하거나 전기톱으로 사지가 절단되는 끔찍한 고통만이 그를 기다릴 뿐이다. 여러 번의 죽음 끝에 그가 차지한 마지막 몸의 주인은, 그의 엄마였다.

 

이재는 기억 구슬을 통해 빙의된 몸의 기억을 전달 받는다. 이재가 자살한 후 거대한 슬픔에 사로잡힌 엄마의 기억을 읽으며 그는 스스로 선택한 죽음을 후회한다.

 

“죽음은 전염된다.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동안 나의 죽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남겨졌다.”

 

드라마는 남은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을 강조하며 자살은 곧 죄이자 잘못이라 말한다. 이재가 반복되는 환생을 통해 삶의 가치와 죽음의 무게를 깨닫는 것이 그가 받은 벌이다. 엄마의 몸에 들어가고 나서 그는 ‘내가 엄마에게 준 지옥 같은 고통이 고스란히 나에게로 돌아왔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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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미디어가 자살을 재현하는 유구한 방식을 답습한다. 자살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사후 지옥행이 예견된 <콘스탄틴>(프랜시스 로렌스, 2005)에서 논의는 더 나아가지 않는다. 무려 19년이 흘렀음에도 그렇다.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는 명제는 기독교 세계관에 기인한다. 비단 종교적인 개념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현대 사회에서 자살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인식은 지배적이다. 자살은 자신이 떠난 후 남겨질 가족과 주변인들의 슬픔을 배반하는 일이 된다.

 

그러나 감정에 호소하기 이전에 자살의 사회 구조적 원인을 먼저 살펴야 한다. 2020년 OECD 주요 국가 자살률 1위의 나라에서 특히 청년 자살은 최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다.

 

2021년 대한민국 자살 사망자 중 25.6%가 20~39세였다. 2016년부터 5년간 청년 자살 증가율은 43.9%에 달하며 다른 연령과 비교해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자살의 원인은 정신과적 문제(54.4%)와 더불어 경제생활 문제(18.9%)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청년 5명 중 1명이 경제 문제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는 셈이다.

 

드라마 속 이재가 자살한 이유는 연이은 취업 실패로 인한 자괴감과 우울증이었다. 경기 불황과 극심한 취업난, 불안정한 주거 환경과 경제적 빈곤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드라마는 이러한 사회 구조적 맥락을 소거한 채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다.

 

마지막 삶의 기회에서 이재는 엄마가 홀로 자신을 키우기 위해 궂은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에 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에도 힘들다는 이유로 죽음을 결심한 나약하고 비굴한 자신을 후회한다. 자살은 이재 개인만의 옳지 못한 선택이자 최후의 도피처로 전락한다.

 

결국 ‘노오력’의 문제는 청년 자살에까지 이어진다. 최선을 다하지 못해 취업 시장에서 실패한 청년이 그 여파로 자살하는 순간에도 그는 노력하지 않은 선택을 한 사람이 된다. ‘노오력’의 굴레에 갇힌 청년은 스스로 죽을 수도 없다.

 

답이 보이지 않는 취업난과 매년 증가하는 청년 자살률 속에서도 미디어가 자살을 다루는 방식은 이토록 고루하다. 자살은 어떤 방면에서 ‘사회적 타살’이다. 죽음의 벼랑 끝으로 사람을 내몬 사회는 어느 순간 야비하게 몸을 숨기고 카메라에는 허공에 발을 걸친 주인공만 남는다.

 

대중 콘텐츠에서 자살에 대한 논의는 슬픔과 후회, 참회와 애도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죽음 이면에 숨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구조적 문제를 파헤치고 드러내며 신랄히 비판해야 한다. 자살이 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참고자료

김성은. 「’하루 4.3명꼴’ 세상 등지는 20대・・・ 그중 19%는 ‘생활고’였다」, 『서울신문』, 2023. 0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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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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