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래된 책장 [사람]

글 입력 2024.01.15 09:3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23년 한 해를 푹 쉬며 여유 있게 보내서 그런지 모르겠다. 어느덧 2024년이 되어있는 것이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는 평범하게 새해를 맞이했고, 몇몇 친구들은 신년을 맞아 대청소를 했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나도 정리를 좀 해볼까?’ 하고 문득 방 주변을 둘러보니 ‘좀’ 해야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게 신년맞이 대청소를 시작했다.

 

 


정리 시작


 

자기 전에 읽으려고 베개 옆에 두거나, 더 이상 꽂을 데가 없어 바닥에 놓아둔 갖가지 책들이 내 방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문제점이었다. 이 책을 책장에 두려면 책장을 가득 채운 기존 책들을 먼저 처리해야 했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책장은 아버지가 대학생이었던 시절부터 쭉 써왔던 책장이었다. 그래서 책장에는 내 책과 아버지의 책이 섞여 있었다.

 

전부터 아버지는 내 책을 꽂을 자리가 없으니, 자신의 책을 싹 다 버려도 괜찮다고 하셨는데, 나는 아버지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 책들을 버리기가 너무 아까웠다.

 

 

[크기변환]2.jpg

(중간중간 낙서 같은 글귀도 보인다. 아버지 글씨체는 아닌 걸로 보아 대학 동기가 써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지금까지 못 버리고 놔두었던 아버지의 책이 정말 많았는데, 바닥에 턱턱 쌓여 있는 내 책들을 보니 이제는 정말 정리해야만 할 것 같았다.


아버지의 누렇게 바랜 책들을 정리하며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읽었던 책들도 같이 정리했다. <너도 하늘말나리야>, <초정리 편지> 등 그 시절 초등학교의 필독 도서였던 것들이 책장에서 빠져나갔다. (이 책들이 왜 아직도 책꽂이에 있는지는 곧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책을 빼낸 뒤 책장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고 내 책들을 꽂으니, 마음이 개운해졌다. 이 책장의 ‘세대’를 교체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책들을 다 버리기엔 아직도 아쉬운 마음이 들어 종류별로 두어 권씩을 남겨두었다.

 

 


정리 중간 


 

소유욕인지 미련인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물건을 잘 안 버리는 습성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둘 다인 것 같다. 내 물건이니까 버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었고,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일 테니 오래오래 보관하자는 마음도 있었다. (위에서 말했던 초등 필독 도서들은 그러한 이유에서 여태 책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덕분에 내 방에는 초등학교 때 매년 썼던 일기장과 학예회에서 사회를 봤던 대본까지, 예측할 수 없는 깜짝선물 같은 것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크기변환]3.jpg

 

 

함께 보관되어 있던 다른 수많은 종이와 공책들을 한 번씩 훑어봤다.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 오는 열 가지 경로에 대해 열성적으로 설명했던 낙서 공책도 있었고, 중학교 때 수행평가로 발표했던 연극 대본도 있었다.


다시 보니 너무 재미있는 이 추억들의 주인공들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해보았다.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었더니 이게 뭐냐며 웃었다. 덕분에 한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친구와도 텍스트로나마 새해 인사 겸 안부를 전할 수 있었다.

 

 


정리 끝


 

책꽂이의 절반가량을 비워냈고, 남은 공간을 내 책으로 채웠다.

 

비운 공간에 비해 채워 넣을 것들이 생각보다는 많지 않아서 책장의 한 줄이 텅 비어 있는 상태이다. 정리하기 전에는 너무 어수선해 쳐다도 보지 않았던 책장을 이제는 힐끔힐끔 보게 된다. 비어 있는 공간을 볼 때마다 뿌듯함이 밀려와서 그런 것 같다.


2024년에는 또 어떤 새로운 추억들을 채워 넣게 될지 기대된다.

 

 

[김지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