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 모두의 존재 이유에 대하여 [도서/문학]

삶은 존재하는 그 자체로 찬란하다
글 입력 2023.10.15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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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담담하게 전하는 위로

 

청소년에서 어른이 되기까지,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의 현실적인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이를테면 인간관계, 결혼, 학업, 가족, 회사, 우정, 질투나 사랑 같은 것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미 지나간 과거에 얽매여 괴로워한다. 그들은 변화의 가능성을 알면서도 결말이 두려워 가까운 미래를 외면한다.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그런 사람들을 토닥여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단단하고 올곧은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도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걸까. 살아있는 자체로 누군가의 구원이 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이 물음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가져다주는 책이 있다. 

 

바로 천선란의 장편소설 나인이다.

 

 

작은 새싹 하나가 만들어낸 커다란 변화

 

이 소설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낯선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니 출생이 비밀을 알게 된 한 여학생이 이능력을 사용해 동급생 살인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영웅담이자 성장물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추리물 같기도 하며 심지어는 대리 복수극 같기도 하다. 그러나,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소설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위로의 메세지를 발견할 수 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 나와는 관계없는 일. 그런 일들에도 발 벗고 나서 도움을 주는 사람은 각박한 세상에도 하나쯤은 존재한다.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 그렇다. 나인은 이모와 단둘이 브로멜리아드 화원에 사는 열일곱 살 고등학생이다. 태생이 '오지라퍼'인 나인은 매사에 무모하리만큼 정의롭고 도전적인 모습을 보인다.


소설 내내 보이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나인의 모습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어딘가 결이 달라 보인다. 이기적인 어른들 사이에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소외된 이들을 돕는데 힘쓰는 사람. 타인보다 자신의 안위가 우선인 세상에서는 찾기 힘든 모습이다.


의아하리만큼 정의를 중시하는 그녀에게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 바로, 외딴 행성의 흔적을 지닌 외계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덕분에 어느 날 식물과 소통하는 능력을 얻었다는 것. 나인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은 그녀가 이토록 이타적일 수 있는 이유를 어렴풋이 암시하고 있다. 친구를 살해하고도 모른 척 외면하는 학생도, 자식의 미래를 걱정해 사체를 땅에 묻는 부모도, 돈을 받고 입을 닫아버린 형사도. 주변이 이기적인 모습을 보일 때 유일하게 억울한 이에게 손을 내미는 이는 늘 나인이다.


그러나 그녀의 이타성은 홀로 태어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는 만들어질 수 없는 세상이다. 아무리 외계인이라 하더라도, 어른들이 가진 이기심과 무관심을 그대로 흡수하기 마련인 청소년이 어떻게 이토록 타인을 위할 수 있을까. 소설에서, 나인의 능력이 발현된 것을 알아챈 이모는 이렇게 말한다.

 

강한 힘을 가지면 그런 선함도 함께 깃드는 걸까. 아니면 그런 용기를 가지고 있기에 강한 힘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걸까. 강한 힘을 가진다고 해서 선함이 무조건 깃드는 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올바르게 쓰일 줄 모르는 힘은 재앙과 다르지 않았다.

 

 

선한 마음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인의 이모 말대로 손에 쥐어진 능력은 쓰는 이의 마음가짐에 따라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나인의 경우에는 타인을 돕는 데에 쓰인 것뿐. 그렇다면, 나인은 대체 어떻게 아주 투명하고, 유리 같이 선한 마음을 가질 수 있던 것일까? 그 마음의 근원은 아주 오래전부터, 나인이 지구에서 쌓아온 기억에서 발견된다.


나인에게는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우산을 가져오지 않아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 친해진 친구 두 명이 있다. 바로 현재와 미래다. 그들은 나인이 외계인이며 식물과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신뢰한다.

 

망설이는 것이 표정으로 드러났는지 미래가 나인의 어깨를 감싸 잡았다. 그러곤 나인과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말했다.

"무슨 말이든 그냥 무조건 믿을게. 말하기만 해 줘." 

 

출생의 비밀을 밝혀내자 자연스레 사회 속의 이방인이 되어버린 나인에게, 미래는 질문 하나 던지지 않고 그녀에게 무조건적인 믿음을 약속한다. 더불어 나인이 식물이 보여준 기억을 통해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 사건의 배후를 밝혀냈다는 것까지,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말들을 믿어준다. 끈끈한 유대감과 두터운 믿음으로 이루어진 이 관계에서는, 나인이 진실을 숨기는 것보다 정체를 밝히는 것이 선호된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인은 참된 우정을 배우고, 남들과는 조금 다른 정체성을 떳떳하게 여기게 되고, 그저 주어졌을 뿐인 능력 속에서 진정한 목적을 깨우치게 된다. 그런 세상 속에서 나인은 외계인과 지구인의 경계를 넘어 존재 그 자체로 살아가는, '나인'으로 성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인의 세계가 두 친구로만 확장된 것은 아니다. 나인에게는 승택이라는 또 다른 친구가 있다. 외계인이지만 몸이 약해 병상에서 살던 승택은 천성이 유약하고 다정하다. 그는 자신이 누리지 못한 것들을 경험한 나인을 질투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에게 도움을 준다.


승택이 가진 배려심과 선한 마음가짐은 나인에게 또 다른 선함을 물려준다, 이는 평생을 강하게 살아왔던 나인에게 좋은 영향이 된다. 강하지만 다정한 사람이 있고 또 약하기에 다정한 사람이 있듯이, 제각각의 다정함을 가진 이들은 척박한 세계에서도 기적을 끌어낸다.

 

 

삶은 존재하는 그 자체로 찬란하다

 

이 소설은 표면적으로는 나인의 성장기를 그리지만, 세상에서 배척된 이방인이 되어버린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원우는 나인이 파헤치는 살인 사건의 피해자로, 외계인을 믿으며 집이 가난하다는 사실 하나로 죽는 순간까지 배척받는 존재였다. 나인과 승택은 외딴 별에서 온 외계인이며, 현재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로 취급되었으며 미래는 부모님이 서로 사랑하지 않아 이혼한 집안의 딸이다.

 

그래서, 소설 나인은 우리 모두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삶은 존재하는 그 자체로 찬란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기준에 어긋나면 무자비한 혐오와 배제를 일삼는 이기주의를 비판하며 신뢰와 응원, 수용과 다정함이 가진 커다란 힘을 믿는다. 이 책은 다름이 곧 혐오가 되는 세상에서 포용과 이해, 상호 존중과 자기반성을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이고 독자와 함께 성장한다. 

 

누군가는 느껴보았을 관계의 단절, 출처를 알 수 없는 외로움과, 인정받거나 이해받고 싶은 마음들. 작가는 이 모든 감정의 순간을 찬란하다고 여긴다. 

 

불평등과 혐오에 맞서 진정한 성장을 이루는 모습을 보며 우리 모두 자그마한 위로를 얻어갈 수 있길 바란다.


 

[강소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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