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돌아갈 곳이 절실히 필요할 때 - 연극 "무라"

연극 “떠돔 3부작 - 무라” 관람 후기
글 입력 2024.01.0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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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느 때보다 모든 것의 이동이 잦은 시기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자재가 여기서 상품으로 가공되어 저기로 팔려나가고, 사람도 일자리를 찾아,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 혹은 그저 관광을 위해 이곳저곳으로 떠나기도 한다.

 

극단 즉각반응의 연극 “떠돔 3부작”은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이동 중 ‘떠돎’에 주목하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중 “무라”는 아들 수동이 평생 밖으로만 떠돌던 아버지 동수와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이는 작품의 작가이자 연출가 하수민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다. 기억이 배인 장소들을 여행하면서,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던 아들과 아버지의 사이가 조금씩 움직인다.

 

아버지 동수는 어려서는 첩의 자식이라 괄시받으며 고향집을 떠났고, 나라를 떠나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떠돌며 일하고, 술에 취하기를 즐기며 아무데서나 잠을 청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아버지의 부재로 수동은 아버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그를 원망하기도 한다.

 

두 사람의 여행을 통해 수동은 조금씩 아버지를 알아가게 된다. 멀리 보이는 산이나 멧돼지를 닮았다던 아버지를 사람으로서 어렴풋이 이해해간다. 극의 초반 아버지를 찾아왔을 때 동수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무(無)라”라고, 즉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둘의 마지막 식사에서 아버지가 건네는 “많이 무라”의 ‘무라’는 아들이 배불리 먹고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무심한 듯 따뜻한 걱정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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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만큼 묘한 관계가 또 없다. 물론 개인의 성격과 가정의 분위기마다 조금씩 상이하겠지만, 나와 아버지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사이는 못 된다. 어렸을 적 무뚝뚝하고 엄한 아버지를 보며 마음 한구석에는 반항심이 자라니기도 하지만, 감히 대들지는 못했다.

 

점점 나이를 먹고 사회를 살아가며 많은 경험을 익힐수록, 아버지라는 규율의 이름이 조금씩 벗겨지면서 사람으로서 아버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살갑게 대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마치 거울을 가져다 놓은 것처럼,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똑 닮아있다. 마치 거꾸로 쓰면 똑같아지는 수동과 동수라는 이름처럼. 하지만 그들은 닮은 것이지, 똑같지는 않다. 거울 속 모습과 현실의 모습이 서로 좌우 대칭이듯, 그래서 결코 악수할 수 없듯 아버지와 아들은 겉보기엔 닮았으나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순 없다.

 

작품 내에서 동수는 반복적으로 배를 툭툭 두드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수동을 비롯해 우리는 그저 어떤 병 때문에 그럴 것이라 추측만 할 수 있을뿐, 정확히 어떤 이유로 어떤 증상이 발현되는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심지어 아버지가 쓰러지는 그 순간까지도 말이다.

 

알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고통은 어쩌면 ‘자신이 집에 있으면 다른 가족에게 피해가 갈지도 모른다는 마음’, 평생을 떠돌아다니며 자신이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심리적 고통을 대변하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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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동수는 마지막에 “무라”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아버지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둘의 여정, 곧 ‘떠돎’이 아닌 ‘여행’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돌아갈 안정적인 거처가 없이 홀로 떠돌아다니던 과거 동수의 이동과 달리 동수와 수동의 여행은 함께 기억의 흔적이 남은 장소를 찾아다니며 서로를 알아가는 행위였다. 곧 수동에게 있어 여행은 그동안 부재했던 아버지라는 거처를 만들어가는 행위인 것이다.


비록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하여 더 이상 살아계신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마지막 식사에서 수동은 옅은 미소를 띠며 열심히 밥을 먹었다. 아버지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그의 마음속에, 지치고 힘들 때 돌아갈 곳으로서 남게 되었다.

 

“무라”로 이어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앞으로 동수의 삶에서 큰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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