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쓰기에 대한 쓰기 [문화 전반]

아트인사이트 29기 에디터 활동을 마치며
글 입력 2023.10.2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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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 폼 미쳤다..!”

 

 

요즘의 나를 스스로 묘사해 보자면, 유행하는 말로 ‘폼 미쳤다’는 말을 쓰고 싶다. 정확히 말하자면 '글 쓰는 나, 요즘 폼 미쳤다..!' 정도 되겠다. 글을 잘 쓴다는 의미는 아니고 글 쓰는 근력에 ‘물이 올랐다’는 뜻이다.

 

나는 글쓰기야말로 유난히 재능보다 근성이 더 중요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글쓰기는 오래 쉬는 만큼 못하게 되고, 꾸준히 하면 할수록 정직하게 는다. 근력 운동과 같은 원리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자전거를 탈 때 맨 처음 페달을 밟는 데는 많은 힘이 들지만 세 번 정도 페달을 돌리고 나면 그때부턴 관성처럼 별 힘을 들이지 않아도 잘 굴러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글이 막힘없이 술술 써지는 건 아니다. (그런 단계는 아마 평생 안 오지 않을까. 아무리 대가라도 스스로 이렇게 느끼는 작가는 없을 것 같다)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보다는 글을 쓰고 퇴고하는 과정에서 ‘이거야!’하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모든 예술은 내 머릿속에 어렴풋이 있는 어떤 이상향의 상념이 내가 원하는 매체의 예술로서 그대로 재현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한다. 하지만 음악가도, 화가도, 작가도 언제나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창작물의 괴리를 발견하게 되고 그때마다 좌절한다. 이 요원한 목표가 이루어지는 것은 일생에서 손에 꼽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말하자면 ‘폼이 미쳤다’라거나 ‘글쓰기 근력이 물 올랐다’는 의미는 내가 생각했던 것이 어느 정도 곧잘 글로 풀어진다는 뜻이다.

 

근래 나의 글쓰기 ‘폼’이 좋아진 데는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어떤 글이든 완성해서 업로드해야 하는 반강제성이 나의 글쓰기 근력을 탄탄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느새 4개월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 글 하나가 남았다. 에디터로서의 마지막 글을 무엇으로 쓰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쓰기’에 대해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지난 4개월간 나의 글쓰기 루틴이 어떻게 정립되어 왔는지, 한창 물오른 나의 글쓰기 ‘폼’이란 어떤 느낌인지.

 

 

 

영감 - 찾고 있어야 나타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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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을 막 시작했을 때 쓰고 싶은 소재가 많았다. 소재를 잘 정리해 두고 매주 하나씩 골라서 써 내려갔다. 굳이 새로운 영감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한두 달 정도가 지나자 내가 비축해 둔 소재는 금세 동이 났다. 무엇이든 써야 했다. 그 후부터는 일상에서의 영감 찾기 퀘스트가 추가되었다.

 

내 경험상 영감은 정말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개인적으로 영감이 제일 많이 찾아오는 건 샤워할 때와 머리 말릴 때이다. 나는 씻는 시간을 굉장히 귀찮아하는데, 아마 아무런 전자기기의 방해 없이 단순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시간이다 보니 오히려 머리가 제일 잘 돌아가는 게 아닐지 추측해 본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의 절반은 샤워 시간에 구상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샤워가 끝나자마자 젖은 몸으로 핸드폰 메모장에 허겁지겁 아이디어를 적어 내려가곤 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의 아이디어와 초안도 샤워하면서 떠올랐다) 그야말로 샤워가 내 영감의 원천이요 마르지 않는 샘물인 셈이다.

 

이처럼 영감은 대체로 내가 대비하고 있지 않은 순간에 찾아오곤 하지만, 내가 찾고 있지 않는데 영감이 훅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전에 어떤 글쓰기 책에서 봤던 인상적인 구절이 있는데, 바로 ‘새벽 3시에 찾아오는 영감을 기다리지 말라’는 것이다. 요컨대 알아서 찾아오는 영감을 기다리지 말고 써야 할 거리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글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매주 금요일에 글을 기고하는 나는 보통 월요일부터 영감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기 시작한다. 이번 주도 어김없이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과 책임감에 시달리며 영감에 목말라해야 어느 순간 영감이 시간을 가리지 않고 불쑥 나타나 준다. 영감을 향한 나의 갈망과 절박함이 무의식적으로 머리 뒤편에서 계속 영감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때 또 중요한 것은 찾아온 영감을 잡아두는 것이다. 목말라한 만큼 쉽게 놓치지 않으려 애써야 한다. 영감의 형태는 꿈꾸듯 희미해서 재빨리 메모장에 적어두어 또렷하게 만들어 두어야 한다. 사정상 바로 메모를 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샤워 중이라든가, 공연을 보는 중이라든가) 최대한 영감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머리를 열심히 굴린다. 영감은 깃털과도 같아서 그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날아가 버린다.

 

 

 

초고 - 일단 써 그냥 써 계속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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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쓰기의 단계다. 초고 쓰기는 최대한 힘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 영감 단계에서는 대단한 글을 쓸 수 있을 것처럼 마음이 잔뜩 부풀기 마련인데, 초고를 쓸 때만큼은 이런 욕심과 부담을 떨쳐내야 한다. 굉장한 것을 쓰고야 말겠다는, 혹은 써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린다. 쓰기는 그냥 쓰기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적으면 된다. 거기에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원대한 포부도, 위대한 작가가 되고 말겠다는 허영도 없어야 한다. 너무 잘하려고 하면 힘이 들어가서 몸이 굳듯이 글도 뻣뻣해진다. 글쓰기 사실 별거 없다. 일단 쓰자. 그냥 쓰자. 그렇게 계속 되뇌면서 초고를 쓴다.

 

초고 쓰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계이다. 나에게 글쓰기란 배설과도 같아서 초고 쓰기는 꽉 막혀있던 속이 풀리는 것처럼 시원하다. 내 머릿속에 있는 줄도 몰랐던 생각들이 줄줄이 딸려 나올 때는 관장하는 것 같은 강력한 쾌감이 있다. (약간 더러운 비유인데 비위가 상했다면 사과한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을 시작했을 때처럼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아 글쓰기 근력이 흐물흐물해져 있을 때는 초고 쓰기조차 힘들었다. 그럴 땐 ‘힘 빼고 쓰자’ 말고도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라는 말도 같이 되뇐다. 쓰는 도중에는 웬만하면 뒤돌아가지 않고 일단 써 내려간다. 문장이 어색하거나 어휘가 부족한 것은 초고 단계에서 수정할 부분이 아니다. 세세한 디테일은 무시하고 흐름이 막히지 않는 것에만 집중한다.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글이 흘러갈 때가 있는데, 그것도 일단 미래에 퇴고하는 나에게 맡기고 생각이 동날 때까지 써 본다. 그렇게 신나는 초고 쓰기가 마무리되면…

 

 

 

퇴고 - 사지를 잘라내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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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글쓰기의 꽃이라고 불리는 퇴고 시간. 나에게 퇴고는 가장 고통스러운 단계다.

 

퇴고가 고통스러운 것은 ‘쓰레기를 써도 일단 쓴다’는 심정으로 배설하듯 토해낸 글을 내가 처음이자 유일한 독자로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읽어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날것의 글을 조각해야 하는 단계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 읽어야 한다. 내 글을 내가 잘 읽는다는 것은 타자가 되어 내 글을 분석할 줄 아는 눈이 있는 것이다.

 

퇴고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를 확인해야 한다. 단어의 선택, 문장의 매끄러움, 문단의 구성과 배치, 글의 전체적인 흐름까지... 신경 써야 할 게 얼마나 많은지. 여기서 초점은 ‘더 정확하고 간결하게’다. 의식의 흐름대로 적힌 배설물이 소통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는 보다 정확하고 간결해야 한다.

 

그러므로 퇴고는 덜어내고 또 덜어내는 작업이다. 힘을 빼고 쓴다고는 했지만 나도 모르게 곳곳에 묻은 과시와 과욕을 덜어낸다. 문장을 다듬을 때도 화려한 장신구를 덧붙이는 방향이 아니라 담백하고 솔직하게 다듬는다. 큰 그림에 어울리지 않는 내용은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초고여도 결국 나에게서 나온 것은 모두 소중하고 문장과 단어 하나하나에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어서, 약간의 과장을 보태 나의 사지를 잘라내리라는 각오가 필요하다. 덜어낼 때는 가슴이 아픈데 나중에 보면 덜어내서 아쉬운 것은 거의 없다. 마치 물건을 버릴 때는 ‘언젠가 쓰고 싶어서 아쉬워하지 않을까’ 싶지만 막상 버리고 나면 찾지 않는 것과 같달까.

 

 

 

마감 - 완성이 아니라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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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을 하면서 나는 ‘마감이 없다면 평생 완성은 없을 것이다’는 것을 절감했다. 작가들이 ‘나를 쓰게 하는 건 계약과 마감’이라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다. 단지 어느 시점에서 포기할 뿐이다.


- 폴 발레리

 


각 문단과 문장, 단어 하나하나까지 여러 번 고치며 글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부터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이 글을 처음 읽는 독자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객관적인 눈이 사라지는 것이다. 심할 땐 그야말로 ‘흰색이 종이요, 검은색이 글씨로다’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상하게도 열심히 글을 다 써 놓고 막상 마감 직전이 되어서야 생겨나는 질문들이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문단이 글 전체 흐름에 맞지 않는 것 같다거나, 글이 A주제로 시작했는데 뜬금없이 Z주제로 끝나는 것 같다는 고민부터 '애초에 이 글의 주제가 글로 쓸 만큼 의미 있는 건가' 싶은 원론적인 질문까지.

 

단언컨대 에디터로 활동하면서 단 한 번도 마음에 쏙 든 채로 ‘드디어 완성이야’라고 생각하며 기분 좋게 글을 업로드한 적이 없다. 언제나 찜찜한 상태로, ‘더는 못 해 먹겠다’, 혹은 ‘이제 뭐가 뭔지 정말 모르겠다’, 혹은 ‘마감이 1분 남았으니 어쩔 수 없다’는 포기의 심정으로 ‘[기고 중]’ 말머리를 지웠다.

 

적어도 여러 번의 퇴고 후 마감 직전의 나는 내 글을 객관적으로 읽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처음 영감을 찾아서 위대한 글을 쓰게 되리라는 부푼 꿈을 가진 사람은 온데간데 없고 ‘이런 내가 무슨 글을 쓴다고’라고 궁시렁대며 한없이 작아진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래도 몇 주 후에 글을 다시 들여다보면 여전히 마음에 안 들 때도 있지만, 의외로 괜찮게 썼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마감이 없었다면 올라올 수 없었을 글들이 마감 덕에 '완성'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

 

글쓰기란 나에게 뭘까. 나는 왜 쓰는 걸까.

 

많은 사람이 치유와 자기 계발을 위해 글을 쓴다고 한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돌이켜봐도 나에게 글쓰기가 치유가 되었던 적은 딱히 없다. 나는 오로지 나만을 위한 글쓰기를 해본 적이 별로 없다. 내가 보려고, 나를 위로하기 위해, 나를 알고 싶어서, 그런 목적을 가지고 글쓰기를 하진 않았다.

 

언제나 나는 가상의 독자를 상정하고 글을 썼다. 은연중에 항상 누군가가 내 글을 읽을 거라고 생각하고 썼다. 실제로 발표된 적은 없더라도 말이다. 내 글을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작정으로 무언가를 써본 적이 있긴 있지만, 그런 글쓰기가 지속 가능할 만큼 나에게 충분한 동기를 부여해주지는 못했다.

 

앞서 말했듯 글쓰기는 내게 배설에 가깝다.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 그것을 글로 토해내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그 마음 깊은 곳에는 소통의 욕구가 드글드글 끓고 있다. 내 생각을 누군가 읽어줬으면 좋겠고 공감해 줬으면 하는 인정 욕구. 내 생각과 내 글이 세상에 내놓을 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는 어떤 허영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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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작가들은 대체로 언론인에 비해 돈에는 관심이 적어도 더 허영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이라고 조지 오웰은 말했다. 나는 이 문장이말로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내 정체성을 적절하게 묘사한다고 생각한다. 나란 사람이 글을 쓰는 원동력은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리라는 허영심, 내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야 할 만큼 가치 있을 거라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것 같다.

 

나에게 창작 욕구는 곧 소통 욕구와도 같은 말이다. 매주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올리면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주고 있고, 그것이 헤드라인이든 ‘많이 본 글’이든 블로그든 인스타그램이든 작게나마 반응이 올 때 엄청난 희열이 있었다. 에디터 활동이 끝나면 '매주 한 편'이라는 강제성이 한층 느슨해지겠지만, 이미 글쓰기를 통해 소통의 맛을 제대로 본 나는 그 힘으로 계속해서 꾸준히 쓸 수 있을 것 같다.

 

한창 물오른 나의 '미친 폼'을 잘 유지하기 위해 게을러지지 말아야지. 여전히 영감을 찾기 위해 일상에서 분투해야 하고, 퇴고는 언제나 고통스러울 것이며, 마감이 다가오면 잔뜩 쪼그라든 마음으로 다 때려치고 싶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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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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