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 [만화]

글 입력 2023.12.2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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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그냥 바라보면. 마음속에 있다는 걸.”


 

모 과자의 유명 광고 CM 송 가사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치 블루투스나 에어드랍처럼 뿅 하고 마음이 전달될 수 있다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의 80%는 사라질 것이다. 대놓고 열어 보여주기엔 낯간지럽지만 남의 것은 훤히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라, 그 사이에 적절히 균형을 맞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아슬한 줄타기를 늘 반복해야 하는 것이 로맨스 장르의 숙명이다. 적당히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드러내 독자들의 몰입을 유도해야 하지만 텍스트로 장황히 설명하는 서술은 로맨스 작품보다는 사랑을 연구한 보고서에 가까울 것이다. 로맨스는 장르 특성상, 촘촘히 짜인 스토리와 복선들을 추리해 냉철한 예측을 요구하기보다 캐릭터와 같이 설레고 두근거리기를 바란다. 아무래도 이성의 극명한 반대편에 서있는 ‘사랑’을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로맨스가 무엇보다 연출이 중요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텍스트로 모든 것을 표현해버리면 로맨스에서 느낄 수 있는 몰입과 상상의 매력을 저버리는 면이 있다. 그렇지만 어떨 때에는 그림보다 텍스트만 있는 편이 몰입감을 배가시키는 예도 있다. 대표적으로 토가시 요시히로 작가의 <헌터X헌터>에서 ‘메르엠’과 ‘코무기’의 마지막 장면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래서 로맨스 장르에서 그 적절한 정보량을 귀신같이 맞추는 작가의 작품들을 볼 때면 저항 없이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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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 작가도 그런 작가 중 한 명이다. 지금 네이버 웹툰에서 <같은 학교 친구>를 연재 중인데, 지금까지 본 웹툰 중 텍스트를 활용한 설명이 눈에 띄게 적은 웹툰이었다. 스토리는 정말 간단하다. 조용하고 연애에 별 관심 없던 여고생 ‘겨울’이와 잘생긴 짝꿍 ‘요한’이의 순수한 첫사랑 이야기다. 굵직한 에피소드나 갈등 없는 이 만화의 가장 큰 강점은 ‘감성’이다. 악역이나 갈등 하나 없는 거의 최초의 로맨스 웹툰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첫사랑, 몽글몽글하고 벅찬 감성의 그림체. 그리고 이 강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구구절절한 설명없이 컷을 잇는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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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버스 식으로 진행되는 이 웹툰은 어떨 땐 하나의 소단원 하나에 텍스트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기도 한다. 대신 그만큼 이들의 섬세한 표정이나 손짓, 눈빛의 변화를 포착하는 데에 더 많은 컷을 할애한다. 만화는 온전히 컷의 전개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는 예술이기에 컷은 연출의 기본이자 중요한 장치인데, <같은 학교 친구>는 컷의 배경이나 배치를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인물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예컨대, 손을 뻗는 경우 영상으로 찍는다면 아주 짧은 순간에 훅-하고 지나갈 찰나이지만, 이를 서너 개의 컷에 나눠 묘사함으로써 마치 그 장면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이는 감각을 유도하는 식이다. 혹은 휙휙 바뀌는 고등학생들의 마음을 정 반대의 색을 가진 배경으로 연출하는 방식도 많이 사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서술자의 지분이 매우 적은 것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다. 여타 흔한 만화처럼 전지적 서술자가 등장해 이들의 감정을 해석해주는 것이 아니라, 삐질삐질 흐르는 땀이나 속절없이 발개진 귀 등에서 이들의 마음을 한 겹씩 한 겹씩 찬찬히 보여준다. 분명 대사도 없고 그 흔한 내레이션이나 독백도 없는데 두근거리는 분위기가 전해진다. 로맨스 장르는 인물의 감정에 이입하고 나를 대입시킬 만큼 극에 몰입해야 한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인물을 이해하기까지, 그리고 좋아하기까지, 너무 좋아서 내가 극 중 인물인 것마냥 몰입해서 보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같은 학교 친구>는 분명한 강점이 있다. 캠코더로 녹화한 영상들을 들여다보며 천천히 음미하는 것처럼 즐길 수 있는 웹툰이다.

 

극중 겨울이는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사실을 배워간다. 친구들은 ‘좋아해’라는 말쯤은 해도 괜찮지 않냐며 닦달하고, 결국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으로 겨울이는 성장한다. 하지만 정작 유유 작가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 있음을 알려준다. 오히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느릿하지만 명백한 마음의 매력을 진득하게 풍긴다. 그러면 나는 ‘아, 이게 로맨스 작품의 묘미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 말하지 않고도 감정이 전해지는 그런 마법 같은 경험을 하고 싶다면 본 작품을 추천한다. 천천히 둘의 감정에 이입하다 보면 없던 학창시절의 첫 연애도 스멀스멀 떠오를 것이다.

 

 

[박상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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