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의 영원한 친구 해피 스마일 베어 [도서/문학]

글 입력 2023.12.04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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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베어는 죽지 않아>는 자본주의와 계층주의로 점철된 현대사회를 비판한다.

 

어른들의 자본과 욕망으로 쌓아 올린 가상의 도시 야무시에는 사람을 묻어서 만들어진 아파트가 존재하며, 온갖 성매매와 범법 행위가 난무한다. 이들은 돈을 위해 저수지에 사람을 묻고, 강제적인 성매매를 통해 금품을 갈취하기도 한다. 정·재계가 모여 사는 아파트인 '씨더뷰파크'에서는 독이 든 떡을 이웃에게 돌린 일명 '묻지마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야무시장인 한정혁의 가정부로 활동했던 화영의 어머니 또한 이 사건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용의자는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하며 예외가 없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다'며 진술했다. 다만, 정황상 의아한 점이 하나 있었을 뿐. 황화영의 기억에 따르면 어머니는 한평생 살면서 떡을 입에 댄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지 않으며, 진실을 파헤치려 시도하지 않았다. 이처럼, 사회적 약자보다는 자신의 안위가 우선인 사회에서는 약자의 희생이 당연시되고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진실을 껴안은 채 외로이 죽어가는 이들을 두고 어떻게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하다'를 논할 수 있을까.


하루아침에 어머니를 잃은 소녀 화영은 야무시를 대표하는 야무시장이자, 어머니의 고용인이었던 한정혁을 만나려 고군분투한다. 그녀는 사건의 배후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을 것이며, 한정혁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일 것이라 믿어 그를 찾아 헤맨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나이의 소녀가 분노와 악의로 가득 차 복수를 원동력으로 삼아 맹목적인 삶을 살아낸다.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 화영은 테디베어를 만나게 된다. 일명 '스마일 해피 베어'라고 불리는 이 곰 인형은 화영의 학창 시절을 함께 한 친구로서, 새로운 인연을 찾도록 도와준 소중한 존재기도 하다. 곰 인형이 눈에 밟혀 차마 외면할 수 없던 화영은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인형을 데리고 숙소로 돌아간다. 마음에 걸려 주워 온 인형이 움직이고, 걷고, 뛰고, 대화까지 할 줄은 모른 채로 말이다.

 

사실, 화영과 함께 절체절명의 순간을 함께 해온 이 스마일 해피 베어의 솜뭉치 안에는 한 소년의 영혼이 들어있다. 바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잃고 야무시장 한정혁의 아들로 입양된 한도하. 한정혁의 친아들인 한도현과 늘 비교되며 가정폭력 속에서 살아왔던 그는 부모도 잃고, 육체도 잃어 삶의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방황하던 중 화영을 만나게 된다.

 

모든 것이 아직은 정상적이었던 과거, 학교 옥상에서 잠시나마 함께 시간을 보냈던 친구 화영. 곰 인형에 단추 눈을 정성스럽게 달아주던 그녀의 모습을 도하는 아직 기억한다. 그러나 자신의 핏줄인 한정혁이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혼란스러워 한다. 곰 인형이 되어 화영과 함께하지만, 마음속에 남은 죄책감 때문에 존재조차 밝히지 못한다. 앞을 한 치 알 수 없는 화영과 도하의 복수극 속에서, 서로에 대한 감정은 복잡해져만 간다.

 

복잡한 관계와 전개 속에서 진행되는 두 소년·소녀의 복수극은 불확실하며 의심투성이인 세상 속에서 서로의 힘이 되어주며 희망을 얻는 과정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로 이루어진 세상 속, 차별받으며 살아왔던 화영의 곁에서 소리 없이 힘이 되어주었던 스마일 베어처럼. 또, 고작 문제 하나에도 가정 폭력을 당해야만 했던 도하에 구원을 안겨주었던 스마일 베어처럼. 그들이 곰 인형에서 위안과 희망을 얻었던 것처럼, 소설 내내 도하와 화영은 서로에게 용기와 의지를 심어준다. 거짓된 타협 대신 진실한 도전을 강행하며 저열하고 무자비한 세상에 저항한다.

 

충격적인 점은 야무시 그린동로 13. 야무시 최고의 고급 아파트이자 묻지마 사건이 일어난 씨더뷰파크의 원래 이름이 그린동이 아닌 육사동이라는 사실이다. 이름인즉, 고기 육(肉)에 버릴 사(舍)로, 과거에 역병에 걸린 사람들을 생매장하는 곳이었다.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될 이 구역에서 재개발이 확정되면서, 한정혁은 행정구역명을 그린동로로 바꾸고 그 위에 휘황찬란한 아파트를 세운다.


한정혁은 죽어간 이들에 대한 애도 없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죽어간 자들의 무덤을 썩은 자본으로 메꾼다. 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들의 안위에만 급급한 현대사회와 닮아있다.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으나, 지금 생각해 보아도 비슷한 사건들을 몇몇 떠올려볼 수 있다.


물론, 소설 속 죽은 자들의 악의가 만들어낸 결과는 끔찍하다. 그러나 더욱 끔찍한 것은 온갖 비도덕적인 행위들을 자행하는 이들의 자본주의적 사고방식과 우월의식이다. 그래서,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는 권선징악이 무엇인지를 톡톡히 보여주고자 한다. 반인륜적 행위를 감행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인간의 추악하기 그지없는 말로를 뼈저리게 각인시킨다.

 

후회해 본 사람은 후회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 대신 되돌리려 한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를 붙잡고 끊임없이 ... ... 손을 댈수록 더 망가진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돌이킬 수 없음을 알면서도 계속 손을 대면 결과물은 망가져만 간다. 그러다 언젠가는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린 자신마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 전에 멈추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영과 도하처럼, 망가진 세상을 되돌려 놓겠다는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이 도서를 읽는 모두가 잠시나마 약자의 시선에 서서, 무심한 세상을 규탄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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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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