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현실과 이상, 그 간극 속 우리들 [도서/문학]

조르주 페렉, <사물들>
글 입력 2023.12.1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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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부자가 되고 싶었다. 자신들이 부자일 줄 안다고 믿었다. 그들은 부유한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바라보고, 웃을 줄 알았을 것이다. 그들은 요령과 그에 필요한 신중함과 가졌을 것이다. 자신의 부를 잊고 과시하지 않을 줄도 알았을 것이다. 으스대지도 않았을 것이다. 풍요로움을 호흡했을 것이다. 그들의 즐거움은 강렬했을 것이다. 걷기를 좋아하고, 빈둥거리고, 고르며 음미하기를 즐겼을 것이다. 삶을 누렸을 것이다. 삶은 하나의 예술이었을 것이다.] - <사물들>, 조르주 페렉, 22 page

 

[나이 스물에, 삶이란 감춰진 행복들의 총합, 삶이 허락하는 한끝 없이 계속될 성취라는 것을 보았을 때, 아니 봤다고 생각했을 때, 자신들에게 기다릴 힘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도달된 상태만을 원했다. ... 그들은 삶을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둘러싼 사방에서 삶을 누리는 것과 소유하는 것을 혼동했다. 그들은 시간의 여유를 갖고 싶고, 세상과 거리를 두고 싶어 했지만, 그들에게 무엇 하나 가져다 조지 않는 세월은 마냥 흐르기만 했다.] - <사물들>, 조르주 페렉, 65 page

 

[그들은 돈을 경멸하지 않았다. 오히려 돈을 지나치게 좋아했다. 견고함과 확실함, 미래로 나아가는 분명한 길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영속성을 알리는 모든 신호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들은 부자이고 싶었다. 여전히 부유하게 되어가는 과정을 거부하고 있다면, 그것은 월급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상상과 문화적 수준에 걸맞으려면 백만장자는 되어야 했다.] - <사물들>, 조르주 페렉, 83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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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부자로 살고 싶은 젊은 커플이 있다. 제롬은 스물넷, 실비는 스물둘. 그들은 파리에 살면서 사회심리조사원으로 일한다. 전문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시간 대비 보수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여유 시간이 많다.

 

그들은 취향을 꼭 담은 아름답고 견고한 물건들에 둘러싸여 살기를 원한다. 사물을 소유했다는 여유, 안정감, 안락함을 갈망한다. 그들은 아직 젊고, 함께 밤새도록 웃고 떠들면서 포도주를 마실 친구들이 있으며, 책, 영화, 휴가, 자유, 미래, 희망, 정치, 휴가, 음식, 술에 대해 열정적으로 토론한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인생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얕은 행복감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순간 쉽게 사라져버린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곧 다가올 미래. 서른 살이 넘어도 지금처럼 안정성과 높은 사회적 지위와는 거리가 먼 임시직을 하고 있다면? 가지고 싶은 물건은 늘어만 가고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이다. 친구들은 저마다 높은 보수와 지위를 찾아 떠나가고 그들의 불안감을 더 커져만 간다.

 

관리자로 승진을 하거나 이직을 하면 돈은 더 많이 벌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자유시간이 줄어들 것이다. 마침내 어느 정도의 부를 이뤘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나이가 들었거나 찬탄해 마지않은 청춘이 이미 지나가버렸겠지. 그들이 원하는 건 사물뿐만이 아니라 사물을 소유한 그 삶 자체이다. 젊고 탄탄한 육체와 그 육체로 즐길 수 있는 유희를 원한다. 돈과 자유 무엇도 희생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막연히 다른 것,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꿈꾸다 아프리카 튀니지 스팍스로 떠난다. 황량한 스팍스는 파리에서 넘쳐났던 욕망도 사라지게 하는 곳이다. 가지고 싶은 것도 욕망하는 것도 없는 세계. 기쁨도 슬픔도 권태도 없는 세계.

 

하지만 그곳에서도 그들은 행복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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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늘 욕망하는 삶을 긍정하고 부추긴다. 소비는 곧 미덕이요 행복은 값비싼 사물과 함께여야 가능하다고 수많은 광고가 소리치는 것만 같다. SNS 전시된 사진들만 봐도 행복한 사람들의 연말 파티에는 나무 향이 나는 원목 테이블, 부드러운 내추럴 와인, 신선한 해산물 요리, 고급스러운 디자인 장식 같은 것들이 으레 필요한 듯 보이니까.

 

금수저가 아닌 이상 평범한 우리들은 욕망을 충족하고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자유를 내려놓고 시간과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기에 아침마다 침대에 붙어있고 싶은 마음을 접고 일어나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욱여넣는다. 그렇다고 만족할 만한 부를 축적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 욕망을 또 다른 욕망을 불러오기에 미친 듯이 욕망을 쫓는 삶에도 순간적인 충족감만 있을 뿐 끝내 충족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모든 욕망을 초월하고 내려놓은 부처 같은 삶도 우리 같은 중생들에게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

 

부와 자유를 모두 가지고 싶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욕망을 버릴 수도 없고 충족할 수도 없는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질문은 60년대 파리의 제롬과 실비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사물들>은 자본주의를 비판하지도 부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은 꾸짖는 책도 아니다. 그저 욕망과 현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명확한 답은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욕망을 들여다보고 또 내려놓은 그 과정이 삶 그 자체다.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영원히 그 중간 어디쯤에 걸터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최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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