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일을 위한 시간 [영화]

글 입력 2023.11.09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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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산드라의 여정을 사실적으로 따라간다. 또한,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태도는 사회 실험극처럼 보인다. 영화는 실직 위기에 처한 산드라가 동료를 설득하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담아낸다.

 

그녀가 실직하는 대신 동료들은 1,000유로라는 보너스를 받는다. 이미 투표를 통해 그녀는 직장에서 해고되었으나 투표 과정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통해 재투표 기회를 잡게 된다. 영화의 원제목은 2 days one night이지만 실질적으로 설득을 위한 만남이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로 이루어지고 월요일에 재투표가 진행된다. 우리가 집중하는 날은 토요일과 일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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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동료 16명을 만난 산드라. 그녀를 대하는 동료들의 태도는 전부 다르다. 냉소적인 표정이지만 결국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윌리, 하지만 곧바로 옆에 있던 아내의 반대를 거부할 수 없다.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다른 동료의 집 주소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곧이어 미레유가 등장하는데 그녀는 자기연민에 빠진 나머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볼 수 없는 캐릭터다. 실직 위기에 처한 산드라 사정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자신이 보너스가 필요한 상황에만 파묻혀 있다.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는 말에서 공감 능력이 모자라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의식에 심취된 이들이 타인의 상황에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사회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는 점에서 미레유 같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이 예외는 아니다. 이후 거절하는 동료들이 줄곧 등장한다. 거절할 이들이 보여주는 한 가지 공통점은 바로 다른 사람이 한 판단을 묻는 것이다.

 

자신이 행하는 판단의 근거를 남에게 찾는 것이다. 불공정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때문에 다수의 행복이 보장되는 상황이다. 이때 마음속 작은 양심이 소수를 외면하기 위해 군중심리에 의존한다. 윤리적 문제에 대처하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심리적 상태를 암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카메라는 미레유에게 거절당한 후 걸어가는 산드라를 오랜 시간 잡는다. 그 시간 동안 산드라는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뒤돌아 보지 않고 걸어가는 모습은 그녀가 영화 내내 한결같이 취한 행동이다. 산드라는 설득하는 과정에서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끝까지 아내와 함께 이동하며 거절당해 상처받고, 승낙받아 기뻐하는 순간 뒤에 등장한다. 함께 그 순간을 경험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그녀가 뒤돌아가는 곳에는 남편이 있다.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은 그들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카메라는 말하는 대상을 확대하거나 앵글을 이동하지 않은 채, 처음부터 끝까지 고정되어 함께 앉은 벤치를 비춰준다. 사실 이 장면에서 산드라는 남편에게 우리가 함께할 수 있을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위태로운 말을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녀가 실직당하더라도 절대 그들이 헤어질 일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증명하듯이 영화의 마지막 그녀는 웃으며 남편에게 전화한다. 투쟁에서 패배한 그녀임에도 남편과 함께 노력한 시간이 그녀가 웃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산드라는 완벽하게 실패한다. 노력 끝에 동점을 만들어 냈으나 과반수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지지해준 동료들과 인사를 마친 그녀를 사장은 부른다. 직원 간 감정 해소를 위해 보너스도 주고, 그녀를 복직시켜 주겠다는 것이다. 이에 응한다면 자신을 지지해준 알퐁소는 재계약이 불가능해진다. 순식간에 그녀는 선택당하는 인물에서 선택하는 인물이 된다.

 

도덕적 선택에 있어빠져 있던 그녀가 결과를 만들어 내는 상황에서 과연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걱정했으나 일관성 있게 담담히 뒤돌아 보지 않고 걸어 나온다. 멋진 선택이나 복직이라는 목표에는 실패한 것이 틀림없다. <내일은 위한 시간>이 사실적인 이유다.

 

사회는 그녀가 한 노력에 감동하지 않고 변화하지도 않았다. 사회적 변화를 이뤄 낼 수 없었지만, 개인의 변화는 존재한다. 사회적 투쟁에서 우울증을 극복했고, 알퐁소가 내민 손을 놓지 않았다. 복직에 실패한 아내를 따뜻하게 맞아줄 남편도 여전하다. 이혼을 결심한 안느도 빼놓을 수 없다.

 

안느가 자신을 과격하게 미는 남편과 이별을 결심하고 나아갈 미래도 말이다. 소수의 희생에 대항하여 설득하고 투쟁하고 연대하는 그들이 가져올 스크린 너머, 변화를 기대한다. 사회에서 변화란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지만 이를 구성하는 집단이 개인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따뜻한 희망을 전달되는 영화였다.

 

 

 

[배윤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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