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들의 '파란 요정' [영화]

사랑스러운 불완전함
글 입력 2023.12.2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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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 A.I.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23년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한 해가 끝나기 전 새해 계획을 세울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2023년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23년은 보다 많은 경험을 거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또 경험한 만큼 이전까지의 삶을 더 깊이 있게 되돌아볼 수 있었다.


그간 나는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더 오래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것이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시간이었다면 뿌듯했겠지만, 내 진심을 담아 움직인 것이 아닌 남의 눈치로 인해 행동한 순간이 더 많았었다. 주기 위한 것이 아닌 보이기 위한 것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2023년 하반기부터는 영화나 책과 같은 매체를 찾아서라도 보려 노력했다.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담기 위해서. 그리하여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껍데기가 아닌 알멩이를 보이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나가야 할지 고민했다. 이때 큰 힘이 되어준, 영화 A.I.에서 인상적으로 느꼈던 순간들을 나누어 본다.

 

 


부모를 짝사랑하는 자식            


 

"데이비드는 단 한 번도 생일 파티를 한 적이 없었어요. 태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죠." -영화 中


대부분의 매체는 부모의 사랑을 더 강조한다. 영화 ‘부산행’ 중 좀비 떼로부터 딸 수안을 지키려 고군분투한 서석우. 드라마 ‘펜트하우스’ 중 자식의 앞길을 위한 것이라면 그 어떠한 파국도 감수했던 오윤희. 최근 인상 깊게 본 일본 도쿄가스의 광고 ‘어머니의 성원’에서도 그러한 연출이 등장한다.

 

 

 

 

사회는 냉정해도 밥상에는 언제나 온기 있는 음식이 올라오는 것처럼, 매체 속 부모님의 사랑은 가히 절대적이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의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A.I.의 데이비드는 더욱 특이한 캐릭터로 남았다. 엄마인 모니카를 졸졸 따라다니고, 원래 있던 자식이었던 마틴을 질투하는 과정에서 한 행동(엄마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자르려고 했던 것)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불쾌한 골짜기 뒤 데이비드의 진정한 소망을 알고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의 행동은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라는, 자식이라면 응당 받아야 할 것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A.I.는 동화 ‘피노키오’의 패러디이기도 하다. 데이비드와 피노키오의 소원은 ‘진짜 남자아이가 되는 것’. 여기서 딱딱한 나무나 금속이 아닌, 인간의 몸을 가지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서 사랑받는 것이다.


피노키오의 제작자, 제페토 할아버지는 피노키오가 목각인형에 불과했을 때도 정성을 담아 보살폈다. 하지만 데이비드의 곁에는 자신을 두려워하는 엄마와, 자신을 로봇으로만 취급하는 아빠만이 있을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마틴이 병원에서 돌아오자 데이비드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기계로서는 사용 가치가 없어진 것이고, 인간으로서는 존재 가치가 사라진 것이다.

 

 


바보 같은 사랑, 바보 같은 사람


 

"파란 요정을 찾으면 집에 갈 수 있을 거예요. 파란 요정이 나를 진짜 소년으로 만들어 주면, 엄마는 나를 사랑할 거예요." - 영화 中


결국 데이비드는 남편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모니카에게서 버림받는다. 엄마에게서 버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는 바로 그 엄마가 읽어준 피노키오를 떠올린다. 그리고 피노키오를 사람으로 만들어 준 파랑 요정을 만나 자신도 인간 소년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파랑 요정의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인간의 이익을 중시해 만들어진 ‘기술’과 대비되는 요소다. 그리고 이 세계관을 움직이는 것은 단연 후자인 만큼, 데이비드의 소원은 처음부터 가망이 없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더 안타까운 것은 데이비드의 사랑이 보답받지 못할 사랑이라는 것이었다. 데이비드는 그 개인으로 존재한 적 없이 그저 다른 누군가를 위해 존재했다. 헨리는 그를 자기 아들의 대체품으로서 원했으며, 데이비드가 모니카를 엄마로서 사랑했던 이유는 그가 애초에 그렇게 프로그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하지도, 사랑받지도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품은 소원은 그를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존재로 보이게 해줬다. 자신을 버린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데이비드의 소원은 답답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꼭 옳은 사랑만을 하지 않는다. 마음의 크기가 한쪽으로 기울어지기도 하고, 놓아야 할 순간임에도 놓지 못하는 이도 분명 있다. 논리를 따라야 할 존재가 비현실적인 꿈을 꾸게 된 순간, 과연 누가 데이비드를 인간답지 않은 존재라 규정할 수 있을까.

 

 

 

사랑스러운 불완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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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요정은 인간의 가장 큰 결점을 상징하지. 불가능을 갈망하며 꿈을 좇는 것과 같은 일들 말이야." - 영화 中

 

영화 후반에는, 데이비드가 행복해질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데이비드를 버린 헨리와 모니카가 다시 와서 그를 데려가기를, 혹은 중반에 그와 동행한 로봇 지골로 조가 친구로 남아주기를 바랬다.


데이비드가 맞이한 결말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했다. 데이비드는 침몰한 놀이동산의 일부인 ‘파란 요정’과 만나지만, 몇 번이고 소원을 빌기만 하다 작동 중지 상태로 영겁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대신 먼 미래 외계인들의 동정을 사, 그들의 기억 조작 능력을 통해 엄마와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를 누린다.


어쨌거나 데이비드의 여정은 진실한 것이었다. 가족으로부터는 인간답지 않은 존재, 자신을 만든 제작자로부터는 로봇답지 않은 존재로 인식되어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지만 사랑 받고 싶다는 목표에만은 충실했다. 단 하루였다고는 해도, 그랬기에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가 보여준 ‘사랑스러운 불완전함’을 통해, 앞 모를 2024년을 대비할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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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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