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초과한 것들의 기척- 신시아 오직 '숄'

글 입력 2023.12.3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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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은 말하기를 두렵게 하고, 또 어떤 글은 쓰기를 두렵게 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감지 않고 이들의 기척을 느끼고 그와 함께하는 것뿐이었다.

 

신시아 오직의 <숄>은 로사가 어린 딸 마그다를 안고 조카 스텔라와 함께 수용소로 끌려가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로사는 마그다를 숄로 감싸 숨기고 목숨을 간신히 이어간다. 마그다는 극심한 굶주림으로 나오지 않는 엄마의 젖 대신 숄을 빨아먹으며 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조카 스텔라는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숄을 가져가고 마그다는 죽음을 맞이한다.


<로사>는 햇볕에 튀겨질 정도로 더운 플로리다를 배경으로 한다.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로사와 스텔라는 미국으로 간다. 미국 생활에 적응하고 새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스텔라와 달리, 로사는 적응하지 못한다. 로사는 마그다가 살아있다고 믿으며 딸에게 편지를 쓴다.

 

과거와 단절하고 새 삶을 찾으려 하는 스텔라와 달리, 로사의 시간은 여전히 홀로코스트, 그때에 머물러 있다.

 

 

생존자. 무언가 참신하다. 그들이 인간을 말할 필요가 없다면 말이다. 과거엔 난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존재는 없다. 더 이상 난민은 없고 생존자만 있다. 번호와 다름없는 이름―평범한 무리와는 따로 셈해지는 존재. 팔에 찍힌 파란 숫자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들은 어쨌거나 당신을 가리켜 여자라고 하지 않는다. 생존자라 한다. 심지어 당신의 뼈가 흙먼지 속으로 녹아들 때도 여전히, 그들은 인간을 잊고 있을 것이다. 생존자와 생존자 그리고 생존자. 언제나, 언제까지나 생존자. 누가 그런 단어를 지어냈을까, 고통의 목구멍에 붙은 기생충 같은 단어를! (<로사>, 59쪽)

 

“아니, 아니, 아니에요.” 로사가 반박했다. “그건 불가능해요. 저는 스텔라의 고양이 이야기를 믿지 않아요. 그 이전은 꿈이에요. 그 이후는 농담이고. 오직 진행 중인 것만 있을 뿐이죠. 그리고 그걸 삶이라 부르는 건 거짓말이에요.” (<로사>,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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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아 오직의 <숄>과 <로사>는 침묵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었다. 나는 섣불리 감상을 말할 수 없었고, 그래서 신음하듯 침묵했으며 행간의 여백을 찾아가 잠시 숨을 골랐다.


나는 무력했다. 심지어 끔찍했다. 말하려고 입술을 달싹이고 펜대를 세우다가 그만 입술 살이 쩍 갈라지는 것에서 느낀 고통이 아파 상처를 핥았다.

 

내가 어떤 고통을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있다고, 공감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찌나 오만한 일인지. 나는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다녔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감지 않고 책장을 묵묵히 넘기는 일이었다. 나의 읽기가 무엇보다 능동적이길 바랄 뿐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입안이 깔깔하고 쌉싸래하며 약간은 달착지근했다. 그것은 숄의 감촉을 떠올리게 했다. 굶주린 마그다의 생명을 지탱해 줬지만, 결국 그 애를 죽게 만든 숄, 마법처럼 마그다를 되살려내는, 비명 지르는 로사의 입을 간신히 틀어막아준, 추위에 떠는 스텔라가 욕심낸, 바로 그 숄. 한 번도 입에 물어본 적 없는 그 리넨이.


소설이란 어쩌면 이 차원에서 언어로 포착되고 번역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존재를 이야기로 번역하는 것은 아닐까. 구체적으로 형상화할 수 없는 참혹한, 존재를 압살하는 그 폭력을 어떤 인물의 입과 삶을 통해 우리가 헤아릴 수 있도록. 그리하여 그들과 함께하도록. 이렇게 말해질 수밖에 없는 어떤 고통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그렇게 우리가 이 비극의 역사를 반성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색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 문학이길 바라며, 나는 이 글이 이를 해내고 있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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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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