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 돌아올 여름에게,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

여전히 겨울이다. 여름이 저편에서 웅성거린다.
글 입력 2024.01.1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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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뭐라고 불러야 하나.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달라’는 의미의 영화명과 마주할 때마다 영화 자체부터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여덟 글자, 다섯 단어로 구성되어 있는지라 매번 풀네임으로 부르기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고민하다 “콜바넴”이라고 중얼거려본다. 이편이 가장 어감이 좋다. 구조적으로도 균형감이 있다. 찾아보니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많이 부르는 것 같다.

 

그런데 제목을 줄여 부르는 영화가 또 있던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원어타아’라고 부르지 않는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도 ‘도항블’라고 칭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만 왜 이런 개인적인 관례를 거치는가. 왜냐하면 이 영화는 나에게 매해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줄임말이 대개 그렇듯이 자주 사용되는 단어는 언급하기 수월해야 한다. 다섯 단어 – 여덟 글자를 모두 정직히 발음하기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이미 내 삶과 너무 가까워졌다. 계절은 영화를 주기적으로 호출한다. 그리고 영화는 잊고 지냈던 계절 감각을 꿈결처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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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겨울이다. 여름이 저편에서 웅성거린다. 여름의 인상을 되뇔 때마다 나는 자연스럽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몇몇 장면을 떠올린다. 사실 그건 내가 경험해 본 적 없는 것이다. 여름밤의 테라스에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가져본 적도, 강렬한 햇살 아래서 옷을 벗어 던지고 강으로 뛰어든 적도, 자전거를 타고 이탈리아 북부의 시골 마을을 누빈 적도 없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라고 선언하고 다니지만 정작 여름 속에 있을 때는 그만큼 좋지는 않았다. 다만 행복하기로 작정한 여름은 과도하게 완벽해질 수 있는 계절. 땀도, 더위도, 모기도, 그을음도 외면한 채 찬란한 여름의 풍경만을 남기기로 작정한다면 그곳은 천국의 다른 이름으로도 손색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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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여름의 불쾌함을 완전히 배제한 채로 여름이 가진 환상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 영화로까지 느껴진다. 등장인물들은 “아, 덥다.” 같은 아주 단순하고 상식적인 여름에 관한 불평 한마디조차 내뱉지 않는다. (물론 내가 기억 못하는 걸 수도 있다) 그들은 자꾸만 바깥으로 나가려고 한다. 옷을 벗으려고 한다. 물에 빠지려고 한다. 그리고 세례처럼 쏟아지는 새하얀 햇살. 나뭇잎에 덧입히는 눈부신 광택.

 

그리고 그런 여름을 맞이하는 모든 인물의 태도는 수백 년 동안 동굴 속에서 갇혀 지내며 단 한 번의 여름을 위해 여름을 만끽하는 매뉴얼 따위를 연구해 온 종족 같다. 비현실적이지만 나는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다른 좋은 영화도 충분히 많으니 이제 그만 놓아주려 해도 여름 향기가 밀려오는 어느 날에, 혹은 겨울이 지긋지긋해질 무렵 반사적으로 이 영화가 불현듯 내게 방문하는 걸 나는 거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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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온도와 습기 속에서 우리의 감각은 극대화된다. 시각적으로 황홀한 계절이기도 하다. 찌는 듯한 더위만 배제한다면 여름의 장면은 생명력과 상쾌함 모두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감각을 스크린에 표현하는 일에 탁월한 재주가 있다. 그가 연출한 여름 배경의 작품들이 늘 성공적이었던 건 단순히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여름의 대명사가 된 까닭을 ‘바깥’과 ‘사랑’으로 요약하고 싶다. 먼저 바깥. 영화는 바깥세상을 공들여 다룬다. 나무. 햇살. 테라스. 수영. 자전거. 잔디. 자연은 카메라를 거치며 하나의 오브제로 변모한다. 존재하는 그대로 예술이 된다. 가장 경이로운 아름다움은 자연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영화의 분위기를 채우는 자연의 소리도 한몫한다. 새소리와 매미 소리. 그리고 복숭아의 과즙, 매만지는 손이나 맞닿는 피부 같은 것들이 한데 모여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스크린에 담아낸다. 여름의 향기마저 코끝에 진동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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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랑.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 처음 느껴보는 그 강렬한 감정으로 엘리오의 여름은 완성된다. 여름과 사랑의 모양은 꼭 닮았다. 엘리오와 올리버가 대화를 나누던 여름밤의 베란다는 사랑의 배경으로 선명하다. 영화는 가족 간의 사랑도 여실히 보여준다. 엘리오의 부모님은 그가 받은 가장 귀중한 자산이다. 그들은 엘리오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바른 길로 이끌어주거나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 이러한 사랑들로 둘러싸인 영화의 여름은 숭고할 정도로 빛난다.

 

여름은 곧 다시 돌아올 것이다. 겨울도 반드시 언젠가는 끝난다. 끝을 아는 슬픔으로 우울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돌아올 여름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같지는 않더라도, 이런 여름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삶이 주는 커다란 감동을 느낀다. 사실 그런 사람이고 싶다. 영화의 배우보다는 가장 정열적인 관객이 되고 싶다. 그건 어떤 형태의 여름이 내게 찾아오더라도 홀가분하게 맞이하는 마음을 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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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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