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상적인 세계를 다시 비추는 튈레의 만화경 - 에르베 튈레전

글 입력 2023.11.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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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deal Exhibition, ICA LA, Los Angeles 2019.jpg


 

전시회를 나오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독특하고 창의로운 예술가만큼 예민한 감각을 지닌 사람은 찾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림책으로 유명한 예술가지만, 전시회에서는 그림책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비디오 예술가, 삽화전문가, 광고 디자이너, 조형가이자 순수예술가로서의 다양한 면모를 담고 있다. 사람마다 튈레에 대한 다양한 키워드를 꼽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과감각'이라고 요약해보고 싶다.

 

겉으로 보기에 튈레는 아이들의 창의성을 독려하는 자유로운 예술가로 비칠 수 있지만, 모든 감각을 빠짐없이 표현하고 활용하고자 하는 그의 작품에서는 약간의 강박마저 느껴진다.

 

정확히는 강박보다는, 자신이 느끼고 감탄한 것들의 온전한 모든 것을 상대에게 전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세계는 단순한 하나의 채널 이상에 있는 것 같았다. 튈레는 어떤 현상에 대해서 다양한 오감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채널에서 자극을 처리하고, 그러한 자극을 흘려보내지 않고 포착하려고 한다.

 

작품 전반에 이러한 경향성이 녹아들어 있지만, 지면상 작가의 유명한 그림책 시리즈를 예로 들어보고자 한다. 튈레는 <우연놀이>, <구성놀이>, <색깔놀이>와 같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그림책 시리즈를 출판하였다. 이러한 그림책을 전체적으로 뚫는 두 가지 특징은, 작품 내의 내용이 적극 외부 대상 교류한다는 점과 시각 이상의 감각을 활용한다는 데에 있다.

 

 

Three Dots, Biblioteca Salaborsa, Bologna 2022.jpg

 

 

전자는 작가가 직접 그림책에 등장해서 "이 그림책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단다"라고 이야기하거나, 책의 등장인물들이 "아이들이 그림책을 열었어!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라고 반응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콘텐츠 내용 자체뿐만 아니라, 형식 자체를 변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몇몇 그림책에서는 한 면이나 일부를 조작하여 '한 면에 하나의 내용'이 표시되는 그림책의 법칙을 깨고 수많은 변칙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후자는 시각 너머의 감상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점을 따라 손을 움직이게 하거나, 색깔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게 하거나, 두드리고 쓰다듬게 해서 독특한 리듬과 촉각을 즐기도록 한다. 이런 두 가지 특징으로 인해 튈레의 그림책은 놀라울 정도로 혁신적이다. 튈레의 시리즈는 '시각'을 중심으로 '직선적'으로 읽는 기존의 텍스트 읽기 방식을 거침없이 파괴한다.

 

이러한 파괴 방식이 상당히 흥이 넘친다는 것도 모르겠다는 작품의 중요한 포인트다. 그가 이끈 예술 프로젝트에서 그가 행동하는 방식이건, 그림책의 텍스트건, 튈레는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움직이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러한 그의 반응이 기존 형식에 대한 파괴가 좀 더 자유롭고 새로운 발상으로 이끄는 것처럼 만든다. 튈레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묘한 카타르시스 트는 이런 과감함에서 기원하는 것 같다.

 

아무튼 이러한 튈레의 혁신적인 실험에 대해 많은 사람이 그 발상의 기원을 많이 물었던 것 같다. 튈레는 그래서 실제로 아이디어를 내는 방법에 관한 책을 낸 바 있다. 이 책에 대한 소개는 전시의 후반 즈음에 배치되었는데, 자유롭게 살았을 것 같은 튈레의 '현실'을 일부 보여준다. 그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이디어 고갈을 걱정하고, 온종일 아들을 데리고 해변에서 스케치를 연습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아이디어를 내는 방식에 관한 책에서,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주 재미있지만, 어떤 성과와 직접적인 연결을 하지 않는다. 그 발상의 근원 자체도 영감이나 직관과 같은 거의 영성에 가까운 표현에서 찾지 않는다. 그저 그는 일상에서 다양한 감각을 깨우는 것으로 아이디어가 그저 발생한다고 표현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후반의 전시가 앞서 말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대조와 대비되어 아주 흥미로웠다.

 

그리 짧지 않은 전시관을 돌아다니면서, 왜 이 사람은 이토록 조용하기 짝이 없는 예민한 감각을 발달시켰으며, 이 사람은 왜 이토록 많은 사람에게 자신이 공유하고 있는 감각적 활기를 불러일으키고 싶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조형물과 여러 예술가의 영감에서 완성된 그의 몇몇 작품에서는 그려지는 튈레는 영감과 직관에 찬 어떤 슈퍼스타라기보다, 고요한 삶에서 수많은 자극을 인지하고 처리할 수 있는 내성적인 예술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어떤 인터뷰에서 튈레는 어린 시절에 부모가 싸우는 소리를 폭탄으로 들었으며, 자신이 어린 시절에 내성적이고 우울한 아이였음을 밝힌 적 있다. 그는 자신의 불안과 고독을 예술적 침잠을 통해 해결했다. 그의 자료를 충분히 읽지는 못했지만, 불현듯 그의 즐거운 파괴, 특히 아이들에게 독려하고 싶은 환희 넘치는 감각의 세계는 그의 이러한 경험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가 그토록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을 즐기는 방법은 꽤 명백하다. 그가 제안하는 즐거운 퇴행에, 스스럼없이 동참하는 것. 그가 맛보았던 풍부하고 감각적인 세계를 조금이나마 공유하는 것.

 

 

에르베튈레전_포스터(세로).jpg

 
 
[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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