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보통과 특별의 중첩

글 입력 2023.11.22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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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공간과 이상 속 공간


 

일하고 있는 곳에서 창가를 바라보면, 구 LG아트센터, 현 GS타워가 한눈에 보인다. 중학생 때 처음 LG아트센터에 방문했었다. 인천에서 저 멀리 서울 어딘가까지 굽이굽이 지하철을 타고 온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어 홍광호 배우님의 공연을 보기 위해 친구와 열심히 이 먼 역삼역까지 왔던 기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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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 점심시간, 지하 통로를 이용해 길을 건넜고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니 익숙하지만 뭔가 다른 공간이 펼쳐졌다. 분명 익숙한데 이상한 느낌. 아직 지워내지 못한 엘리베이터 문의 흔적을 보고 알아챘다. 부푼 설렘을 안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하철역 수십 개를 지나 공연 시간보다 한참 전에 도착해 팸플릿을 수집하며 기다리던 그 공연장이다.

 

LG아트센터를 구경하면서 고등학생 때의 나는 공연장이 지하에 있고 위로 올라가면 사무실이었던 이 건물이 참 멋지게 느껴졌었다. 출입증을 찍어야만 열리던 정문 게이트를 바라보며 마냥 언젠가 이렇게 공연장과 가까운 곳에서 일하리라는 막연한 목표를 마음에 품었다.

 

역삼역으로 출근한 지 꽤 되었는데 최근에야 이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LG아트센터는 마곡에 있는 LG 단지로 옮겨갔지만, 예전의 내가 엄청난 설렘과 열정으로 방문했던 아트센터가 여기라니. 고등학생 때의 바람은 기억나지 않고 그저 이곳은 감흥 없이 출퇴근을 반복하는 일상의 장소가 되었다.

 

신기하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지나갈 수도 있는 장소가 때로는, 언젠가 나에게 무척이나 의미가 깊었던 장소였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내가 지금 이어폰을 끼고 귀를 굳게 닫은 채 앞만 보며 걸어가는 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쓸모없는 시간과 쓸모 있는 시간


 

나는 편도 2시간 출퇴근 중이다. 하루 4시간을 쓸모없이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요즘 강하게 든다.

 

슬슬 한계를 느끼고 있다. 대중교통에 몸을 싣는 동안, 책을 읽거나 뭐라도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콩나물시루에서 갇혀있다 보면 순식간에 아무 생각 없어지며 여기서 사라지고 싶은 온갖 부정적인 욕구만 마음에 들어찬다.

 

아침 2시간 동안, 나는 운동을 1시간이나 해도 여유롭게 1시간 동안 씻고 출근할 수 있다. 그리고 퇴근하고 다시 달려가는 2시간 동안, 나는 일찍 저녁을 먹고 취미활동을 하거나 할 일을 하고 체력 보충을 위해 일찍 잠들 수 있다.

 

참으로 유용할 이 시간에 나는 사람이 많아 제대로 터지지도 않는 데이터를 붙잡고 하염없이 유튜브와 인스타를 새로 고친다. 머리가 마비되어 가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만, 이미 글러 먹었고 이 지옥의 출퇴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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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중 4시간을 쓸모 있는 특별한 시간으로 만들어 누구보다 알차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결국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음을 안다. 첫 번째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하거나, 두 번째 직장을 옮기거나다. 아무래도 전자가 빠르고 간편할 듯싶은데 현실에서 깨야 할 벽은 생각보다 많다.

 

*

 

때로는 멈춰 여기가 어딘지 돌아보고 공간과 시간을 천천히 대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여유로움으로 보통과 특별의 순간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시각에서 요즘의 나는 영 좋지 않다. 중학생 때부터 평소 일상을 기록하는 다이어리를 꾸준히 써왔다. 최근 들어 나의 다이어리는 공간이 텅텅 비어 있다. 내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나조차도 가늠이 안 된다. 일상이 똑같으니, 다이어리를 쓸 필요를 자연스레 잃어버리게 되기도 한 것 같다.


돌아보면 나의 일상은 변화가 큰 것 같으면서도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일상이다. 그 고요함에 똑딱 한 방울 떨어진 올해, 유난히 반응이 오래가고 버거워하기도 했다. 보통의 순간들을 어렵게 느끼는 건 나의 마음에 달렸다. 얼마 남지 않은 2023년의 다이어리 후반부를 다시 하루하루 기록하며 채워야겠다. 하루의 순간을 천천히 파악하고, 내가 보내는 공간에 대해서도 꼼꼼히 따지고 생각해 보며 나를 조금 더 나은 나로 만들고, 조금 더 건강한 나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특별함은 결국에 보통이 존재하기에 탄생할 수 있다. 그리고 특별함은 보통의 일상에서 충분히 공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 중첩된 공간, 시간 속에서 특별함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지는 나의 선택과 생각, 행동에 따라 달렸다.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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