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양인모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음악]

글 입력 2023.11.02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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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바이올린은 내게 생소한 영역이었다.

 

그 악기가 내는 소리가 뭔가 불안하고 초조한 감정을 주기 때문에 굳이 찾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살면서 실제 공연에서 보고 들은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곡들은 모두 바이올린 연주였다.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세계 3대 바이올린 소나타 중 하나로, 나는 몇 년 전 클라라 주미 강의 연주회에서 처음 들었다. 당시 생소한 이름의 작곡가라 별로 기대도 하지 않고 들었는데 낯선 선율이 너무나 아름다워 연주되는 동안 깊은 감동을 받았고, 콘서트홀을 나온 이후에도 음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그 후로 이 소나타는 내가 즐겨듣는 바이올린곡이 되었다.

 

친구의 결혼식을 위해 프랑크가 작곡한 이 소나타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작품답게 설렘과 긴장이 공존한다. 이 곡을 들을 때면 나는 아끼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할 때와 같은 행복과 축복의 기분에 휩싸인다.

 

드뷔시는 프랑크에 대해 '순수한 의미로써의 심플함을 지닌 천재 작곡가'라고 칭송한 바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작품을 알게 되어, 그리고 좋아하게 되어 정말 다행이고 행운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예술의 전당에 양인모와 홍콩 필하모닉의 연주를 보러 다녀왔다. 바이올린 연주는 어떤 실황 녹음이나 녹화 영상보다도 실제로 보았을 때 훨씬 매혹적이라는 것을 알기에 한껏 들떠 공연장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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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인모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의 시작은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이 일제히 지극히 작은 소리로 연주하며 출발한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서늘한 겨울 새벽바람에 옷자락이 서로 스치는 소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회에 가기 전 유튜브로 이 곡을 찾아서 들었을 때는 이 부분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신경이 곤두설듯 말듯한 톤과 볼륨으로 현악기들이 미세한 소리를 내는 가운데 바이올린 솔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약간은 으슬으슬한 기분이 들게 하는 1악장과 2악장을 지나면 따뜻한 햇빛이 비치는 것처럼 경쾌하고 밝은 3악장이 시작된다. 풍성하고 두꺼워진 곡은 그 늠름함을 유지하며 절도있게 끝을 낸다. 객석 여기저기서 '브라보!'가 터져 나왔다. 양인모의 연주는 차분하고, 겸손하고, 섬세했다. 앙코르곡으로 선보인 파가니니의 곡도 발향력이 대단했다.

 

나는 여전히 바이올린에 대해서 잘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바이올린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기 때문에 싫다고 말하진 않는다. 그렇게 말해놓고 연주회에만 가면 바이올린곡에 매료되어 나오는 경험을 벌써 여러 번 했다. 또, 미리 음악을 듣고 가지도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낯선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신선함과 내 안에 울리는 감각은 실제로 음악이 내 앞에서 연주되고 있을 때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흔히 요즘의 미술 시장을 일컬어 '귀로 작품을 산다'는 자조 섞인 표현을 한다. 이는 실제로 내가 보고 느낀 것보다, 남들이 혹은 시장이 평가하는 것을 토대로 작품의 가치를 매기는 태도를 말한다. 그래서 나는 예술 작품을 볼 때는 귀를 어느 정도 막고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바깥의 소음을 막아 내 안의 소리와 공명에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마찬가지로, 음악을 들을 때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멜로디가 주는 충격과 센세이션을 흠뻑 느낄 수 있도록.

 

시각 예술은 시각을 이용해서 감각하고, 청각 예술인 음악은 귀를 통해 느끼는 것이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 것을.

 

 

[강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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