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치타, 태양을 삼키다 [영화]

다큐멘터리, 우리의 우주를 감상하고
글 입력 2023.12.09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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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밥이란 그냥 밥일 뿐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움이 옅어졌고, 그것은 무언가를 먹을 때에도 해당했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나는 매운 걸 못 먹었다. 김치는 항상 씻어 먹어야 했고, 떡볶이는 입에도 못 댔다. 꼭 먹어야 할 때는 떡 한 개에 물 한 컵을 들이붓다시피 했다. 그러다 매운맛에 적응하게 된 순간, 물 없이 온전하게 먹는 떡볶이의 맛은 충격적이었다.


또 나는 체리를 과일 통조림 속 체리로 처음 접했는데, 가공된 맛 때문에 맛없는 과일로 알고 있다가 생물 체리를 먹고 나서야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그렇게 웬만한 먹을 건 다 먹어본 채로, 성인이 된 나는 먹는다는 행위에 설렘을 느끼지 못했다. 뭘 먹고 싶냐는 물음을 들을 때마다 아무거나라는 대답이 목 끝까지 올라왔고, 가끔은 뭔가를 골고루 챙겨 먹어야 한다는 것에 번거로움마저 느꼈다.

              

그랬던 나에게 먹는다는 행위의 고귀함을 알려준 것은 신상 디저트를 알리는 인스타그램 공고도, 먹방 전문 유튜버도 아닌, 세렝게티를 누비는 치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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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집 밖에 나가면 공짜로 밥 차려주는 사람 한 명 없다.’이다. 해당 논리가 바다 건너 세렝게티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을 보며, 새삼 엄마가 얼마나 현명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 우리의 우주 중 에피소드 ‘별빛을 따라’에서, 제작진들은 먹이를 얻기 위한 어미 치타 와치니의 분투기를 그려냈다.

  

물론 맹수인 치타는 먹이사슬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 기본적으로 치타는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갖췄으며, 달리기 또한 빠르다. 그러나 강한 능력을 갖췄다는 것이 성공을 약속하지는 않았다.


대표적으로 치타의 주 사냥감인 가젤은 치타만큼 빨리 뛸 수 있다. 치타는 가젤을 잡고 싶으면 반나절 분의 에너지를 써야 하며, 거기다 가젤이 잡힌다는 보장도 없다. 움직이지 않는 이상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는 것이다.


결국, 치타는 허탕을 쳤다. 지는 해를 등지고 망연히 서 있는 치타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 부분에서 울컥했다.

 

치타가 종일 굶었다는 사실이나, 먹여 살려야 할 새끼가 있다는 것보다 그 장면 자체가 고독하게 느껴졌다. 단단히 굳은 것을 넘어 쩍쩍 갈라진 땅 위 자리한 치타가, 그 순간 너무나도 작아 보였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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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렝게티의 태양은 무자비하다. 요즘 우리나라만 해도 여름에는 에어컨 없이는 맨정신으로 더위를 날 수 없을 정도다. 하물며 아프리카는 어떻겠는가.


그러나 태양은 한편으로는 생명의 원천이다. 우주는 거대한 에너지인 별이고, 별인 태양 역시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또한 태양과 우리의 지구 사이에는 무지막지한 거리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햇빛은 지구에 도달하며, 모든 것은 태양의 에너지로 이어져 있었다.

 

치타 가족이 희망을 품게 된 순간은 풀이 햇빛을 받아 자라고, 그 풀을 찾아 누우 떼가 몰려들었을 때였다.

 

40시간 이상의 굶주림 끝에, 와치니는 드디어 누우를 사냥하는 데 성공한다. 와치니가 사냥감의 목덜미를 물어뜯은 순간, 그것의 영양분은 생명줄 이상의 존재감이 되어 와치니 안에 자리 잡는다.

 

다큐멘터리에서는 그것을 ‘우리 우주의 에너지를 곧장 와치니의 세포에 풀어놓습니다.’ 라고 표현한다. 우주의 에너지를 일식으로 삼는 존재라면, 그 역시 우주적인 존재로 보아도 과장은 아니지 않을까 싶은 순간이었다.


제 일을, 근황을 이야기할 때, 흔히 자조적인 투로 밥 벌어 먹고산다며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와치니의 이야기는 밥을 먹는 행위 자체가 숭고함을 알렸다.

 

자신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은 우주를 먹는 것과 같고, 밥을 먹는 순간 우리는 모두 이어져 있다. 내가 밥을 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지쳐 있는 순간에도, 당신이 우주적인 존재임을 인지하며 당당하게 한 입 떠먹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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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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