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쓰레기는 솔직하다 [영화]

글 입력 2023.11.2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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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하면 떠오르는 것은?


지저분함, 쓸모없음, 오염 등. 마인드맵을 펼치면 이런 부정적인 단어들로 나열될 주제가 바로 쓰레기이다. 비속어의 의미로도 사용되곤 하는 쓰레기이지만, 누군가는 이러한 마인드맵에 ‘솔직함’과 ‘탐색’을 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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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정 감독의 영화 <너를 줍다>는 인간에 대한 불신을 쓰레기봉투를 줍는 것으로 위안하는 지수의 이야기이다. 내게 있어 영화의 제목 ‘너를 줍다’는 상응하지 않는 문장처럼 느껴진다. ‘쓰레기를 줍다’라거나 ‘쓰레기봉투를 줍다’라고 한다면 자연스럽지만, ‘너를 줍는다’? 제목만 보아도 흥미가 일지 않는가.


이 영화는 ‘네’가 ‘쓰레기봉투’ 그 자체임을 주장한다. 내가 쓰레기라니?! 영화를 보기 전부터 당황스러운 난제에 마주하지만, 지수의 이야기와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이는 마냥 난처한 말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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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는 한 명의 인간을 쓰레기봉투로 바라본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지수는 매일 밤 몰래 아파트 주민들의 쓰레기봉투를 줍고 분해하여 분석하고 기록한 정보로 이웃을 바라본다. 그것이 지수가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지수는 자신이 가진 분석력과 기억력으로 이웃의 특징을 떠올리곤 한다. 매일 인스턴트 음식을 먹어 건강이 안 좋은 남자, 자식을 방치하는 아빠와 둘이 사는 소녀. 이처럼 지수는 아파트 주민들의 특징을 모조리 꿰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데이터에 없던 새로운 남자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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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옆집이다. 그렇게 지수는 궁금증을 안은 채 그가 버린 쓰레기봉투를 줍고 탐색하기 시작한다. 익숙한 듯 화장실 바닥에 비닐을 깐 뒤 욕조에서 봉투를 풀어 하나씩 꺼내어 보는 지수. 나온 것들은 곱게 접은 과자 포장지와 하나로 묶은 티백들, 그리고 작은 나무 상자 안에 면포로 덮어놓은 반려어의 사체였다. 쓰레기로 분류되는 것들이지만 그러한 것들에도 마음을 다하는 남자에게 지수는 점점 이끌리기 시작한다.


어느 날 옆집 남자의 택배가 지수의 집으로 오배송된다. 살펴보니 남자의 이름은 ‘강우재’다. 지수는 자신이 기록한 정보로 우재의 삶에 스며든다. 우재가 오는 시간에 맞춰 그의 단골 재즈바에 가 그가 좋아하는 노래를 선곡하기도, 그가 키우는 반려어 안시를 키우기도, 그가 자주 마시던 차를 사 마시기도 한다. 우재는 자신과 취향이 겹치는 지수에게 눈이 가기 시작하고, 둘은 점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이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다. 지수는 상대의 모든 걸 알고자 하지만 정작 자신은 솔직하지 못하다. 오히려 숨겨야 할 게 많은 이가 지수 본인이니까.


상대방을 완벽하게 알고 싶으면 쓰레기봉투를 뒤져야 하는 구질구질함이 따라온다. 지수의 엄마는 지수를 향해 구질구질하다며 잔소리한다. '구질구질하게 입고 다니지 말고 예쁜 옷 좀 사 입어.', '네가 그렇게 구질구질하니까 남자들이 널 쉽게 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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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말해주기 전까지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관계들은 일방적이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내 패를 다 까 보여도 자신을 숨기는 이를 만날 때가 있다. 또 어떨 때는 지나치게 상대를 알고 싶어 끊임없이 질문하고 집착하고 SNS를 염탐하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내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진다.


이는 모두 믿음에서부터 비롯되는 것 같다. 상대를 믿지 못해 나를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는 마음과 끊임없이 확인하며 믿음을 이어가려는 마음 말이다.


지수가 쓰레기를 줍는 행위도 위와 결을 같이 한다. 이 또한 믿지 못해 상대를 미리 완벽하게 알고자 하는 마음이다. 지수가 쓰레기를 줍게 된 계기는 남자친구의 배신으로 인해서였다. 지수의 실수로 엎은 쓰레기통에서 다른 여자와 쓰고 버린 콘돔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버려지는 것들이 그 사람에 대해 더 솔직하게 말해주니까."

 

 

자신이 몰랐던 남자친구의 이면을 쓰레기통을 통해 알게 된 지수는 버려지는 것들의 솔직함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지수는 어쩌면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보다 올리지 못하고 버린 사진들에 그들의 모습이 더 많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우재는 인간관계에 있어 믿음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러한 점은 지수와 상극처럼 보인다. 하나 그에게는 할머니 댁에 자신을 맡기고 유학을 핑계로 도망친 친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었다. 그렇기에 우재는 거짓으로라도 엄마가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믿고 싶어 한다. 즉 우재에게도 지수와 비슷한 상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의 이면을 알고 싶지 않은, 알길 두려워하는 마음이.

 

결국 우려하던 사건이 벌어진다. 우재는 집으로 향하다 쓰레기봉투를 들고 가는 지수를 발견하고 그녀를 몰래 따라간다. 이후 그녀의 집에 붙어있는 쓰레기 사진들을 보고 화를 낸다. 지수는 설명하려 하지만 우재는 듣지 않으려 한다. 결국 지수는 자취를 감춘다. 시간이 지나 우재는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려 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재는 지수가 보여주는 것만을 믿으며 그녀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재는 지수를 찾기 위해 처음으로 탐색을 시도한다.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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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상처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은 남녀가 서툴게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담긴 <너를 줍다>는 복잡한 인간관계를 담백하고 잔잔하게 풀어낸다. 지수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두 서로를 탐색한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한 탐색에서 벗어나 조금은 진솔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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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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