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농활을 모르는 세대 [공간]

대학이라는 공간의 흐름을 다시 이어가자
글 입력 2023.10.2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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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만남과 몇 년 차이의 위화감


 

바야흐로 대학생의 중간고사 기간이다. 전공 특성상 외운 것에 내 시각을 덧붙여 써야 하는 수필 시험이 많아, 이번 시험도 역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유일한 예외가 음악과 관련된 교양 수업의 실기 시험이었는데, 다행히 이 시험이 내 첫 시험이었다.

 

첫 시험을 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교하던 길, 우연히 다른 학교의 학생인 친구를 마주쳤다. 친구는 ‘농활 홍보’를 위해 우리 학교에 왔다고 했다. 그가 농활에 가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학내 인권 주간 행사에 방문했던 친구가 나에게 농활 홍보물을 주었었기 때문이다. 행사 당일 이후에도 우리 학교에까지 홍보를 올 줄은 몰랐다! 반가운 마음에 마주친 그 자리에서 30분 정도 수다를 떨었다.

 

친구는 학생들이 농활을 굉장히 멀게 여겨 속상하다고 말했다. 내가 당연하지 않냐고 묻자 의아한 기색이었다. 앗? 여기서 묘한 흐름의 단절을 느꼈다.

 

21학번인 나에게 농촌활동, ‘농활’이란 과거의 학생운동 중 하나였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우리는 다른 대외활동을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시간에 서울 바깥의 농촌으로까지 봉사활동을 간다는 것을 비효율적으로 여기기도 하고, 딱히 농촌과 연대할 필요성을 자각할 계기를 경험한 적도 없다. 내가 만약 ‘농활에 간다’라고 한다면, 내 동기들은 곧바로 ‘너무 열성적이지 않냐?’며 나를 놀릴 것이다.

 

반면 나보다 몇 학번 위인 친구는 달랐다. 선배들이 ‘대학생이라면 농활 한 번쯤은 가봐야지!’라고 말하는 것을 몇 번이고 들어온 친구는 자연스럽게 언젠간 농활에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번 농활이 그 ‘언젠가’였던 것이다. 고작 몇 학번의 차이인데도 농활은 친구에겐 하나의 의례가, 나에겐 비효율적인 봉사활동이었다.

 

대체 무엇이 우리의 환경을 이렇게 다르게 만든 것일지 고민해 봤다. 고민은 길지 않았고, 우리는 거의 동시에 답을 말했다. 결국 코로나였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이야기해 보았다.

   

 

 

대학 내 교류와 문화 단절의 아쉬움


 

사실 코로나로 인한 학내 문화 단절을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입학 직후 1년을 내내 온라인 수업만 들었던 나에게 대면 강의들로 가득한 2학년은 무척이나 새로웠고, 내가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정말 많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선후배 간의 교류이다. 대학 생활을 하며 만나본 ‘선배’가 정말 손에 꼽는다. 같은 수업을 듣는 같은 과의 선배라도 중간에서 인사를 시켜줄 또 다른 선배나 그 선배와 안면이 있는 동기가 필요한데, 코로나 탓에 둘 다 없었던 탓이다.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조별 과제 수업에서 같은 조가 되어서야 겨우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온라인 수업 기간이 없었다면 무엇이 달랐을지 정말 많이 상상했는데, 선배와 교류해 본 데이터가 없어서 그럴듯한 모습을 상상하기도 정말 어려웠다. 용케 한 학번 위의 선배들과 친해졌어도 그 위의 선배들과는 안면을 틀 도리가 없었다. 한 학번 위, 20학번은 코로나의 영향을 정통으로 받은 학번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후배를 대하는 것도 조금 어색해졌다.

 

나는 아직도 FM(대학, 단과대학, 학과 순으로 수식하는 단어를 붙여 하는 학교별 자기소개)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FM과 같이 ‘대학에서만’ 할 수 있는 사회생활은 대부분 1학년이 주로 참석하는 단체행사(MT, 새내기 배움터 등) 에서 배우는데, 1학년의 나는 동기들과 무리 지어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작을 온라인으로 하니 2학년이 되어도 동기들에게 선뜻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학생회에서도 이를 인지하고 여러 친목 행사를 주최했지만, 뒤늦게 친목 행사에 참여하기도 어색하여 잘 나가지 않았다. 아직도 얼굴을 모르는 동기가 참 많다.

 

안타깝게도 이런 문제는 나 개인에게만 생기지 않았다. 학번과 학번 사이, 또 학번 내에서의 소통 부재는 대학생 집단 문화의 단절로 이어졌다. 학생회들은 코로나 시절의 낮은 투표율 탓에 정식 학생회 지위를 얻지 못해 만들어진 ‘비상대책위원회’ 시절을 겪었고, 그렇게 한 기수의 학생회 자리가 비어버리니 꾸준히 이어지던 학생회 사업의 명맥이 뚝 끊기는 일이 잦았다. 친구와 나의 농활 사례처럼 학내 문화가 사라진 건 아마 셀 수 없을 것이다.

 

 

 

이어나갈 것들을 생각하기


 

우리 사회 안에서의 여러 문화가 맥을 잃었다.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던 학년이 생기고, 마스크를 벗은 선생님의 얼굴이 낯설어 우는 아이들이 생겼다. 대면으로만 출근해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지고, 재택근무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업종도 있다고 한다. 뚝 끊긴 대학 문화는 내가 겪고 있기에 가장 커 보일 뿐일 테다.

 

잃어버린 시간과 전해 받지 못한 문화가 아쉬워서일까, 코로나 해제 이후 사람들은 여러 행사에 집중적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당장 우리 학교만 해도 학교 축제와 간식 행사 등의 열기가 무척 뜨겁다. 행사마다 맹목적으로 줄을 서는 것은 물론, 행사 진행에 조금의 아쉬움이라도 생기면 곧바로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 가끔은 너무 과하게 느껴지는 이 열기는 지난 시간에 관한 보상 심리와 억눌렸던 소비에 대한 반발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막상 그 이전의 삶이 뭐였는지는 감을 잡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학교의 역사를 조금 더 공부했으면 좋겠다. 학내 자치 단체가 주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부터 시작하여, 교지가 어떤 글을 써왔으며 학생 인권 단체는 어떤 운동을 펼쳐왔는지, 우리 학교만의 문화는 무엇이 있었고 또 우리 학과에서 주로 하던 동아리나 활동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하고 알아봤으면 좋겠다.

 

단순히 네트워크를 다지기 위한 교류 외, 내가 속한 집단에 관해 알아감으로써 얻어지는 소속감은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우리 학교 응원가의 가사를 읽으며 소속감을 느낀다. 선배들이 추구했던 가치를 나 또한 바라보고 있음을 느낄 때 내가 대학이라는 거대한 집단에 속한 인물임을 실감한다. 교지를 통해 우리 사회를 직면하고 또 분석해 내려는 글쓴이들을 보며 동질감을 느낀다. 모든 것이 더욱 활발했을 코로나 이전을 생각하며,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문화 중 가장 큰 부분이 ‘연대’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제 낯설기만 했던 ‘농활’이 조금은 친숙해졌다. 어찌 되었든 이것 또한 과거의 우리가 했던 활동이겠거니, 생각하니 괜히 아쉬움이 들어 꼭 한 번은 참여하고 싶어졌다. 이런 방식으로, 느리게나마 흐름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언젠가 또 우리가 당연히 해오던 일이 누군가에겐 아주 낯선 활동이 될 때, 나 또한 그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음을 그에게 말해주고 싶어졌다. 우리가 지켜온 가치가 있노라고, 너 또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해주는 친구가 되어야겠다.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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