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나의 프랑스 적응기 1] 함께 느릿하게 [여행]

남이 느려도 되니까, 나도 느리게
글 입력 2024.01.15 03:2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어느새 교환학생으로서 프랑스에 도착한 지 일주일 하고도 이틀이 지났다.

 

한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눈을 뜨고 밥을 먹는다고 해서 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거나 낭만적인 영화가 시작되는 것처럼 천지가 개벽하지는 않았다. 그저 매일 같은 하루를, 조금 더 조심히 움직이며 조금 더 낯설게 보내고 있을 뿐이다.

 

고작 일주일 남짓 살았을 뿐이지만, 그동안 유독 새롭게 다가온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프랑스 특유의 ‘천천히’에서 비롯된 관용의 문화다.

 

 

[크기변환]SAM_4065.JPG

 

  

동네 버스에 타면, 버스 기사와 탑승객들은 서로 ‘Bonjour’하고 인사하며 눈을 맞춘다. 버스 기사 옆에 카드 태그기가 있긴 하지만, 유모차를 끌고 버스에 타거나 짐을 든 사람들은 자리에 앉고 나서 그제야 주변에 있는 태그기에 카드를 찍는다.

 

당연하게도 이동 약자들이 많이 보인다. 휠체어든, 다양한 형태의 보행기구든 할 것 없이 장애를 가진 사람도 대중교통을 편하게 이용한다. 버스 기사도, 승객도, 그 누구도 이동 약자들이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데 함께 기다리는 시간에 짜증을 품지 않는다.

 

이것은 프랑스 사람들이 모두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훌륭한 성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냥 그게 당연한 일이고, 일상이기 때문이다.

 

 

[크기변환]SAM_4136.JPG

 

 

며칠 전에, 내가 지내고 있는 도시에 20년 가까이 사신 한국 분을 만났다. 그분은 이곳에서 너무 빠르게 이메일을 답하고 일을 처리하면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래서 일부러 일을 느릿하게 처리하는 때도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느림이 허용되는 이 나라의 환경이 ‘남이 느려도 되니, 나도 느려도 되는’ 일종의 합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빨리빨리 해야만 우수성이 증명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타인에게도 관용을 주는 대신 나에게도 여유를 주는 것이다.

 

물론 이런 특성 때문에 행정 절차는 한국과 달리 무지하게 느리기는 하다. 그 과정에서 답답함도 느끼고, 눈앞에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는다는 불안도 겪지만, 대신 나에게도 어떤 느긋함과 관용이 허락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나는 한국의 맹목적인 성과주의에 피로함을 느끼던 사람이었다. 반드시 모두가 인정하는 대단한 무언가를 달성해야 하고, 작고 일상적인 것보다는 크고 화려한 것을 부러워하는 문화 말이다.

 

프랑스에서의 삶이 이러한 내 답답함을 해소해 줄 수 있는 공간이 될까? 앞으로의 일상을 잔잔히 즐겨보아야겠다.

 

 

 

박소은 컬쳐리스트 태그.jpg

 

 

[박소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