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가 사울 레이터의 시선을 들여다보기 - 사울 레이터 100주년 기념 에디션

글 입력 2023.10.21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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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레이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공식 회고록이 출간되었다.

 

뉴욕 '사울 레이터 재단'의 설립자 마깃 어브와 부이사장 마이클 파릴로가 엮은 이 책은 사울 레이터의 생애부터 흑백 사진, 컬러 사진, 패션 화보, 회화 작품, 누드 사진까지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연대기적으로 종합하여 보여준다.

 

사울 레이터는 컬러 사진으로 유명하나, 사실 그가 구축한 작품 세계는 흑백 사진과 패션 화보, 누드 사진 그리고 회화 작품까지 연결되어 있다. 이는 그의 작업 방식에서도 드러나는데, 사울은 예술가로서 특정한 주기같은 게 없었다. 컬러 사진이든 흑백 사진이든, 회화든 그는 모든 작업을 동시에 했다.

 

이처럼 방대하고 다채로운 그의 작업을 이 회고록에선 다섯 개의 목차로 보여준다.

 

첫 번째 장 ‘1. 시작’은 사울 레이터의 유년 시절과 함께 그의 초기 작품들을 제시한다. 유서 깊은 랍비 가문 출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울은 특히 저명한 정통파 랍비이자 탈무드 학자였던 아버지를 닮아 학업에 소질을 보였다. 1938년부터 뉴욕 탈무드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이어갔지만, 그의 미술에 대한 관심은 점점 자라나 그림과 사진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가족과의 갈등을 일으켰고, 결국 가족과 단절되어 뉴욕에서 살아가게 된다.

 

사울은 플럭서스 예술가로 잘 알려진 존 케이지(John Milton Cage Jr.),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의 초상을 촬영하기도 했으며, 추상표현주의 화가 리처드 푸세트 다트(Richard Pousette-Dart)와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 W. 유진 스미스(W. Eugene Smith) 등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나며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많은 전시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였다.

 

2장 ‘거리에서’는 작가가 뉴욕의 도시 풍경을 포착한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그의 거리 사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시의 풍경처럼, 넓은 시각으로 대도시의 장대한 규모와 혼란스럽고 번잡한 분위기를 그려내진 않는다. 오히려, 피사체와의 거리를 극도로 좁히거나 흐릿한 초점으로 뚜렷한 중심이 보이지 않는 모호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사진은 우리의 시선과 닮아있다. 전체적으로 한눈에 조망하는 게 아닌, 길거리를 걸으며 마주치는 크고 작은 대상들에 순간순간 던지는 시선들이다. 사울의 시선을 훔쳐보는 듯한 이러한 이미지는 그러한 점에서 지극히 사적이면서, 불특정하면서 순간적인 피사체이기에 익명적이다.

 

3장 ‘패션’에선 그의 패션 사진 작업을 살펴볼 수 있다. 사울은 1957년부터 약 20년간 [에스콰이어], [하퍼스 바자] 등과 작업하며 패션 쪽 일을 했다. 그의 패션 사진은 일반적인 상업 사진과는 조금 달랐다. 거리 사진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극적이고 연출된 기존 패션 사진과 달리 우연함과 섬세함을 지녔다.

 

4장 ‘회화’는 사진가로서 사울이 아닌 화가로서 사울을 보여준다.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며 그림을 그렸던 사울의 회화 작업에는 특별히 분류할 만한 시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두껍게 칠한 색의 선과 면으로 화면을 다채롭게 채운 그의 회화 스타일은 형상이 뚜렷하든 그렇지 않든 일관되게 나타난다.

 

5장 ‘사적인 시선’은 사울의 누드 작업물을 선보인다. 그의 애정이 어린 시선이 담긴 사진 자체도 인상적이지만, 주목할만한 작업은 섬세한 흑백 사진 위에 풍부한 색채를 그려낸 페인티드 누드다. 노출된 신체 위로 쌓이는 다채로운 선과 면은 피사체를 바라보는 사울의 감정이 시각적으로 형상화된 듯 하다.


사울은 도시의 풍경, 거리의 사람들만큼이나 자주 자신을 피사체로 삼았다. 도로에 드리운 자신의 그림자를 찍기도 하고, 유리창으로 비친 모습을 포착하기도 하였다. 본래 자신의 뿌리이자 운명이었던 랍비와 그 문화로부터 벗어나 뉴욕에서 예술가로서의 삶을 시작하며 이민자의 정체성을 가졌던 그에게 스스로를 탐구하는 자화상은 매력적인 주제였을지도 모른다.

  

일생 동안 쉬지 않고 작업해오며 예술을 삶으로 살았던 사울은 “나에게 철학이랄 것은 없다. 카메라가 있을 뿐.”이라는 말을 남긴다. 이 회고록은 이 말의 의미를 그의 작업세계를 통해 보여준다.

 

 

[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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