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빼앗긴 '서울의 봄' [영화]

다시 찾은 봄날에, 누가 인간으로 남았나
글 입력 2023.12.0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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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쿠데타로 일어난 12·12 군사반란을 배경으로 한 각색물이다. 많은 사람이 그랬듯 나 역시도 영화가 끝나고 한동안 불쾌감과 분노가 먼저 올라왔다.

 

다만 처음의 감정이 조금 꺼진 뒤 다시 살펴보니, 이 영화는 단순한 분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그것은 우선 이 것이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라는 하나의 예술 장르이기 때문이며, 그보다는 '전두광'이 전두환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당연하게도, 실존 인물 전두환은 첨언의 여지가 없는 완성된 '악인'이다.

 

'작품' 내의 가공인물 전두광을 '전두광'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영화의 감상평은 그저 전두환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실존인물 전두환과 등장인물 '전두광'을 분리해서 봐야만 영화로서의 의미를 찾아내기 쉬우라는 것이 내 의견이다.

 

감독은 가명을 통해 단순히 전두환과 신군부의 악행을 고발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예술적으로 승화했다고 해석한다. 사실 그럴 만도 하다. 전두환이 용서받지 못할 악인인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공공연하며 명백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내가 <서울의 봄>을 보고 느낀 점들이 있어서 몇 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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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강한 힘으로 한국을 휘어잡고 있던 박 대통령의 피살 소식과 함께 시작된다. 보안사령관 전두광은 혼란스러운 정국을 틈타 반란을 일으킨다. 그는 반란에 동조한 여러 장군들에게의 보상을 다짐하면서도, 그들을 전부 '떡고물이나 얻어먹으려 모인 사람들'이라 깎아내린다.

 

"인간이 명령 내리는 걸 좋아하는 것 같제? 안 있나, 인간은 강력한 누군가가 자기를 리드해주길 바란다니까." - 전두광

 

전두광은 무엇을 원했는가? 그는 박 대통령 시기부터 쿠데타의 기회만 엿보다, 난세를 틈타 권력을 쟁취하고픈 야망 꾼이었나? 그런 사람이었다면 같은 군부 출신의 전 대통령이 생전 그를 견제하지 않았을 리 없다. 전두광의 방에 걸린 박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 나는 이 사람이, '강력한 리더'를 누구보다 동경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눈에 비친 지금의 대통령을 포함한 수뇌부와 군부는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휘하에 납득시킬 수 있는 '리더'가 아니다. 급히 선출되어 관례와 관습에만 의지하는 행정부와 군사 반란 상황에도 자신의 권력 유지와 허례허식에 더욱 집착하는 군 수뇌부는 모두 그의 기준에 따르면 제대로 된 리더가 아니다. 그것이 그의 출발점이다.

 

변수라면 여태껏 신경 쓰지 않았던 이태신의 존재다. 군 내 정치에 신경 쓰지 않던 이태신은 그에게 있어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태신은 누구보다 위로는 책임을 다하고 아래로는 휘하의 사람들에게 지도력을 행사하고 있는, 그보다도 한 때의 이득이 아닌 더 큰 것을 바라고 움직일 수 있는 '리더'였다. 

 

작중 전두광이 그것을 인지하고 나서부터 내내 영화는 전두광과 이태신의 모든 것을 '대비'를 통해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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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에서 자신의 가슴에 부하의 총을 겨누는 배짱을 부리는 사람은 단 세명이다. 첫 번째는 전두광이다. 전두광은 자신의 명령에 미적거리는 도희철에게 총의 방아쇠를 쥐여주며 자신을 따르지 못하겠거든 쏘라고 강압한다.

 

전두광이 자신을 부려먹는다며 투덜거리던 그 장군은 2공수에 들어가, 똑같이 주저하는 부하에게 방아쇠를 쥐여주고 악에 받쳐 전두광과 똑같은 대사를 뱉는다. 세 번째는 이태신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병력을 모아 승산 없는 싸움을 시작하려는 이태신을 막아서는 부관에게 이태신은 쏘겠다고 판단했다면 쏘라고 말한다.

 

도희철부터 살펴보자. 다소 유머러스하게 묘사된 그의 '전두광 따라하기'는 늘 '통솔하는 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리더'로 인식하고 있던 그가 전두광의 명령을 받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면서도 그를 흉내 내는 모습을 잘 나타냈다. 이미 반란 본부를 떠나 본인을 따르는 부하들이 있는 본인의 장소로 왔음에도, 내심 전두광이라는 강한 리더의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하고 오히려 그 리더십을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역시도 자리가 주어진 사람일 뿐, 계급상 장(將)이되, 장(長)이 붙을 여지가 없는, 전형적인 따를 사람이 필요한 나약한 인간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같은 구도에서 전혀 다르게 드러나는, 작품을 내내 관통하는 전두광과 이태신의 구도 차이 역시도 인상 깊었다.

 

전두광은 벙커 쪽에 서서 도희철을 작전으로 내몰며 그를 강압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딜로 사용한다. 도희철은 전두광의 기세에 압도당해 스스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당연하게도 쏘지 못한다. 이태신의 부관 강동찬은 자신의 의지로 존경하는 상관인 이태신을 겨누는 '불복종'을 행하고, 결국 그 뜻을 받아들여 스스로 총을 내린다. 이태신은 문 쪽에 서서 부관을 쳐다보고, 그 문밖에는 결사전을 위해 사열해 놓은 병력이 있다.

 

부하가 총을 쏘지 않는다면, 전두광은 벙커 안으로 들어간다. 문밖으로 나가는 이태신에게는 죽음으로 향하는 책임을 건 마지막 싸움만이 남아 있다.

 

 

결사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에게 뜻밖의 울림을 준 것은 조민범 병장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데, 육군 본부와 수뇌부를 배경으로 진행되기에 장성들이 난무하는 판에 유일한 '병장'은 오히려 공감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우리 주변에 장성은 없어도, 병장은 많기 때문이다. 이 어리고 약할, 불과 몇 년 전까지 대학에서 웃고 떠들고, 때론 사소한 잘못도 저질렀을지 모르는 조민범 병장은 자신의 책임을 위해 벙커 앞에서 용기를 낸다.

 

상황도 방식도 다르지만, 영화 <타이타닉>의 밴드가 떠올랐다. 죽음이 인접한 상황에서도 승객들이 안심하게 하기 위해 인생의 마지막 악장을 묵묵히 연주하는 그들의 모습이 혼자 힘으로 벙커를 막아서는 조민범 병장과 바리케이트를 넘는 이태신에게서 느껴졌다.

 

다시, 결과를 바꾸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용기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물질적 의미나 성과 따위로 따질 수 없는 것이오, 내가 세상에 나와 맡은 역할에 대해 가지는 마지막 책임감이다. 조민범 병장은 공포에 떨며 벙커를 막아선다. 온 몸을 던져내, 마치 오체투지의 자세로 부조리한 세상과 날 억압하는 시대에 내가 여기에 존재함을 증명한 것이다.

 

인간 본성의 선악에 대해서는 유구한 논쟁이 있었다. 물론 극한의 상황 앞에서 인간의 악성은 너무나도 쉽게 드러난다. 하지만 오히려 극한의 상황에서도 초인적으로 발휘되는 선의와 용기는, 그 이후의 세대에게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감동과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 인간성의 저력으로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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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위치에서 이태신은 결사전을 준비한다. 구국 영웅 이순신 동상의 등을 보며 서울로 진입한 전두광과 반대로, 이태신은 이순신을 정면에서 한번 올려다본다. 무엇을 기도했을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직위를 해제당하고, 군사를 잃고. 몸뚱이와 신념 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태신은 철조망과 바리케이드를 맨몸으로 넘어간다. 카메라는 이태신과 전두광 사이의 높고 많은 철조망을 한참 동안 롱 쇼트로 비춘다.

 

국방부 장관의 직위해제로 이미 모든 명분을 잃은 이태신에게, 전두광은 이상하게도 보는 눈과 명분을 이유로 발포하지도 않은 채로 한참을 노려본다. 전두광은 본인이 유일하게 인정한, 본인과 같은 격의 '인간'인 이태신과의 결착을 차분히 기다린다.

 

"너는 대한민국 국민으로도, 인간으로도 자격이 없어." - 이태신

 

이태신은 이 대사를 통해, 조용히 선언한다. 반란을 막지 못한 자신의 파멸과, 인간으로서 전두광의 패배를.

  

이태신의 체포와 함께, 전두광은 자신의 유일한 적과 함께 마지막 인간성이 사라짐을 인지한다. 자신은 국방의 책임을 잊은 채 동료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으며, 단지 전투에 이겼으되 군인으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실패했음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런 불안감은 표정과 말투에서 나타난다. 이태신과의 전략적 충돌과 대치 상황을 여유로 일관하던 그는, 상황이 종료됨을 알고 웃는 부하들에게 치밀어오르는 혐오감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들어간다.

 

"웃지 마라!" - 전두광

 

문득 둘러본 좌중엔 자신이나 자신의 우상, 혹은 이태신과 같은 '인간'이 없었다. 일전에 그가 말한 대로 조그마한 떡고물이나 얻어먹고 싶어하는 사람들. 남이 자기 삶을 이끌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하류 인생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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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직 친구 맞제?" - 노태건

 

성공의 기쁨에 겨워, 장난식으로 우리가 친구가 맞는지 물어보는 노태건의 대사 이후 전두광은 유례 없이 표정이 굳어진다. 그가 본 노태건 역시 여타 장군과 다를 바가 없다.

 

자신이 확인한 첫 번째 '인간'의 죽음으로 모든 일이 시작되었으며 두 번째 인간은, 자 손으로 방금 그 끝을 확인하고 오는 길이다. 이제 전두광에게는 마지막 인간, 아니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아무튼 그것만이 남았다. 이젠 그것을 죽이러 갈 차례였다.

 

"어디 가노?" - 노태건

 

반란 와중에 하나회의 다른 장성들도 전두광의 의중을 모르고, 늘 '무슨 작전이라도 내보라'는 식으로 일갈할 때도 오랜 친구 노태건만은 전두광의 뜻을 이해했다. 모든 작전이 성공한 뒤 단지 화장실 가는 친구를 보내는 것치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노태건의 입에서는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노태건 쪽에는 빛이 비춘다. 완전한 어둠이 있는 화장실로 전두광은 비틀대며 걸어들어간다. 화면은 노태건의 시선을 따라 어둠으로 향하는 전두광을 비춘다.

 

그곳에서 그는 웃는다. 울음에 가까울 정도로 웃는다.

 

벽을 치며 폭소/오열하는 그와 감옥의 벽을 치는 이태신이 오버랩된다. '죄인' 이태신에게 속옷까지 내리라는 명령을 하자마자 전두광은 소변기 앞에서 자신의 속옷을 내린다. 고문당하는 이태신과 누군가 사지를 고통스럽게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양 기괴하게 뒤틀린 춤을 추는 전두광이 함께 보다. 의연하게 일관하는 이태신과 비교가 될 정도로 과하게, 전두광은 눈물 없는 울음을 지으며 웃는다.

  

그는 문득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다시 본다. 거울 속은 온통 핏빛이다. 하루 전만 해도 분명 나름의 대의랍시고 주장했던 그릇이 있었고 야망 넘치는 생도였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하룻밤 사이의 짧은 전투에서 그는 이태신을 상대로 압승을 거두었으나, 삶의 방식을 겨루는 싸움에서 이태신에게 완패했음을 인정한다.

  

그는 화장실에서 마지막 남은 인간성마저 토해내고, 진정한 악인으로서 각성하게 된다.

  

*

  

인생이라는 것은 때론 멀리 있는 목적지를 향해 눈을 감고 걸어가는 눈길과도 같아서 나는 늘 곧게 살았다고 생각해도 잠시 방심하는 순간 아예 굽이진 길로 들어와 버리곤 한다. 잠깐이 힘들다고, 대의를 위한다고 사소한 악의와 타협하는 순간 우리는 쉽사리 악이 되어버린다.

 

많은 것을 생각하고, 또 많이 분노할 수 있게 해준 영화였다. 대체 누군가의 욕심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나? 이 땅에 이런 비극이 다시 없길 바란다. 전두광과 같은 사람들에게도, 악의와 타협하지 않을 수 있는, 그를 빛으로 돌려세워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 수 있게 하는 구원 같은 시간이 선물처럼 기다리길 기도해본다.

 

 

[김우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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