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딸기 케이크의 딸기는 언제 먹을까 [사람]

글 입력 2023.12.08 14:3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strawberry-cake-5835712_1280.jpg

 

 

어떤 친구를 만나던 우리의 하루 일정은 어느 정도는 늘 비슷한 것 같다. 만나서 밥을 먹고, 배가 부르지만,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고 껄껄 웃으며 곧장 카페로 이동한다. 적당히 기분 좋은 달콤한 디저트와, 같이 먹을 깔끔한 음료가 주는 행복감에 값을 치르고, 그렇게 식당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늘은 조각 케이크가 유명한 한 카페에 다다랐다. “우리 케이크 한 조각 시킬 거야?”라고 묻는 친구에게 “무슨 소리야, 일 인당 케이크 하나지”라고 그날따라 허세를 부려본다. 열심히 케이크를 먹고 있는데, 친구가 묻는다. “너 딸기 안 먹으면 내가 먹어도 돼?”

 

케이크 사이사이 얇게 썰린 딸기가 듬뿍 들어있는 조각 케이크였는데, 큼지막한 딸기가 상단부에 먹음직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나중에 먹으려고 아껴둔 거지.” 알고 보니 친구는 음식을 먹을 때 제일 맛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가장 먼저 먹는다고 했다. 나는 반대로 가장 맛있는 부분은 마지막에 먹기 위해 남겨 두는 편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입안에서 빨리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쉬워서 미루고 미루다, 식음의 끝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맛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뒷받침하는 심리학 이론이 하나 있는데, 바로 피크 엔드 이론이다. 어떤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을 느꼈을 때와, 경험의 종료 시점에서 느낀 감정이 전체 경험의 평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이론이다.

 

한 실험에서 첫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에겐 60초 동안 차가운 얼음물에 손을 담그고 있도록 하고, 또 다른 그룹의 참가자들에겐 동일한 조건의 실험 후 추가로 30초 동안 손을 담그고 있도록 했다. 대신 두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에겐 별도의 안내 없이 추가시간 동안 물의 온도를 일 도 더 높여 그들의 고통을 완화했다. 몇 분 후 실험 참가자들에게 전반적 경험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놀랍게도, 두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은 첫 번째 그룹에 비해 그 경험을 덜 고통스러운 것으로 평가했다. 추가적인 30초 외에는 첫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과 같은 시간, 같은 고통을 느꼈으나, 이들은 완화된 조건이었을지언정 30초 동안 추가적인 고통을 견뎠다. 그러나 이들은 첫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보다 전반적인 고통의 정도를 더 낮게 평가한 것이다.  고통의 지속시간은 이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경험이 끝나는 시점에서 겪은 완화된 고통이 이들의 머릿속에 남은 고통의 총량이 되었다.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읽으며 우리들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와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벗 삼이 한 수저씩 밥을 뜨다 보면 문득 기분이 풀어지며, 오늘 하루 그래도 나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왔는데, 설거지하다가 아끼던 접시를 깨버리면 좋았던 기분은 수직으로 하락하여 잠드는 순간까지 괜스레 마음이 울적하기도 하다.

 

사실 딸기 케이크의 크고 예쁜 딸기의 맛을 나는 안다. 하지만, 아는 맛이 더 무서운 법이다. 케이크 사이사이에도 얇은 딸기가 들어있긴 하지만, 큼지막한 딸기 한 입을 베어 물 때의 행복감은 또 다르다. 빨갛고 예쁜 딸기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을 때 빵빵하게 터지는 과즙, 달콤함, 아주 물컹하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식감, 눈을 찡긋하게 만드는 약간의 새콤함을 혀가 기억하고, 머리가 기억한다.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기에, 마지막을 장식할 그 맛을 상상하며 나는 더욱 설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주말을 기다리는 금요일의 사람들, 퇴근 후의 치킨과 맥주를 상상하는 직장인들처럼 말이다.

 

딸기 케이크의 딸기를 언제 먹는다고 문제가 되진 않지만, 만약 내 앞에 수프와 샐러드가 놓여있고, 수프를 아껴먹기 위해 샐러드 접시를 먼저 비운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따뜻한 수프가 식어버린다는 변수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마저도 식은 수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기에 사실 무엇을 먼저 먹느냐에 대한 해답은 정해진 게 없다.

 

사람마다 때와 성향에 따라 그들의 케이크에서 딸기를 먹는 시기가 다르겠지만, 결국에 딸기를 맛보고 행복함을 느낀다는 것은 같다. 그 행복함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꼭꼭 씹어 체하지 않게 천천히 음미하면 좋겠다. 꽤 정확한 우리의 배꼽시계는 우리가 허기진 순간에 또 다른 행복으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원정민 명함.jpg

 

 

[원정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