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찰나의 시간 속 찾아낸 영원한 사랑 [만화]

글 입력 2023.11.1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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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부터 공주보다는 마녀의 사랑 이야기에 더 관심이 많았다.

 

누명을 쓰고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사랑을 지켜내는 건, 비단 선한 역에만 적용되는 플롯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었다. 로미오와 줄리엣부터 인어공주까지, 수많은 비극이 있지만 결국 가장 마음 아픈 건 늘 악역을 자처하게 되는 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


<창백한 말>, <별똥별이 떨어지는 그곳에서 기다려>, <나의 마녀>. 모두 마녀의 사랑을 담은 이야기로, 내가 좋아하는 만화들이다. 언제나 괴롭힐 상대를 찾는 인간에게 휘둘리면서도, 끝내 인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만화 속 마녀라는 존재에 관심이 갔다.


불사의 삶 속에서 기쁨과 삶의 의미를 얻기 위해 마녀들은 사랑에 목을 맨다. <나의 마녀> 속 코델리아, 필리파, 비올레타, 카잘린, 그리고 설리가 그랬다. 오랜 시간을 살아오면서, 인생의 의미를 이미 잃어버린 이들에게 새로운 숨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건 사랑이라는 불규칙하며 강렬한 감정뿐이기에. 그래서, 그들은 사랑을 찾기 위해 인간 마을에 숨어들어,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냉소적이며 인간을 적대시하는 코델리아와, 인간을 사랑한 자애로운 필리파 모두가 인간 사회에서는 괴롭힘의 표적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마녀치고는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숨어든 마을 속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당하고, 여자를 향한 편견 속에서 자라며, 사랑했던 모든 남자에게 배신당한다. 그런데도, 이들은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놓을 수 없다. 그건, 왜일까.


세상이 만들어 낸 마녀는 누구에게나 저주를 서슴지 않을 정도로 잔혹하며 이기적인 존재다. 사람들은 마녀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마녀가 존재한다면 분명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어떤 증거도 없이 그들을 손가락질하고, 핍박하고, 차별을 일삼는다.


영원한 삶을 살아온 마녀. 이들은 인간의 추악함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어 어떤 마녀는 복수를 결심하고, 어떤 마녀는 용서를 다짐한다. 그러나 이 모든 행동의 기저에는, 이런 인간들 사이에서도 빛나는 인간 한 명을 찾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존재한다. 나를 편견 없이 봐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주어졌을 뿐인 이 인생을 통째로 걸어도 좋지 않을까.


그래서, 아름다움 속 잔혹함을 가진 마녀 코델리아는 다정하며 배려심 많은 미카엘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인간을 사랑해서 상처 입었던 필리파는 인간의 추악함을 바로잡으려는 콜린을 좋아하게 되며, 인간들에게 학을 뗀 필리파의 사역마 릴리는 삶에 지친 이안에게 마음을 가지게 된다.


우습게도, 사랑에 가장 회의적이었던 코델리아는 사랑으로 인해 긍정적으로 변화하지만,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해 왔던 코델리아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망가져 간다. 팔이 한쪽밖에 없는 콜린을 멸시하다 못해 살해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며, 한평생 사랑해 왔던 인간에게 분노라는 새로운 감정을 느낀다.


이렇듯, 사랑은 지금껏 몰랐던 감정들을 깨우치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 믿어왔던 가치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마녀들은 이토록 어리석은 사랑을 거듭하며 지독한 인연을 만들어 낸다. 일편단심을 넘어 맹목적이라고 발음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사랑. 그런데도, 이들은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찰나처럼 짧은 사랑에 집착한다. 영원히 살아가는 자신이 유한한 인간의 삶 속에 자리하는 단 하나의 기억이 되기를 바라면서.


<나의 마녀>가 마음에 들었던 건 이 비정상적이며 구속적인 세상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진정한 사랑과 자유를 찾는다는 점도 있지만, 여성, 장애인, 사회적 약자, 그리고 다양한 성 지향성을 논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해당 작품은 필리아적 사랑부터 아가페적 사랑까지,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진 넓은 바운더리를 이야기하며 일상에서 차별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토리에 풀어내고 있다.


팔이 한쪽밖에 없는 소년 콜린, 여자라는 편견 속에서 갇혀 지내는 마녀들, 그리고 동성 간의 사랑을 풀어낸 셜리와 카잘린의 이야기까지. 마녀가 사랑에 집착하는 진정한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이 만화를 읽다 보면 그들의 사랑 이야기에 속수무책 감화되어 응원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모든 이들이, 사랑에 미친 마녀들처럼, 외로운 세상 속에서 태어난 한 줄기 빛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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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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